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진 없지?.. 부럽다.."


지진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내가 지금까지 일본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 소식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나 사진으로 직접 보면서도

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게 될 만큼 믿기가 어려웠다.


한국에서 30년 사는 동안은

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16년째 일본에서 사는 지금은

약한 지진이 가끔 일어날 때마다

아, 이번엔 어느 정도구나, 시간이 얼만큼 걸리겠구나,

이번엔 좀 심각하겠는데.. 하며,

단 몇 초 사이에 상황이 파악되고 그에 따라 몸도 같이 반응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이런 상황에 좀 더 민감해 진 것 같다.


지진을 일상 속에서 늘 경험하며 살아야 하는 일본은

사람들이 "흔들린다"고 느끼기 시작한 5초, 혹은 10초 이내

때로는 흔들림을 인식하기도 전에

핸드폰으로 지진경보가 울린다.

집에 있을 경우에는,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먼저 확인하고 텔레비젼을 켜면

벌써 자막으로 지진 발생지역과 상황이 소개되고

공영방송의 경우는 모든 방송이 중단되고 지진에 대한 보도가 시작된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지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메뉴얼에 꽤 익숙해져 있는 편이다.


하지만, 한국은 지진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나라였는데

왜 갑자기 이런 지진이 일어났을까.

지난 봄, 구마모토에서 일어난 지진의 영향인 걸까.

아무래도 일본 남쪽 지방인 큐슈와 한국의 경상남도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그런 걸까.


일본 내에서도 큰 지진이 한번 일어나면

불안정해진 지층이 끊임없이 꿈틀거리는데 그 여파로

여진이 오랫동안 이어지곤 했다.

구마모토 지진은 본진보다 셀 수 없이 많은 여진 때문에

피해가 심각했던, 이전의 사례에선 보기 힘든 형태의 지진이었는데

경주 지역도 여진이 여러 차례 이어지고 있다니..  걱정이다.


부디, 아무 일 없이 안정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있을지 모를,

혹은 해외에서 지진을 경험하게 될 때를 대비한

가장 기본적인 대처법에 대해

일본의 사례와 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가장 중요하고 먼저 해야할 일은,

   몸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흔들림이 느껴지면, 일단 탁자 아래로 몸을 숨기거나

   쿠션이나 방석, 가방 등으로 머리를 보호한다.

   - 이때, 가방 등을 머리 바로 위에 얹는 것보다 팔을 조금 들어서

     머리와 가방 사이에 빈 공간을 조금 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는 것이 위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지거나 할 경우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아이들은 3,4살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대피훈련을 경험해서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탓인지, 위험이 느껴지면 본능적으로 이렇게 움직인다.

     일상적인 안전훈련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도 좋을 것 같다.


2. 몸의 안전이 어느정도 확보되었다면, 집안에 있는 경우는

   먼저 현관문을 열어 비상구를 확보하고

   밖으로 나갈 때는 꼭 운동화를 신는다.(유리파편이나 쏟아진 물건들로 다칠 수 있기 때문)

  

3. 밖으로 대피를 할 때도 흔들림이 계속된다면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석이나 쿠션 등을 쓰고 나가야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자전거용 헬멧이 있으면 그걸 이용하면 좋다.

   - 일본에선 큰 지진이 일어난 뒤엔 아이들이 자는 방에

      즉시 대피할 수 있도록 헬멧과 신발을 두기도 한다.


4. 집 안에 있는 경우,

   특히 부엌에서 요리를 만드는 중에 지진이 일어나면

   즉시 가스불을 끄고 잠궈야 한다.

   (지진이 일어난 뒤에는 화재 등의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5. 아이가 자는 방에는(어린 아기의 경우는 더더욱)

   넘어지거나 쏟아질 위험이 있는 수납장, 매달린 조명 등을 두지 않는게 좋다.

   가구를 높이가 낮고 심플하게 두어, 아이가 자는 위에 무거운 물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배치해 두면, 만약의 경우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사소할 수 있지만

지진 발생시 외에도 아이들의 일상적인 안전을 지키기 위해

습관화했음 하는 것인데,


여자 아이들의 머리 장식품으로 너무 큰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사탕 크기의 플라스틱 머리 방울이나 장식이 많은 큰 핀 등은

무언가에 부딪힐 경우 머리에 상처를 남길 수 있으니,

되도록 크기가 작은 것, 또는 부드러운 소재의 것이면 좋겠다.


지진은 그 자체만로도 무섭고 피해를 남기지만, 2차적인 피해 또한 만만치 않다.

후쿠시마 원전이 그 대표적인 사례고

유언비어나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한 각종 범죄들이 일어나기 쉽다.


이번 경주의 경우도, 지진을 제목으로 한 스팸바이러스로

핸드폰 송금기능 등의 은행 업무 정보를 빼가는 동영상이 유포되는 등

어수선한 틈을 노려 사람들을 이용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또,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불안을 부추기거나 문제를 확대해서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보다

사람들이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 주변을 챙길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정보와 지식, 대처방법을 정확하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

어수선한 사회일수록 지진과 같은 재해가 생겼을 때,

유언비어에 사람들이 동요되기 쉽고
필요 이상의 불안이 확산되면서 사회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진다.


지난 봄에 일어났던 구마모토의 지진은

6만여명이 대피 생활을 했고 880회 이상 여진이 계속되는 피해를 겪었다.

시민들의 대피 기간도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어린이들이 오랫동안 등교를 하지 못했는데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도 지진에 대한 공포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를 꺼리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 중에는

큰 스트레스와 공포를 감당하지 못해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울거나, 너무 불안해 해서

가족 모두 차 안에서 자게 되는 가정이 적지 않았단다.

구마모토 시, 발달장애센터에는 이런 상담전화가 끊이지 않아

센터 직원인 의사와 보육교사들이 불안해 하는 아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결과, 지진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만들었다.


<역시 집이 좋아>라는 이 그림책은

지진 현상과 그것을 겪는 어린이의 심리를

누구나 공감하기 쉽게 표현했는데

지구가 감기에 걸려 재채기를 하는 그림으로

지진이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한다.

지진에 대한 공포를 금방 잊거나 극복하기만을 강요하지 않고

불안해 하는 어린이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켜봐 줄 것을,

이 그림책을 만든 의사와 교사들은 조언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이 지진 트라우마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구마모토 시 직원들이 3일 꼬박 매달려 완성한 그림책이었는데

시 홈페이지에 가면 이 그림책을 누구든 다운로드받아 볼 수 있고

컴퓨터가 없는 가정의 경우는 시에서 인쇄한 그림책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지진이 일어난 지, 5개월이 지진 지금

구마모토 시는 유례가 없었던 형태의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 경험을 반드시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연구해

앞으로의 지진에 대비하겠다, 라고 발표했다.


자연재해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지난 경험과 피해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

불안과 스트레스에 약한 아이들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정성껏 돌보는 일,

두려운 지진이지만,

우리가 배우고 준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까.

한국 사회가 이번 경주의 지진 경험을

부디 헛되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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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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