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cc282d439cae4e0fcdf1a579f33d7f. » 아동 성폭력 사건들로 자녀 안전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면서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를 마친 아이들과 함께 귀가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자고나면 성폭력 성희롱, 처벌도 턱없이 관대   
아는 사람 더 조심하고 운동장도 위험한 세상


어렸을 때 난 골목길에서 동네 친구들과 소꿉놀이, 숨바꼭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땐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족구, 피구, 오자미 놀이(헝겊 주머니에 콩을 넣고 봉해 공 모양으로 만들어 던지며 노는 놀이), 고무줄 놀이를 하며 실컷 놀았다. 골목길 하면 내겐 동심으로 돌아가는 향수를 불러일으켜주고, 학교 운동장은 ‘초딩’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이 있는 장소다.

그런데 골목길과 운동장에 대한 나의 심상은 언젠가부터‘따뜻함’에서 ‘무서움’으로 바뀌었다. 골목길이나 운동장이 더이상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 아닌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두순 사건 이후 올해 김길태 사건과 김수철 사건 등 충격적인 아동 성범죄가 계속 일어나면서부터다. 어리고 힘없는 아이들이 등하굣길에서 또는 혼자 집에서 있다 잔인한 범죄의 대상이 됐다. 초등학생 부모들은 이제 아이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우려하며 학교에 바래다주고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 되버렸다. 특히 안전에 대한 우려는 딸을  키우는 부모라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3살배기 딸을 둔 나는 현재 걱정은 덜하지만, 앞으로 학교를 보낼 때 아이의 안전을 어떻게 책임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딸에게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러줘야 할테고, 딸이 좀 더 크면 늦은 시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도 제한하게 될테니 참 서글프다.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즐거움과 자유를 내 아이는 만끽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말이다.  


지난 15일 한겨레 여기자회는 한겨레신문 6층 대회의실에서 ‘최근 아동 성폭력 범죄 실태와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10년째 아동 성폭력 사건을 맡아온 검사와 간담회를 열었다.  만약 내가 딸을 낳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이날 간담회에 굳이 참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딸을 키우는 나는 최근에 아동 성폭력 사건 보도를 접한 뒤의 공포때문에 참석했다. 이날 간담회엔 딸 키우는 나같은 부모, 사회부 기자, 아동 성폭력에 관심 있는 사내 구성원들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 검사는 아동 성폭력 실태, 우리나라 아동 성폭력 사건 조사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줬다.

모르던 사실이 많았다. 일단 우리나라 법원이 아동 성폭력에 대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게 관대한지 몰랐다. 그에 따르면, 2006~2007년까지 2년동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3684명 중 실형선고는 22.6%에 그쳤단다. 나머지 31.6%는 집행유예를, 45.8%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3살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죄로 실형선고를 받더라도 5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이 선고된 자는 16명(14.3%)에 불과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12살 미만자를 추행하면 무기 또는 최하 25년의 유기형과 평생 전자발찌 착용을 부과시키거나(제시카법) 12세 미만자를 강간한 경우 사형 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엄중처벌하도록 되어 있다고(플로리다 형법) 하니 우리가 얼마나 아동 성범죄에 관대한지 알 수 있다. 법원에서 아동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는다면 좀 더 엄중하게 처벌을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또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우발적 범죄보다는 가까운 지인들에 의한 성범죄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성적 괴롭힘과 애정 표현을 구분할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나 아동을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영아기 때부터 발달 수준에 적합한 내용과 방법으로 체계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 보도된 충남 공주에서 마을 주민 9명이 지적 장애 여학생을 성폭행해 무더기로 구속된 사건을 보면, 지적 장애로 인해 아이가 반항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해 가까운 지인들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성폭력 예방교육에 대해 참고할 만한 사이트는 해바라기센터다. (http://www.child1375.or.kr/about/education.asp)  해바라기센터는 13살 미만 아동의 성폭력 신고 및 접수, 응급진료 및 치료, 법적지원 뿐만 아니라 성폭력 예방 및 교육 관련 일을 맡고 있다. 나 역시 이날 간담회 참석 뒤 이 사이트를 알게 됐고, 사이트를 방문해 좋은 자료를 얻었다. 앞으로 딸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시킬지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됐다.


검사는 최근 언론에서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룰 때 화학적 거세나 전자발찌 등 가해자 처벌에만 집중하는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려면 공부방이나 방과후 학교 등 사회안전망 확충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13살 미만 아동의 경우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의 홀로 방치된 아이들, 또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범죄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공부방이나 방과후 학교에 대한 예산 지원, 정책적 배려 등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을 키우는 엄마는 아이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 외에도 일상적으로 분노할 사건들을 많이 접한다. 최근 이강수 고창 군수가 계약직 여직원에게 누드사진을 제의해 물의를 빚었고,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은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대생에게 “다줄 생각을 해야하는 데 그래도 아나운서를 하겠냐”는 성희롱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의식을 갖추고 있다니 한심할 뿐이다. 누드사진 제안을 받은 계약직 여직원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 것이며, 아나운서의 꿈을 갖고 있던 그 여대생은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을까. 그 계약직 여직원과 아나운서 지망생 여대생이 내 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딸 키우는 부모로서 분노감은 더했다.


흔히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21세기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여성이고,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과 딸을 가진 엄마, 또 그들의 딸들이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고, 분노하는 세상에서, 과연 그들이 얼마나 맘껏 자신의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을까.  어떤 세상이 여성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인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볼 일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 아동 성범죄 관련 알아두면 좋은 것들


1. 아동전담검사(Prosecutor For Chiid, PFC) 제도


지난 2009년 10월14일부터 대검에서는 13살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유괴, 학대 등 아동에게 심대한 피해를 야기한 범죄를 ‘아동보호사건’이라 규정하고, 아동보호사건은 각 검찰청별로 경력이 풍부한 검사를 아동전담검사로 지정하도록 했다. 아동전담검사는 사건 초동 수사단계부터 공판, 형의 집행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담하는 검사다. 


