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장례.jpg

 

'... 여보... 어머님이 돌아가셨대...'

 

남편으로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말을 들은 것이 8월 13일 화요일이었다.

느닷없고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36도가 넘는 폭염에 품일을 하러 가셨다가 일하시던 밭에서 쓰러지셨다고 했다.

바로 병원으로 모셨으나 어머님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믿을 수 가 없었다. 정말 믿을수가 없었다.

올해 나이 일흔 셋, 몸은 자그마하시고 체력은 약하신 편이였지만 앓고 있는 병도 없었고

늘 부지런하게 몸을 놀리시던 분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아무런 유언도 못 남기시고, 자손들이 임종을 지킬 사이도 없이 낮선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쓸쓸하게, 그렇게 사무치게 떠나시다니...

 

온 몸이 떨리고 걷잡을수없이 눈물이 솟았다.

어머님의 죽음이 너무 가엾고, 어머님이 너무 딱하고, 가슴아팠다.

아들을 셋이나 두었지만 모두 객지에 나가 살고 부모곁을 지키는

자손이 없는 것이 이런 일을 만든 것 같아 죄송하고 사무쳤다.

 

정신없이 짐을 챙겨 강릉으로 내려갔다. 도중에 서울에 계시던

막내 이모님과 조카를 태웠다. 열살이나 차이나지만 그래서 늘 친정엄마처럼

이모님을 챙겨주던 언니를 잃은 이모님의 슬픔도 한이 없었다.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수척해진 아버님을 보니 또 오렬이 터져나왔다.

늘 몸이 약하고 아프신 곳이 많아 자손들의 걱정의 대상이셨던 아버님이셨다.

그래서 늘 아버님을 걱정하고 신경쓰며 살았는데 죽음은 벼락처럼 아버님을

수발하시던 어머님을 앗아간 것이다.

 

구미에 사는 큰 아들네와 대전에 사는 막내 아들네가 도착한 것이 저녁 일곱시무렵..

그제서야 장례절차를 밟아 빈소를 차렸다. 친정 아버님은 부고를 전해듣자마자

큰 언니네 부부와 강릉으로 내려와 계셨다.

상주가 되어 빈소에 서서 친정아버님의 조문을 받고 있자니 그저 눈물만 흘렀다.

그때까지 의연하게 버티던 남편도 빈소가 차려지자 그 앞에서 무너졌다.

온 몸으로 우는 남편을 윤정이가 오래 오래 안고 있었다.

 

죽음은 낮설고 혼란스럽게 파도처럼 우리 가족을 휩쓸었다.

모두가 생전 처름 경험하는 절차과 방식이 낮설어할 겨를도 없이

어머님의 죽음을 알게 된 친지들이 도착했고, 한 사람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슬픔과 눈물이 터져나왔다.

우리 가족 모두는 슬픔에 압도되고, 무력해지고, 마침내는 기진해졌다.

더 이상 울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어느새 또 울고 있었다. 죽음은 너무나 잔인했다.

 

둘쨋날 입관식에 참여했다. 냉동된 어머님의 시신은 평소모습 그대로였다.

작년에 손수 만들어두셨던 수의는 너무나 고왔다. 당신이 만든 옷을 장레지도사들이

정성껏 입혀 드리는 동안 남편은 죽은 어머니의 얼굴과 팔을 붙잡고 울고 또 울었다.

서른 일곱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 어머님의 애를 말리던 아들이었다. 그런 둘째 아들을

장가보내던 날, 어머님을 얼마나 환하게 웃으셨던지...

아이러니하게도 갑작스럽게 닥친 어머님의 죽음에 영정으로 쓴 사진은

우리가 결혼할때 폐백을 받으시며 찍은 사진이었다. 11년전 화사한 한복을 입고

귀거리까지 하고 어머님은 밝은 표정으로 카매라를 보고 계셨다.

그 모습이 영정이 되었다.

 

입관을 하고 다시 제사를 올리며 곡을 하고, 각지에서 몰려드는 조문객들을 받고

밤새도록 번갈아 빈소를 지키며 그렇게 3일을 지냈다.

마지막 날 다시 제사를 올리고 빈소를 떠나 속초화장장에서 화장을 했다.

선산이 있음에도 어머님은 늘 화장을 고집하셨다. 봉분을 만들어 놓으면

제사와 벌초, 성묘로 형제간의 분란이 올 수 있는 것을 한평생 염려하셨던 어머님이셨다.

