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의 오른쪽 무릎 근처에는 태어날 때부터 생겨 있는 작은 딱지들이 붙어 있다. 

보통 우리가 어딘가에 긁히거나 해서 피가 난 뒤 생기는 딱지와 비슷하게 피부 표면보다 살짝 도톰하게 올라와 있는데, 케이티의 이 작은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것들이 보통의 '상처 딱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케이티의 오른쪽 다리는 림프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늘 크게 부어 있는데, 다리 전체에 림프액이 과도하게 축적되면 곳곳에 작은 물집 같은 것이 볼록하게 솟아오른다. 신생아 적, 엉덩이에 볼록 솟아오른 투명한 물집을 보고 '이게 기저귀 발진인가?'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투명한 물집이 엉덩이, 허벅지 안쪽, 무릎 안쪽, 발등에까지 볼록 볼록 올라오는 걸 보고서야 기저귀 발진이 아닌 걸 알게 됐다. 대개의 경우 볼록 투명하게 올라왔다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가 또 다시 볼록 솟았다가 하는데, 무릎 근처의 것들은 투명하지 않고 붉은 빛을 띤다. 무릎 근처의 피부에는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나타나는 붉은 얼룩(포트와인 스테인)이 있는데, 이 얼룩 위에 물집이 올라오면 림프액에 혈액까지 섞여 붉은 물집을 형성하게 된다. 케이티가 한창 기어다닐 적에는 이 부분이 바닥이나 아이 손에 긁히면 바로 출혈이 일어나곤 했다. 그 때마다 놀란 가슴을 안고 병원에 달려가 레이저 시술을 해야 했다. 레이저 시술은 더 이상의 출혈이 일어나지 않게 물집을 태워 출혈이 일어날 수 있는 구멍을 막아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한번에 2, 3초밖에 걸리지 않는 간단한 시술이지만, 그걸 한다고 해서 이 상처 딱지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크기도 모양도 변하지 않은 채 가만히 남는다. 


요즘 케이티가 유독 그 부분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조용해서 들여다 보면 어느새 무릎 위 딱지들을 손으로 잡아 뜯으려고 하거나 혀로 핧고 있다. 상처 딱지가 생기면 괜히 거슬리고 성가셔 손으로 긁어 떼어 버리고 싶은 우리 마음과 똑같은 마음인가보다. 처음엔 그냥 마음만 아프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바라만 봤는데, 같은 행동이 반복해서 눈에 띄다보니 그 행동을 말리면서 아이에게 할 말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냥 무작정 '안 돼' 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왜 안 되는지, 이게 무엇인지,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더 궁금해 할 것이 분명한데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생각 끝에 결론 내린 건, 바로 이 글의 제목. 


"그건 그냥 너의 일부야. 그러니까 뜯으려고 하지 말고 놔 두는 게 좋겠어" 


이렇게 말하며 가만히 아이 손을 무릎에서 떼고 무릎을 쓰다듬어 주면 아이는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 가만히 있는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도 아이도 조금씩 더 우리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슬프지만도 않다. 처음 이 진단이 내려졌을 때, 갓난 아이를 품에 안고 매일같이 생각했다. 이걸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가 어느날 문득 "난 왜 이렇게 태어났어?" "내 다리는 왜 이래?" "이게 뭐야?" 라고 묻는 날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답해줘야 할까. 


종교를 갖고 있는 부모들은 아이의 특수한 질환에 대해 '너는 특별해서 그래' 라든지 '너는 신이 내린 특별한 존재야' 라는 식의 설명을 많이 한다고 한다. 붉은 얼룩에 대해서는 '천사의 키스 마크'라고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설명이 장기적으론 아이에게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관상의 특이점 때문에 또래 집단을 경험하면서 따돌림이나 놀림을 당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너는 특별해'라는 말은 어쩌면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케이티는 그냥 아이와 함께 태어난, 아이의 일부인 거라고. 내가 손에 땀이 많은 다한증을 갖고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또 남편이 특이한 모양의 귀를 갖고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케이티 역시 그냥 아이의 일부로서 함께 살고 함께 자라는 것 뿐이라고. 


오늘도 낮잠 자는 아이 곁에서 손톱 발톱을 깎으며 볼링핀 마냥 퉁퉁 부은 오른 발가락을 매만진다. 발가락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오른 발톱이지만 자랄 만큼 자라 날카로워진 그 발톱을 하나 하나 찾아 깎아 낸다. 그리고 꼼꼼히 살펴본다. 어딘가 또 다른 물집이 올라오고 있진 않은지, 어딘가 또 다른 혹이 솟아오르고 있진 않은지, 발바닥에 또 멍이 들어있진 않은지. 매일같이 아이의 온몸 구석구석을 살펴봐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지만, 이 역시 아이와 함께하는 내 삶의 일부이리라. 아이가 이 운명을 짊어지고 사는 동안,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이 일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건, 케이티가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케이티가 우리 삶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그래서 절망이나 슬픔에 압도되지 않도록, 케이티를 우리 기쁜 삶 속 작은 일부분으로 받아들여 기꺼이 살아내고 싶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건 그냥 너의 일부야. 그냥 두는 게 좋겠어"라는 이 한 마디를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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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슬
'활동가-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했던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은 운명처럼 태어난 나의 아이 덕분이다. 아이와 함께 태어난 희소질환 클리펠-트리나니 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의 약자 KT(케이티)를 필명으로 삼아 <이상한 나라의 케이티> 라는 제목의 연재글을 썼다. 새로운 연재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은 아이책, 어른책을 번갈아 읽으며 아이와 우리 가족을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내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워내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과 삶을 꾸려내고 싶다.
이메일 : alyse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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