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d88f4ac45904b4669ff0eef6e152d.                                                                                                               (윤정 2007년 8월)



서른 둘에 결혼을 해서 서른 셋에 첫 아이를 낳고 한 달을 밤마다 울었다.

애 키우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던 것이다.

첫 아이는 4킬로가 넘게 태어나서 몸도 무거웠고 잠 재우는 일이 쉽지 않아서 밤마다

무거운 아이를 안고 마루를 서성여야 했다. 그렇게 간신히 재워 놓으면 금방 깨서

자지러지게 울었다. 다시 안고 어두운 집안을 돌아다니며 울었다. 애 키우는 일이 힘들고

막막해서 무섭고 두려웠다. 첫 아이는 별안간 몸을 떨며 숨 넘어갈 듯 울어대곤 했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마다 초보 엄마인 나는 가슴을 졸이며 애를 달래고, 어르고,

안았다가 뉘였다가 정신이 없었다. 아이가 아픈걸까, 어디가 잘못된 걸까, 아이가 울면 겁부터

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는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낮설고 두려운 핏덩이였다.

그렇게 정신없고 겁나는 밤을 보내고 기진맥진 해져서 새날이 밝으면 또 길고 긴 하루를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했었다. 너무 예뻤지만 아이를 알아가고, 보살피는 일은

하루하루 도전이고, 막막한 숙제같았다.

잠을 너무 안 자도 무서웠고, 너무 오래자도 겁이 났다. 열이라도 나면 정신이 다 아득해졌고

무른 똥을 싸도 철렁하고, 아이 하나가 적셔 내 놓는 기저귀가 이렇게 많은 것에 놀라곤 했다.

남편이 출근한 집에서 어린 아이랑 씨름하다가 혼자서 펑펑 울고는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는 우리를 어떻게 길렀어?'

'갑자기 무슨 소리냐?'

'애 하나도 이렇게 키우기 힘든데, 엄마는 쌍동이인 우리를 어떻게 길렀냐고..

그때는 세탁기도 없었고, 기저귀도 몇 개 없었다면서...'

'아이고, 어떻게 길렀는지 생각도 안 난다. 기저귀야 하나 적셔내면 우물가로 달려가서

빨아 널고, 또 하나 젖으면 달려가서 빨고 하며 키웠지'

'그러니까, 그렇게 힘들었는데 어떻게 키웠냐고..'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또 울었다.

'엄마, 애 키우는게 왜 이렇게 힘들어? 나만 힘든건가? 엄마는 안 힘들었어?'

'힘 안들고 어떻게 애를 키우냐. 애 낳고 보니까 엄마 생각이 나든?'



엄마는 첫 딸을 낳고 1년이 채 안되어 딸 쌍둥이를 낳으셨다.

어려서 조실부모한 가난한 아빠를 만나서 어렵게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으니 모든 것이

다 궁핍했을 것이다. 첫 딸이야 살림 밑천이라고 했으니 귀엽고 귀했겠지만

1년도 안되어 또 딸 쌍둥이를 낳으셨을땐 키울 일이 막막해서 두 분이 밤새 우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첫 딸도 아직 어린데 쌍둥이를 또 낳으셨으니 아기 셋을 한꺼번에 키우신것이나 다름없다.

젖이 일찍 떨어진 큰 딸은  하루 종일 울고 또 울어대는데 고물거리는 쌍둥이는 수없이 기저귀를

적셔내니 잠시인들 쉴 틈이 있었을까. 외할머니가 도와주셨다고 하지만 엄마의 수고는

말 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아이들이 아프기도 했을텐데  그런 밤은 또 어떻게 견디셨을까.

아이 하나 생으로 몸을 열고 낳는 일도 이렇게 죽을 만큼 힘이 드는데 엄마는 집에서

쌍둥이를 어떻게 낳으셨을까. 몸조리나 제대로 하셨을까. 두 아이에게 어떻게 젖 물리고

같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돌보셨을까. 얼마나 애쓰셨을까.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엄마와 그렇게 오래 같이 살았으면서도

엄마의 고생이나 애쓰는 것들이 실감나지 않았었다. 나는 그저 늘 잘 안 풀리는 내 연애나

일들, 미래에 대한 고민같은 것들만 붙들고 살았었다.