그 뜻을 받아 화장을 하고 수습된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 선산의 커다란 잣나무 아래

묻어 드렸다.

 

 세 아이 5.jpg

 

필규와 윤정이와 이룸이는 할머니가 묻힌 곳을 영정사진을 장식했던 꽃들로 예쁘게 꾸며 드렸다.

 

위패를 집으로 모셔와 삼우제를 지내는 동안 끼니때마다 제사를 올렸다.

남편은 제사때마다 곡을 하며 울었다. 그 울음이 내 슬픔을 다시 울컥 울컥 길어 올렸다.

그 사이사이 어머님의 유품을 정리하고 옷장을 정리하고 부엌을 정리했다.

어머님의 냉장고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언제부터 들어가있는지 알수없는 온갓 냉동 식재료들을 남김없이 꺼내 버렸다.

상한 음식,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음식들도 많았다.

늘 아끼시고 버리는 것은 절대 없으셨던 어머님의 인생이 냉장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삼우제를 마친 어머님의 위패는 큰 아들네가 사는 구미 근처의 절로 옮겼다.

그곳에서 49제의 첫 제사를 모시고 다시 형님네로 들어가 하룻밤을 보낸 후

아버님을 모시고 우리집에 온 것은 일요일 늦은 저녁이었다.

 

어머님의 죽음으로 아버님의 거취가 당장 큰 문제가 되었다.

건강이 안 좋으신 아버님은 특히나 다리가 많이 아프셔서 일어나시는 것도

쉽지 않으신 상태다. 그런 아버님을 강릉에 혼자 둘 수 는 없었다.

강릉에 내려갈때까지는 내가 아버님을 모시고 온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었는데

아무리 따져봐도 직장에 다니는 형님과 동서가 아버님을 맡을 수 는 없었다.

설사 두사람이 모신다 해도 손주들과 아들, 며느리가 아침 일찍 나간 집에서

하루종일 아버님 혼자 지내시는 것은 내가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더구나 아버님은 엘리베이터도 혼자 못 타시고 평소에도 아파트를 못 견뎌 하셨던

분이다. 아무때나 담배를 피우시고 동네를 돌아다니던 아버님에게 그런 환경은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다.

마당이 있고, 아무때나 아무곳에서나 담배를 피우실 수 있고, 산책도 할 수있고

무엇보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두 손녀와 직장에 메어있지 않은 내가

있는 우리집이  최선이었다.

내가 나서서 아버님을 모시고 왔다. 이런 일은 아들이 아닌 며느리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정말 아버님을 모실 사람이 결정하고 선택해야 모두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제일 늦게 며느리로 들어가 11년을 지내는 동안 나는 아버님을 제대로 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어머님과는 부엌일을 같이 하면서 어지간히 서로를 알고

지냈지만 아버님은 그럴일이 드믈었다. 이번일로 나도 아버님을 비로소

알아갈 기회를 얻은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님을 돌아가셨고, 아버님이 우리집에 오신지 3일째가 되간다.

아무때나 집안에서 담배 냄새가 풍기고, 끼니때마다 더운 밥을

올리는 일이 당장 익숙해지진 않았지만 나도 아버님도 아이들도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쉽진 않지만, 힘들긴 하지만 친정 엄마가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나는 친정아버지를 내 집으로 모셨을 것이다.

내가 아버님이라도 빈 집에 혼자 남겨지는 것 보다 자손들 곁에

있고 싶을 것이다. 아버님 마음이 내 마음이고, 아버님 모습이

내 모습인 것을 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머니를 잃은 남편의 슬픔과 상실감, 아내를 잃은 아버님의

허전함과 고독함이 쉽게 사라지진 않으리라. 그러나 우린

어머님의 죽음으로 인해 그 어느때보다 가족끼리 끈끈하게

이어졌고, 어느때보다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었으며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크게 새기게 되었다. 큰 일을 치루는 동안 3형제와

세 며느리들이 반목없이 뭉치고 협력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하늘에 계신 어머님도 기쁘셨을 것이다.

죽음은 슬프지만 남아있는 자들을 더 가깝게 하고 있다.

그렇게 서로 더 깊게 품고 의지하며 우리는 살아가기로 했다.

 

세 며느리중에 제일 서툴고 부족한 내가 아버님을 모시게 되어

걱정이 많지만 언젠가 내 부모에게 닥칠 일을 미리 경험하는 것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어머님.. 걱정마시고 좋은 곳으로 가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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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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