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안녕하세요. 불초한 서진아빠 박태우입니다. 이모님이 서진이의 ‘큰엄마’가 되신지도 벌써 8개월이 다 돼갑니다. 육아휴직 중이던 아내가 허리가 아파 처음 인연을 맺은 뒤로 아내가 복직하고, 제가 또 사회부로 옮겨 노동강도가 세지면서 이모님의 근무시간이 늘어나고 또 노동강도가 세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서진이가 커 갈수록 이모님의 다크서클도 점점 커지는 것 같아 이 역시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모님, 저희 부부가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모님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주중에는 멀쩡했던 서진이가 주말만 되면 감기에 걸리거나 장염에 걸려 주중에 이모님을 힘들게 한 적도 많았지요. 저희도 정말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주중엔 밥도 잘먹고 놀기도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주말만 되면 밥도 안먹고 찡얼거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서진이가 아파서 제가 속상해 하고 있을 때  “서진이가 더 크려고 하나봐요. 아이들은 한번 아프고 나면 더 큰다고 하잖아요”라고 하셔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오히려 힘든 건 이모님인데 도리어 저희를 위로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더라고요.


이모님, 이모님은 이처럼 서진이만 돌봐주시는게 아니라 저희 부부도 돌봐주고 계십니다. 아침에 출근하셔서 “밖에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 나가요~”라고 해주시고, 아침을 거르는 제게 따스한 토스트도 사주셨지요. 매번 까먹게 되는 분리수거 날에도 이모님이 직접 비워주시고, 종종 서진이 침구 뿐만 아니라 먼지가 앉은 저희 베갯잇과 침대커버까지 빨아주셨을 때 감동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가끔씩 집에 배달되는 전단지도 꼼꼼히 챙겨보셔서 어디 마트에 뭐가 싸더라고 일러주시기도 하셨죠. 서진이가 좋아하는 사운드북에 건전지가 떨어졌을 때 저희보다 먼저 챙겨주셨던 것도 이모님이었습니다. 참, 동지라고 쒀 주신 팥죽도 감사했습니다.


이모님, 이모님도 한 가정의 어머니시고 아내신데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반까지 당신집이 아닌 곳에서 긴 시간 머무르게 해드리는 것도 괜시리 죄송스럽습니다. 전화로 아들을 깨우시고, 남편 옷가지를 세탁소에 맡길 시간이 없다고 싸들고 오셨을 때도 이모님이 참 힘드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하시고 집에서 피곤하진 않으실까, 또 집에선 푹 주무실까 걱정도 됩니다. 특히 주문해놓은 반찬이나 사놓은 과일을 많이 안드시는 것 같아서, 애 때문에 식사도 못드시는건 아닐지도 걱정되고요. 비록 대기순번은 100번대를 넘어가지만, 내년엔 꼭 서진이도 어린이집 입학시켜서 이모님 근무시간 줄여드릴 수 있는 방법을 꼭 찾도록 하겠습니다. 이모님도 함께 기도해주실거죠? ㅠㅠ


밖에서 이모님 얘기를 주변사람들에게 할 때마다 듣는 말이 모두 “좋은 이모님 만나 부럽다”는 거였습니다. 저희도 자랑할 수 있는 이모님이 계셔서 참 자랑스럽습니다. 이모님이 많이 힘드셔서 그냥 그만두겠다고 하시면 어쩌나 고용‘주’ 불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서진이를 키우시는건 8할이 이모님인지라, 가뭄에 콩나듯 일찍 퇴근해서 서진이가 제가 아닌 이모님께 안길 때도 서진이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모님, 새해에도 이모님과 함께 서진이가 행복하게 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엔 서진이도 이모님을 ‘큰엄마’라고 부를 수 있겠죠? 비록 찡얼대고 보채고 게다가 먹깨비 같이 밥도 많이 먹어 불어난 체중 탓에 이모님을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늘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모님을 만난게 지난 한해 서진이와 저희 부부에겐 가장 큰 복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독자여러분, 지난 10월부터 편집부에서 나와 사회부 24시팀으로 옮겨오면서 업데이트가 늦었습니다(사실 다 핑계입니다 ㅋ) 출산·육아 관련 제보 언제나 환영합니다. 부모 입장에서 열심히 취재해 보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성탄, 복된 새해 되세요~

 

010-011-1.jpg » 석달전 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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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기자
포스트모던을 바라보고 있는 시대에 전근대적인 종갓집 종손으로 태어나 모던한 가족을 꿈꾼다. 2013년 9월에 태어난 딸을 키우며 유명한 기자보단 사랑받는 아빠·남편·아들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 회사에서 2분 거리인 자택에서 딸에게 재롱떠는 것이 삶의 낙. 2010년 <한겨레>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메일 :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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