그러다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덜컥 엄마가 되고 보니 애 키우는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편안한 아파트에서 갖가기 가전 제품을 사용하면서

애 하나 키우는 것인데도 나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든 사람같이 느껴졌다. 이런 환경에서도

아이 키우는 일이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그 가난하고 궁핍했던 그 시절에 세 아이를

어떻게 한꺼번게 키우셨을까. 생각할수록 기막혔다. 우리를 낳았을때가 불과 서른 안팎이었을

그 시절 엄마의 고생과 수고가 3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생하게 실감이 났던 것이다.

엄마가 가엾고, 엄마한테 미안하고, 엄마가 고마와서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엄마, 이렇게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어. 정말 고마와요. 이제껏 우리들 키워온게

당연한 일인줄만 알았는데, 세상에나... 엄마.. 얼마나 힘드셨어요'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펑펑 우는 딸의 철없는 인사를 받으며 엄마도 같이 우셨다.

'그래도 너희들이 많이 도와줘서 힘들 줄 모르고 키웠지. 너희들이 잘 커줘서, 그래서 키운거지'



34년을 사는 동안 나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큰 정성과 수고를 먹고 커 왔는지 말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내 아이를 향한 내 마음과 염려과 손길을 보면서

나를 키우신 내 엄마의 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난한 살림속에서 그저 한없는 수고와

고생과 정성으로 우리를 이렇게 길러 오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새삼 눈물이 나고, 새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날 나는 여섯 아이를 낳고 키워오신 내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고, 세상 모든 엄마들의 한없는

수고를 생각하며 울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에 울고 또 울었다.

아들을 낳은 엄마가 되고 보니, 세 아들만 두신 시어머님이 훨씬 더 잘 이해 되었다.

시댁에 가는 일이 여전히 불편하고 힘들지만, 내가 만약 시어머님이라해도 도시에 사는

내 자식이 얼마나 보고싶을지 짐작해보면 마음이 움직였다.

서른 넷에 비로소 철이 든 것이다.



여자는 엄마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엄마를 다시 만난다.

몸을 통해 출산이라는 같은 경험을 나눈 사람으로서 가슴으로 이해가 되고, 알아지는 것이다.

아이가 아픈 날, 아픈 아이 곁에서 밤을 새면서 어린 날의 내 머리맡을 이렇게 지키셨을

엄마를 만나게 되고, 아이때문에 속상하고 기쁜 순간에 내 엄마와  내 부모님이 느끼셨을

감정을 헤아려보게 되는 것이다.



결혼전에 부모님과 같이 살때는 난 그닥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마음은 누구보다 부모님을

염려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왠지 어색해서 표현도 잘 못했고, 부모님 앞에서 자주 편안한

낮도 보여드리지 못하는 딸이었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서야 내 엄마, 내 부모의

수고에 눈이 떠 졌다. 여섯 자식을 이만큼 키워 오신 것만으로도 두 분이 얼마나 큰 일을

해 내신 분인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분들인지 절절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나 같은 여자로서 엄마에 대한 감정은 연민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층 더 깊어졌다.

결혼전보다 훨씬 더 자주 엄마에게 전화를 걸게 되고, 애 키우는 일을 물어보며 수다도 길어졌다.

엄마의 몸이 겪어낸 출산과 회복과 고생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더 잘 돌보게 된다.

다섯 자매중에서 유일하게 전업주부인 나인지라 엄마는 자주 우리집에 다녀가시며

손자 손녀들의 재롱과 성장을 함께 나누고 있다.

같이 푸성귀도 다듬고, 드라마 얘기도 하고, 이웃집 사람들의 소문도 쑥덕이고, 다른 자매들

근황도 전해 듣고, 조카들 이야기도 함께 하면서 두 여자는 자주 어울린다.

서로 고마와하고, 서로 애틋해 하고, 서로 아껴주면서 시간이 갈 수 록 더 닮아가는 두 사람이다.



내가 어렸을때 외할머니가 우리를 많이 돌봐주셨다.

지금은 내 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많이 거두어 주신다.

딸을 둘 낳았으니 언젠가는 나도 외할머니가 될 것이다.

내 외할머니가 그랬고, 내 엄마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내 자식들이 낳은 아이들에게

따스하고 상냥한 외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렇게 내 엄마와 내 엄마의 엄마를 통해서 받은 사랑과 정성을

내 손주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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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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