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눈을 떠보니 11시다. 참 잘 잤다. 장장 9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자버렸다.
아! 이 얼마만의 숙면이란 말인가.
지금 나는 혼자다. 1주일 휴가를 받은 아내는 성윤이를 데리고 토요일 아침 비행기로 친정에 내려갔다. 후발대로 처가에 가는 수요일까지, 4일 밤을 나는 혼자서 보내야 한다. 4일간의 ‘독수공방’인 셈인데, 이 짧은 시간이 지금 이 순간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 그건 최근에 발생한 우리 세 식구의 ‘잠자리’ 문제 때문이다.
» 아내가 만든 뒤집기 방지 매트. 생후 181일때 모습
녀석의 수면 공간은 애초에 ‘바닥’이었다. 아내가 손수 제작한 신생아용 뒤집기 방지 매트에 녀석은 잘 적응했다. 간혹 울면 중간에 잠깐 안아주면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녀석을 언제부턴가 침대로 올렸다. 새벽에 우는 녀석을 달래려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솔직히 귀찮아서였다. 녀석을 나와 아내 사이에 눕혔다. ‘인간38선’이었다. 녀석은 때로 뒤척이면서 내 얼굴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그래, 그 정도는 괜찮았다. 그냥 등을 보이고 자면 되니까.
그러나 녀석이 커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침대 쿠션도 모자라 푹신한 엄마 아빠 베개 위에 올라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키가 커갈수록 내가 벨 수 있는 베개 부분은 점점 줄어들었다. 침대의 너비가 150㎝, 녀석의 지금 키가 87㎝니까 녀석이 베개 위로 올라가 다리를 쭉 뻗으면 내가 머리를 댈 수 있는 공간은 63㎝의 절반, 31.5㎝밖에 안 된다.
그래도 내 잠자리 만큼은 사수해야겠다는 생각에 침대 끝에 간신히 몸을 걸쳐 칼잠을 청할 때면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는 이육사의 시 <절정>의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쳤다. 아내는 “당신 베개를 포기하고 약간 밑으로 내려와서 자면 된다”고 했지만 그러면 발목이 침대 밖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에 몸을 구겨 새우잠을 자야 했다.
게다가 열대야까지 찾아오니 이래저래 불편한 밤이 계속됐다. 그래서 가끔은 소파에서 자기도 했는데...
» 녀석은 언제부턴가 이렇게 자기 시작했다.
토요일 새벽, 녀석과 같이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새벽 3시. 잠들기 전 아내의 부탁대로, 못다 싼 짐을 싸고 또 소파로 나가 누웠다. 그런데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만, 이내 ‘콰당’하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치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소에 녀석과 등을 지고 칼잠을 잤던 나는 녀석의 든든한 울타리였다. 울타리가 없는 침대는 녀석에게 위험하다. 아! 녀석을 위해 나는 다시 침대 위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가.
잠, 중요하다. 아빠 노릇, 기자 노릇 더 잘 하기 위해서라도 잠을 잘 자야 한다. 녀석도 안전하고 나도 편안한 잠자리가 필요하다. 이제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