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꽃남 우상화' 할머니는 '천재 신화화'






쿨한 척 하던 나도 팔불출 엄마 별수 없네






얼마 전 영유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결과지를 보고 망연자실해졌다. 몸무게 97%. 검진 소견 '몸무게 추적관찰을 요함' 허거덕. 엄마 집안에도 아빠 집안에도 비만 체형은 없는데 우째 이런 일이... 갑자기 아이가 딱해 보이기 시작했다. 젖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혹시 물만 마셔도 살 찌는 체질이면 어떡하지?  먹고 싶은 거 먹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소아비만 아이들을 보면 정말 안스러워 보이던데...








030972be27b185680a03809b8d15c1d1. » 잘생긴 얼굴로 주목받고 싶었으나 장군감 덩치로 인정받는 우리 아기






하지만 아직은 젖먹이니까 조심하되 큰 걱정은 할 필요없다는 의사의 위로(?)를 듣자마자 나의 근심은 홀라당 날아가 버리고 예의 '아기 우상화' 작업이 시작됐다. 그래, 아기는 통통해야 제맛이지, 얼마나 귀여워? 아유 예쁜 내새끼. 아이의 상태에 대한 근심은 '괜찮아'라는 의연함을 넘어서 '97%라 행복해요' 수준의 자기최면을 향해 급속도로 화학적 변화가 이뤄졌다. 아니 왜 우량아 대회는 없어진 거야? 우리 애기 출전했으면 상타고 분유 모델 나갈 수 있었는데 말야.






아이를 가지기 전 아이 엄마들의 못마땅한 행동 중 하나는 아무도 보여달라고 하지 않은 아기 사진을 주르륵 보여주면서(핸드폰 덕에 옛날처럼 지갑 속 사진 한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끝내 '귀엽다' '예쁘다'를 토해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인사치레로 "아유 귀여워" 하면서도 속으로는 '설마 금복주같은 이 얼굴을 예쁘다고 보여주는 건 아니지?' 흉을 본 적도 많다. 






그리고 지금의 나, 몸무게 97%의 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아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 애 엄마들의 자기도취를 함께 흉보던 싱글 선후배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선배만은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흥, 실망이예요" 대충 이런 반응이다.






아이를 낳으면 이런 저런 신체의 변화를 겪는데 아무래도 망막 쪽에도 변화가 오는 것 같다. 평소에는 멀쩡히 작동하면서 티브이에 나온 스타들을 보며 "눈가 주름 저거 어쩔거니" "인간적으로 다리 너무 짧다" 온갖 엄정한 품평을 하던 시각기능이 아이를 보는 순간 하트를 뿅뿅 날리며 자동 '뽀샵질'을 한다. "정말 너무 예쁘지 않아? 아니,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다가 말야"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객관적으로다가 욕먹어" 이래서 아빠 사랑과 엄마 사랑은 차원이 다른 거다.






내가 105동(우리 아파트 동) 15층 꽃남 우리 아기를 전국구 꽃남으로 '우상화'하고 있는 동안 우리 집 다른 편에서는  또 다른 '신화화' 작업이 이뤄지는 중이다. 바로 영유아 아이 있는 집이면 다들 하나씩 키우고 있다는  '천재' 신화 만들기다.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가 나의 전매특허라면 "얘는 다른 애들과 좀 달라"는 할머니와 이모의 전매특허다. 예를 들어 생후 한달쯤 됐을 때 언니는 아이를 봐주면서 메롱이니 '죔죔'이니 하는 걸 가르리고 있었다. 작은 이모의 반복되는 '죔죔' 앞에서 멍때리던 아기는 지루한지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을 잠시 폈는데 언니는 "어머머 얘 좀 봐, 죔죔을 하네" 열광했다.






백일 지나 옹알이를 하면서는 가끔 '마' 같은 자음을 발음하는데 이게 할머니에게는 '엄마'소리로 들렸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는 태어난지 몇달 안돼 메롱, 죔죔 등 갖가지 재롱을 피우면서 엄마도 말할 줄 알고 손발도 다 아는 비범한  아기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물론 우리집 식구들에게만.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을 때는 제발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기도를 하다가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다른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겼으면,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으면. 아이를 낳기 전에는 쓸데없는 지출안하고 물려받은 옷과 물건들로 알뜰하게 키우겠다 결심했지만 이 옷을 입으면 더 예뻐보일텐데 하는 마음으로 슬그머니 옷값 지출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욕심의 발로일 터이다.






하지만 영재, 공부 등에 대한 부모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사하는 것에 비하면 옷값 정도 애교다. 이런 부모의 열망에 힘입은 상술로 요새는 영재가 넘쳐나면서 어디 인증 영재이냐로 또 줄을 세운다고들 한다. 그래서 "우리 애 천재인가봐"의 레퍼터리는 우리집도 빠져나가지 못할만큼 유구하고도 광범위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자식사랑은 좀 불편하고 두렵기도 하다. 이러다가 조기교육이니 영재교육이니 하는 늪에 빠져들까 겁난다.






아무래도 외모지상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천재나 영재의 환상보다는 잘생긴 외모로 승부를 보겠다 마음 먹은 나는 마포 꽃남의 존재를 인증받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동네 마실을 나간다. 얼굴 익힌 아주머니 한분이 인사를 한다. "장군감 오시네" 어흑~~~ 너 오늘부터 당장 다이어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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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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