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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윤정, 2008년 1월)



엄마가 되고나서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시간이라면, 바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시간이라고 말하겠다.

그 어떤 일도 젖 주는 일만큼 나를 생생하게 '엄마'라고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오로지 내 젖으로만 하루 하루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노라면 얼마나 신기한지

빨아도 빨아도 나오는 젖이 고마왔고, 내 자신이 뿌듯했고, 젖 먹고 잘 크는 아이들이 고마왔다.



물론 젖 먹이는 일이 처음부터 행복하고 기쁠수만은 없다. 젖이라는 것이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나오는게 아니기때문에

출산의 힘겨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젖몸살이라는 또 다른 고비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애 낳는 일보다

더 힘이 든다는게 젖 몸살이다. 그것은 한 여자의 몸이 생명을 잉태하고, 세상에 내 놓은 후에 그 생명을 온전하게

키울 수 있는 모든 양분을 몸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시스템이 정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젖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이 인식해서 여자로 태어났을때부터 이미 몸에 마련되어 있었던 정교한 장치들이 모두 제대로 가동되기까지,

엄마의 몸은 고통스런 변화와 적응을 거쳐야 한다. 한번도 쓰이지 않았던 모든 유선들이 젖으로 부풀어 오르고,

유선 끝까지 젖이 도달하게끔 몸이 준비하기까지의 고통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짐작할 수 없다.

적지않은 여자들이 젖몸살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유 수유를 단념하기 까지 한다.



젖꼭지가 헐고 살갖이 벗어지고, 아물사이도 없이 다시 젖을 물리면 갓 태어난 아이는 얼마나 엄청난 힘으로 젖꼭지를

빨아대는지, 그 강렬한 힘에 압도되어 나는 새삼 한 생명의 강인한 생의 의지를 실감하며 놀라기도 했었다.

젖이 완전히 돌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적당한 만큼의 양으로 조절되기까지의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

첫 아이때는 젖으로 모든 옷을 적시고 심지어는 흐르는 젖으로 방을 닦으며 다니기도 했었다.

이 모든 어려움을 겪어가며 수유에 성공했어도 첫 아이때만 두 번이나 유선염을 앓기도 했다.

젖을 떼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든가.

첫 아이 낳고 꼬박 23개월을 수유를 하고 다시 생리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을 나는 이제 둘째를

가질 때가 온 것으로 받아들이고 젖을 떼었다. 만 2년 가까이 젖을 충분히 먹었던 아이는 3일만에

엄마 젖을 잊어버렸지만, 몸이 2년 동안 하루 24시간 만들어 내던 젖을 더 이상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데는 한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젖 말리는 약은 몸에 안 좋다고 해서 먹지 않았고, 젖을 압박하거나 묶어 두는 것도 안 좋다고 해서

그냥 생으로 말렸다. 아이가 더 이상 빨지 않는 젖은 가슴을 채우고 겨드랑이와 목 언저리까지 차 올랐다.

팽팽하게 젖으로 차오른 유선들은 화끈거리고 욱신거렸다. 이렇게 맹렬하게 만들어 내는 젖을

아이에게 다시 빨리고 싶은 유혹을 참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다. 한달 내내 울면서 살았다.

몸이 스스로 젖을 거두어 가는 그 시간들을 내 의지와 힘으로 올올히 견디면서

첫 아이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렸던 그 시간들이 내게 준 성장과 행복들을 되새기도 또 되새겼다.

젖을 물리고, 또 젖을 떼는 과정을 통해 나는 엄마가 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과 시간이 있는 것이고, 그것들을 온전히 겪어 가는 일을 통해 수없이 다시 '엄마'로

태어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를 낳았다고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로서 겪어내야 하는 모든 일들을 온전하게

감당하고 견디어 내는 시간들을 통해서 비로소 엄마가 되어 가는 것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젖을 주는 일이 나를 '엄마'로서 크게 했다.



둘째 윤정이는 27개월간 젖을 물렸다.

마지막 한달은 셋째를 임신한 기간과 겹쳐서 몸이 많이 힘들었었다. 27개월을 먹였지만 윤정이 젖

떼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이가 영리해서 엄마 몸에 생긴 변화를 이해하는 눈치였지만

젖을 빨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젖꼭지에 입만 가져다 내는 아이를 지켜보는 마음은 너무나

미안하고 아팠다.



올 1월에 태어난 이룸이도 오빠 언니처럼 내 젖을 먹으며 큰다.

경험이 늘어가면 그 경험의 모든 과정이 주는 변화와 기쁨들을 훨씬 더 생생하고 세세하게

느끼게 된다. 더구나 이룸이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이 아이에게만은

억지로 떼지 않고 젖이 자연스럽게 마를때까지 물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느정도 기간이 지나면 젖의 영양분이 떨어진다고 한다. 너무 오래 먹이면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도 한다. 젖도 시간을 정해서 주고, 밤 중 수유는 안 좋다는 조언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기준을 '아이'에게 두었다.

