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올라왔다.
심하게 손상된 그 모습을 보며 미수습자 가족들이 어떤 심정일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고문이었다는 말로도 부족한
고통 앞에 고개가 숙여질 뿐.

 

오래 전 나의 기억도 다시 생생해졌다.
딸 민이가 3살의 나이로 갑작스레 숨졌을 때,
병명이 확실했음에도 죽음의 원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임신 중에 뭘 잘못했을까?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한 탓이었을까?
전자파 같은 안 좋은 환경에 노출시켰던 걸까?’
내 잘못이 얼만큼인지 알아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호의 진실을 끝까지 캐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유가족뿐 아니라 아이들의 죽음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 모두를 위해
털끝만한 원인 하나도 놓칠 수 없다.

 

내가 헤어나올 수 없었던 또 한가지 질문은
민이가 겪었을 고통이 얼만큼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지,
이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한참 지나서 생각의 소용돌이가 잦아들었던 건
병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MRI를 찍은 후 병명이 뇌종양임을 확인했음에도
안과 검사실에서는 민이의 눈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 명의 의료진이 달려들어 검사를 하는 동안
놀란 민이가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검사가 끝나고 침대에서 내려서자마자,
방금 전까지 울부짖어 땀에 젖은 아이가
낯선 병원 기구들을 신기해 하며 두리번거리던 모습,
이를 잊을 수가 없다.

 

아이는 결코 과거의 고통 속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1초 전의 고통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고통은 다만 남은 사람의 몫이었다.
내 아이와 세월호의 아이들,
아니 어쩌면 이승의 끈을 놓은 모든 이들이
죽음을 통과하며 오롯이 현재 속에만 남는 게 아닐까?

 

인양된 세월호를 보며 미수습자 가족이 했던 말이 가슴에 맺힌다.
“내 아이가 저렇게 춥고 지저분한 곳에 있다니!”
이런 절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 작은 목소리는 말한다.
아이들은 결코 세월호의 과거 안에 갇혀있지 않다고.
1초 전의 고통도 그들에겐 의미가 없다고.

 

세월호를 인양한 날,
하늘에 뜬 노란 리본 모양의 구름을 찍은 사진으로
인터넷이 달궈졌을 때
그것이 비행운인지 권운인지 설명은 필요 없었다.
숨이 멎을 듯한 마음은 모두 같았으니까.
아이들은 그렇게 사랑하는 이에게 오는 거니까.

 

구름에 대해 그간 맘 속으로만 간직했던 얘기가 있다.
민이의 유골을 뿌리던 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흔적을
민이가 벗어버리고 간 옷이라 생각했다.
내 아이가 이제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을 의심케 할 광경이 펼쳐졌다.

 

계곡 사이 하늘로,
민이가 유난히 좋아하던 양 인형과 똑같은 모습의 구름이
너무도 선명하게 흘러가는 게 아닌가.
양의 모습은 꼬리 모양까지 선명하게 나타났다가
잠시 후 흩어져 사라졌다.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민이는 나와 함께 누워서 창 밖의 하늘을 보며 말했었다.
"구름이 많네. 예쁘다…. 만져볼까? "
이 말이 민이의 유언으로 기억될 거라는 예감에 당시 나는 전율했다. 
세상을 떠난 후 민이는 구름과 바람으로,
어떤 때는 꽃과 곤충의 모습으로도 찾아왔다.

 

열쇠고리1.jpg » 내 열쇠고리에 달린 민이의 백일 사진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이 반드시 가족에게 돌아오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그러나 혹여 흔적이 희미하더라도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온갖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랑하는 이를 유족들은 꼭 품에 안아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세월호 사고를 지켜본 국민들 모두 최소 3년씩은 수명 단축이 되었으니,
그렇게 잃어버린 수명을 합치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학살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일부러건 무능해서건,
세월호 인양을 지연시켰던 이들의 범죄 행각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나치 전범들을 세상 끝까지 쫓아가 잡아서 법정에 세웠던 것처럼,
가면을 쓰고 거짓을 일삼았던 이들을
합당하게 처벌하여 유가족 앞에 무릎 꿇게 해야 한다.

 

예루살렘 법정에 섰던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

 

세월호와 관련하여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권력을 가진 자의 무능은 가공할 비극을 낳는다.

 

진실을 제대로 밝히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다.
끝까지 지치지 말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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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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