이 제도에 따르면, 사법경찰관은 고소장 접수, 신고접수, 첩보 등으로 13살 미만 아동의 피해사실을 확인하면 지체없이 관할검찰청 아동전담검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아동전담검사는 보고 즉시 사건의 경중 여부를 판단해 경찰에 지휘를 하고, 전문수사자문위원 제도를 활용해 초동단계부터 아동전담검사와 자문위원이 함께 아동의 연령과 상태에 따라 적절한 수상 방향을 설정해 피해자 조사를 1회에 마치도록 하는 제도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조사 과정에서 제2차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전담검사를 둬 최초 조사를 제대로 하자는 취지다. 특히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법정에서 제2의 피해를 입을 수 있기때문에 영상녹화를 통해 증거효력을 입증하고자 한다. 아동전담검사는 사법경찰관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검토한 뒤 피해아동 등에 대한 사법경찰관의 진술 녹화 과정에 직접 참석해 지휘할 것인지 여부를 통보하고, 사법경찰관은 조사과정에 전담검사가 참석한 경우에는 검사의 지휘를 받아 진술녹화를 실시한다.


2. 아동 성범죄의 공소시효와 처벌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는 아동이 성년이 된 날로부터 기산하고, 그 보호자가 형사고소한 경우 범죄행위 종료일로부터 공소시효가 경과했더라도 아동 본인이 성년이 되지 않았다면 아직 공소시효가 경과하지 않은 것이므로 유의해야 한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범죄 관련해 13살 미만인 경우 반의사불벌죄(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을 하지 않는 것)가 적용되지 않았으나, 13살 이상 18살 미만에 대한 범죄는 반의사불벌죄였다. 그러나 올해 4월부터 관련법이 바뀌어 13살 이상 18살 미만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도 반의사불벌죄가 없어졌다. 

정리를 하자면, 아동청소년에 대한 범죄는 고소 없이도 수사가 가능하며, 수사와 처벌이 합의와 상관없이 죄가 입증되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3. 사례를 통해 본 아동 성범죄 관련 부모가 알아둬야 할 것

4살짜리 솔이(가명)는 일주일에 3번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배웠다. 그런데 어느날 솔이 엄마는 아이가 팬티를 너무 자주 갈아입고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그래서 혼잣말로 “애가 왜 자꾸 팬티를 갈아입지... 내일은 병원에 데려가봐야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솔이는 엄마가 물어보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 아이의 자발적 진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관장 선생님이 자꾸 만지니까 그렇지”라고 말했다. 너무 놀란 엄마는 당장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이에게 전혀 티내지 않고 일단 아이를 재웠다. 그리고 엄마는 푹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솔이야. 아까 엄마한테 말했던 게 뭐였지?” 그랬더니 솔이는 “응. 아까 관장님이 여기 만지니까 관장님 혼내줘야 한다고 했잖아”라고 말했다.


( ▶이런 상황에서 부모들이 흥분을 하면 절대 안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놀라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면 겁이 나서 제대로 표현을 못한다고 한다. 또 절대 유도질문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개방형 질문을 해야 증거 효력이 있다고 한다. “관장님이 때렸지? 관장님이 만졌지”라는 식의 유도질문은 증거 효력이 떨어져 다시 피해 아동들을 법정에 세워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솔이 엄마는 피해 사실을 재차 확인한 뒤 경찰에 아동의 피해 사실을 알렸고, 경찰은 아동전담검사에게 사실을 알렸다. 경찰과 아동전담검사는 솔이를 해바라기센터로 데려가 놀이 치료를 하면서 영상녹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얻었다. 이 아이의 경우 수영 선생님이 수영을 가르치면서 성추행을 한 경우였다. 결국 아이의 영상녹화는 법정에 증거로 제출했고, 통상적으로 4살 아이의 진술이 증거 효력을 갖기 힘든데도 신빙성이 확보됐다고 인정이 됐다.


(▶ 아동 성범죄 재판에 있어 아동 진술의 신빙성이 가장 중요하다. 아동의 나이가 어릴수록 최초 진술이 자발적이었는지, 전문가의 참여가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보통 아동성폭력범죄 전문기관인 해바라기 아동센터, 보라매 원스톱 지원센터 등에서 아동에 대한 상담과 치료과정에서 경찰관이 참여해 영상녹화를 하게 되는데, 이 경우 참여한 전문가 즉 보통은 임상심리전문가 등이 아동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지, 아동에 대해 성폭력 피해 가능성이 높은지 등에 대하여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를 아동피해자조사보고서라 하는데 중요하다. )


결국 혐의를 부인하던 수영 강사는 범죄 사실을 자백하고 반성을 했다. 그는 13살 미만 미성년자강제추행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사실 4살이라는 아이를 성추행하고 집행유예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은 우리 법원이 성범죄에 얼마나 관대한지를 보여준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동종전과가 없고 반성을 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피해자와 합의를 하더라도 강력하게 처벌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아들이라고 안전할까?


흔히들 아동 성범죄는 여아들만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아들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남아를 대상으로 한 강제추행 등 성범죄도 심심치 읺게 일어나고 있고, 남아들 역시 성범죄에 노출될 경우 엄청난 후유증을 겪는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항상 아이들의 행동이나 얼굴 표정, 감정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또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하며,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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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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