젖을 얼마나 먹이는가. 아이가 원하는 만큼이다. 젖을 언제 먹이는가. 아이가 먹고 싶을 때 이다.

상황이 허락했다면 젖을 먹이는 기간도 아이가 원하는 만큼 이었을 것이다.

젖은 양분만이 아니다. 아이에게 젖은 엄마의 사랑이고, 관심이고, 위로고, 격려고, 이야기다.

젖 먹이는 엄마들은 안다. 아이는 배고플때만 젖을 찾는게 아니다. 힘들거나 속상할때, 아프거나

서운할때, 무서웠거나 기운이 없을때, 혹은 지루할때도 젖을 찾는다.

엄마젖을 물고, 엄마의 따스한 몸에 꼭 밀착되어 엄마를 쓰다듬고, 안고, 만지고, 느끼면서

아이들은 안심하고, 진정되고, 다시 힘을 얻고, 엄마를 제 안에 가득 채운다.

그리고 다시 제 삶속으로 뛰어 든다.

이런 과정이 길어진다고 염려할게 뭐 있을까. 일하는 엄마가 아니라면 아이가 이따금이라도

젖을 찾는 기간이 30개월이 넘어선들 어떤가. 우리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쥐어주는 달콤한

군것질거리나, 화려한 만화 영상이나, 인공적인 장난감보다 젖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있다.

엄마가 젖 주는 일을 진심으로 행복하게 여겨야 한다. 만약 의무감때문에 젖을 물리고

젖 주는 시간을 힘들고 빨리 끝내고 싶다고 느낀다면 차라리 일찍 젖을 떼는 편이 나을 수 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수유를 하고, 젖 찾는 아이에게 짜증을 낼 단계라면 다른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젖을 통해 엄마의 감정, 기분까지도 아이는 같이 먹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젖 주는 일이 정말로 행복했고, 진심으로 그 시간들을 즐길 수 있었다.



젖을 먹는 시간은 아기의 몸과 마음을 '엄마'로 채우는 시간이다. '엄마'의 존재감을

나날이 단단하게 자신 안에 새겨 넣는 일이다. 뺨으로, 입으로, 손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충만하게

느끼고 감촉하며 아기의 내면에 '엄마'라는 존재가 지울 수 없이 단단하고 굳건하게 뿌리 내리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차례 엄마와 아이가 젖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되면서 서로의 존재를 상대방의 몸과 마음에

새기는 일, 그 일이 젖을 주고, 젖을 먹는 일이다.

그렇게 내면에 '엄마'가 단단히 심어져 있는 아이라면, 자신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충만하게 받았음을

몸과 마음이 받아들이고 있는 아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그 애착을 자연스럽게 넓혀 가며 자신의 삶에 단단히

뿌리 내릴 수 있다.

'애착'이란 한 생명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감정이다. 자신이 사랑으로 단단히 맺어져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한 생명이 세상이 주는 많은 고비와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성장하게 하는 힘이 된다.

우리가 젖 주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쉽게도 우리 나라의 모유 수유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엄마들도 분유로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산업화된 출산, 쉽게 권해지는 제왕절개, 갓 태어난 아이를

엄마곁에 두지 않고 신생아실로 거두어 가는 관행들, 이 모든 것들이 엄마들의 자연스런 수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태어나자 마자 젖을 물리고, 엄마 곁에서 수시로 젖을 빨 수 있어야

모유 수유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엄마젖으로 크는 아이들이 늘어가야 엄마와 아이들의 건강도 더 좋아진다.

더 많은 엄마들이  엄마와 아이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들을 용감하게 극복하고, 젖을 통해 아이와

가장 진하고, 깊은 애정을 주고 받으며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절실하다.



긴 인생 속에서 내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순간은 너무나 짧다.

본래 하나였던 두 생명이 젖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귀하고 행복하게 누리자.

최대한 서로를 느끼고, 나누고, 친밀하게 결합하고, 그 충만함을 서로 채워주며 즐기자.

단순히 엄마만 아기에게 젖을 주는게 아니라 엄마도 아기에게 그만큼의 사랑과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같이 받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많이 받은 아기가 건강한 것처럼

아기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엄마 역시 훨씬 더 건강하기 때문이다.



이룸이에게 6개월째 젖을 먹이고 있다.

첫 아이때보다 둘째 아이 때 보다 훨씬 더 이 일이 행복하고 즐겁다.

나는 대단한 사람도 못 되고, 많이 모으고 많이 이룬 사람도 아니지만 적어도 젖을 통해 내 아이에게

엄마로서의 존재감만큼은 충분하고 넉넉하게 심어주는 엄마이고 싶다.



젖이 내 아이에게로 흘러간다.

내가 내 아이에게로 스며든다.

아이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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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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