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 4.jpg

 

초등학교 1학년 딸 아이의 운동회날이었다.

한 학년이 50여명, 전교생이 300명 남짓한 작은 시골학교의 운동회다.

벼들이 노랗게 익은 논과 김장 배추가 푸르게 자라고 있는 밭을 지나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에 들어서니 마흔이 한참 넘은 내 마음도

새삼 두근거렸다.

 

평일이라 많은 학부모들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기껏 오전에만 운동회를

하고 급식을 먹고 끝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첫 아이 이후 4년만에 다시

첫 운동회를 맞는 딸을 지켜보는 마음은 설레고 기뻤다.

 

동네 어르신들이 흥겨운 농악으로 잔치의 시작을 열어주셨고

아이들은 학년별로 정한 티셔츠를 입고 입장을 해서 박태환 선수와

김연아 선수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서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국기에 대한 맹세도 우리때와 조금 달라졌고, 국민체조를 배웠던

우리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새천년체조'를 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작은 학교의 운동회는 긴장된 경기 대신 재미난 놀이마당으로 채워진다.

딸 아이는 반 친구들과 모둠을 돌아가며 구슬치기와 물총쏘기, 달팽이 집 돌아나오기나

딱지 뒤집기 같은 놀이들을 즐겼다.

 

운동회.jpg

 

학년이 조금 높은 아이들은 머리로 물도 나르고 장애물도 통과하며 즐거워 했다.

부모들이 놀이마당을 진행하는 도우미역할을 맡아서 아이들을 이끌어 주었다.

학생수가 적다보니 반이 달라도 모두 알고, 학년이 달라도 누구 오빠인지, 언니인지

다 아는 운동회는 내 아이만 응원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아이 친구 형제들 까지 응원을

보내주고 서로 격려해주는 훈훈한 자리였다.

 

윤정 5.jpg

 

운동회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달리기다.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모두가 달리는데 부모들의 카매라 플래쉬가 제일 많이

터지고 웃음도 응원도 제일 커지는 순간이다.

나도 4년전 첫 아이의 첫 운동회때 달리기에서 1 등으로 들어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터지도록 환호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을 다 얻은 것 처럼

신나고 행복했던 추억이다.

 딸 아이는 꼴등을 했다. 학년 대표 릴레이 선수가 끼어 있는 최강의 조에서 달렸던

탓이다. 그래도 표정은 밝았고 결과에 위축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더 흐믓했다.

 

6학년들은 장애물 달리기를 했었는데 지켜보며 정말 감동을 받았다.

몇 년 전 구경 갔던 조카의 운동회에서는 6학년 아이들은 운동회에

별 관심이 없었다. 구석에서 끼리끼리 핸드폰만 들여다보거나 담임이 시키면

마지못해 하는 시늉을 할 뿐 즐기는 아이들을 볼 수 가 없었다.

그런데 딸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6학년 오빠 언니들은 부끄러워 하면서도

열심히 달렸고 모든 프로그램에 즐겁게 참여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장애가 있는 학생이 보조 교사의 손을 잡고 끝까지

달려 골인점을 통과할때 모두가 박수를 쳐 주던 순간이었다.

단순히 작은 학교여서가 아니라 모두가 똑같은 관심을 받는 학교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운동회 2.jpg

 

학생들 릴레이 경기가 끝난 후 운동회에 온 모든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줄다리기가 펼쳐졌다. 나도 뛰어들어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힘을 주었다.

우리팀이 지고 말았지만 같이 힘을 모은 엄마들과 한바탕 크게 웃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가 급식을 먹는 동안

부모들은 반모임을 가졌다. 우리반은 운동장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동네 분식집에서 주문한 김밥과 떡볶기, 순대를 먹으며 즐거운 수다를

나누었다. 운동장을 둘러보시다가 잠시 합석을 하셨던 교장 선생님은

내년엔 더 긴 시간, 가족 모두가 다 참여할 수 있는 운동회를 만들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부모들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정해서 지켜야 하는 약속을 이야기하면서

스마트폰을 절대로 아이들에게 쥐어주지 말것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꼽았다.

핸드픈이 필요한 경우라면 폴더폰이나 키즈폰을  사 주고 그것도 등교후에는

선생님에게 맡겨 관리하게 할 것 등에 모두가 동의를 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걸어서 등교할 것과  학교를 대표하는

동아리 활동을 정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반에서 모아진 의견들은 반대표를 통해 학부모위원회로 가서 교사들

과 의논된 후 학령으로 정해져 이 학교를 다니는 모든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 될 것이다.

 

소박하지만 진지하게 반모임을 나눈 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더 노는 사이 부모들은 오래 오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요란하지도 않고, 거창하지도 않지만 재미있고 따듯하고

즐거운 운동회였다.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고 같은 마을에 사는 부모들끼리 더

가까와지고 모처럼 교사와 부모들이 허물없이 어우러지는 자리..

그것이 운동회였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운동회인 것이 좋았다.

권위를 내려놓고 학부모를 협력자로 여기는 교장 선생님이 있고

학교일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하는 부모들이 있으니

이 작은 학교가 더 따듯한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올해는 망설였지만 내년에는 나도 학부모 달리기 대회에 나가서

열심히 즐겁게 달리는 모습을 딸 아이에게 보여줘야지.

나이 든 엄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젊다는 것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보다 기꺼이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그래, 그래... 아직 다섯살 막내도 있는데 앞으로 내가 맞을

초등학교 운동회가 까마득한데 방심하지 말아야겠구나.

설레이며 기다릴  운동회가 아직도 8년이나 남았으니

정말 늙을 새가 없겠구나..

 

다치지 않고 즐겁게 운동회 마쳐준 둘째와 언니 운동회

따라와서 또래 친구들고 종일 재미나게 놀아준 막내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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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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