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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의 초등학교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아이가 2학년 때 썼던 독서감상문 공책을 보게 되었다.

아, 이런 때도 있었구나.. 하며 무심코 넘겨보다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고 쓴 부분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그림을 발견했다.


삐삐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을 한방에 이기는 모습!

세상 돌아가는 일이 너무 답답하고 지치는 요즘,

스스로 가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나도 삐삐처럼 단번에 들어올려 내동댕이치고 싶다.


아이가 그림과 함께 쓴 글에는

"힘이 센 아이들이 친구들을 때리거나 괴롭히기도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여자아이 삐삐는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데 쓴다."

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이지, 삐삐가 필요한 시대다.


돈과 힘.

어른들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는 두 가지.

이 둘을 제멋대로 쓰는 바람에 이 난리가 난 것이다.

이번 일이 알려지고 벌써 3주가 넘어가는데

처음엔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다가

이젠 몸까지 조금씩 아픈 것 같다.

잠을 편하게 못 자는 탓인지, 소화도 잘 안 되고 몹시 피곤하다.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도 웃음과 함께

걱정과 한숨이 늘 따라다닌다.

우리는 언제쯤 일상에 집중하며 편하게 살 수 있을까.


누군가가 이번 사건을 겪고 지켜보는 한국 시민들에게

집단적인 상담과 치료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난주 시위모임에서 이승환이

뭔가 알 수 없는 정신적인 폭행을 계속 당하는 기분이라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왜 항상 고통은 국민의 몫인가.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이번 주말에도 광장에 나가시는 분들, 진심으로 응원한다.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평화적인 시위를 매 주말마다 이어가는 한국 시민들의 모습에

해외 시민들도 놀라워하며 지켜보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따라

세계 여러 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김제동의 말처럼,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않았음에도

우리 사회가 이만큼 돌아가고 있는 건,

수많은 국민들이 제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디, 모두의 마음이 하나의 힘으로 모아져

잘 해결해 나가기를,

오만하고 모자란 권력자들을 한번에 들어올려 혼내주는

삐삐처럼, 우리도 그렇게 시원한 결말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힘들지만, 한국 현대사의 아주 중요한 한 순간에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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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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