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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길고 긴 방학이 끝나자, 한결 평화로와진 집안에선
여섯 살 윤정이와 세 살 이룸이가 단짝이 되었다.
말문이 트인후로 나날이 말이 늘어가는 이룸이는 언니 말도 잘 알아듣고 언니가 시키는대로 곧잘
놀게 되었다. 어릴때는 도무지 제 멋대로만 하는 얄미운 아기였는데 어느새 자라서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된 것이다.

셋째를 가졌을 때, 제발 딸이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남편은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딸이라야 둘째랑 자매가 되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매든 형제든 같은 성별로 나란히 있어야 서로 잘 어울리게 되는 건 당연하다. 애가
셋 인데, 아들, 딸 , 아들인 것 보다야 오빠에 이어 딸들이 있는게 옷 물려 입히기도 좋고, 서로
잘 어울리면 오빠와도 관계가 더 좋아질 것이었다.
엄마 품에만 있던 아기가 기저귀를 떼고, 달릴줄도 알게 되고, 말도 할 수 있게 되니 늘 동생때문에
양보하고 속상하던 윤정이는 이제서야 제 말을 잘 듣는 탐탁한 부하가 생긴 것 처럼 신나한다.
놀이를 정하고, 역할을 나누어서 이룸이가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하는 건 윤정이다.
이룸이는 언니가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말도 잘 듣는다. 물론 늘 시키는대로 할 리야 없다.
가끔은 제 맘대로 해 버려서 언니를 화나게 하지만, 윤정이는 그때마다 계속 함께 놀기 위해서는
동생을 구슬르거나, 제 말을 듣게 달래거나, 조금 더 제 몫을 내어주면서 동생맘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혼자 노는 것 보다는 둘이 노는게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자, 여기가 니 자리야. 언니는 여기 누워 있을께'
'응!'
'오늘은 여덟시에 외출할 거예요. 준비하고 있어요'
'네. 언니냐. 기야여?(기다려?)'
'외출할 때 이거 하고 나갈꺼니?'
'안니야(아니야).'
'그래? 알았어. 그럼 언니가 하고 나갈께'

집안일 하면서 귀 기울여 보면 두 자매는 서로 대화도 한다. 이룸이도 제가 싫고 좋은 건 확실히
표현을 해서 제법 여러가지 놀이가 되게 한다.
사이가 좋을때는 둘이서만 침대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서 속닥속닥 재미나게 노느라 한동안 나도
안 찾는다. 덕분에 제 때 설걷이도 하고, 빨래도 돌리고, 심지어는 늘 쌓아두고만 있던 책들도
꺼내 볼 수 있게 되었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윤정이는 하루 종일 동생과 함께 지낸다. 눈을 떠서 밤에 잠 잘때까지
동생과 함께 있다보면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동생하고 노는게 시시할 때도 있고, 심심하다고
내 앞에서 징징거릴 때도 있지만 이룸이가 내 젖을 오래 물고 있기라도 하면
'빨리 먹고 계속 놀아야지' 하며 옆에서 재촉 한다. 뭘 하든 역시 혼자 보다는 둘이 나은 것이다.

여섯살이나 된 아이가 또래 친구들하고 안 놀고 어린 동생하고만 놀아서 되겠냐고, 본인이 심심해
하지 않겠냐고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친구들은 모두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니 그런 걱정들을
해 주는 것이다. 윤정이가 원했다면 당연히 유치원에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윤정이는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지내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모든 어린이가 여섯살이 되면 반드시 유치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직장맘도 아닌데 원하지도 않는 아이를 억지로 유치원에 보낼 필요도,그럴 마음도 없었다.
또래 친구보다 더 중요한게 동생과 함께 지내는 것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들은 동생이 태어나면 둘을 함께 보기가 힘들다고 큰 애를 서둘러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형제, 자매라고 해도 하루의 많은 시간을 서로 떨어져 보내기가 일쑤다.
유치원 다니고, 학원 한 두개 다닌다면 더더욱 함께 놀 시간이 없다. 텔레비젼 보는 시간 빼고
밥 먹고, 씻고 자는 시간 빼고, 형제 자매가 서로 순수하게 어울려 노는 시간만을 따지면 정말
얼마 안 될 것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더 그렇다. 방과후 프로그램, 학원들에
시간을 빼았기고 각종 과제에 시달리다보면 같은 집안에서 동생과 긴밀하게 어울리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같은 공간에서 자라지만 서로를 겪을 충분한 시간이 없는 것이다.

'서로를 겪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린 동생과 함께 놀이를 하려면 또래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 하고, 더 오래
기다려줘야 하고,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또래라면 단번에 통하는 일들도 동생에겐 다르다.
그래서 어린 동생하고 잘 어울려서 놀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심과 요령,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우리도 어린 시절에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자라면서 설득하고, 설명하고, 양보하고,
타협하고, 협동하는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술들을 다 배울 수 있었다.
동네에서 놀 때도 또래끼리 놀지 않고 모든 나이의 아이들이 다 함께 어울려 놀았다. 동생들은
언니들 고무줄 할때 줄만 잡고 있을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다가 요령이 늘면 그 놀이에 정식으로
낄 수 도 있고, 언니들이 시키는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함께 놀 줄 알았다.
많은 엄마들이 또래 친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집안에서 제 동생과
사이좋게 어울릴 줄 모르면서 친구만 찾은 아이보다는 동생이나 오빠와도 잘 어울리는 아이가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로 지낼 확률이 더 높다.

윤정이는 주로 이룸이랑 놀지만, 집에 찾아오는 오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물론 가끔 제 또래와
놀 때도 있다. 누구랑 놀아도 그 안에서 제 역할을 찾고, 재미나게 잘 어울린다. 또래가 없다고
불평하지 않고, 또래가 아니어서 재미없다고 하지 않는다. 중학생 사촌 오빠들과도 재미나게
놀 줄 안다. 그래서 유치원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친구보다 형제와 자매가 더 가깝고 깊은 사이가 되어야 한다. 형제 자매만이 평생 함께 갈 수 있는 진정한
친구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학교들어가기 전까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니는 9개월을 제외한 모든 날들을 필규도 두 여동생들과
제일 많이 어울리며 지냈다. 윤정이도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그렇게 지낼 것이다. 부모가 곁을
떠난 후에도 오래 오래 이 세 아이들은 서로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일것을 안다. 서로를 겪은
시간들이 넘치도록 많기 때문이며 함께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도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지금 여섯 살 윤정이와 세 살이룸이는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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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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