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10.jpg

 

"엄마, 머리 감을께요. "

"으응.. 그래"

 

엉겹결에 대답하면서 저 혼자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 모습을

보다가 아... 하는 낮은 감탄이 흘렀다.

그렇구나. 이젠 혼자 머리를 감는 구나.

 

열살이 된 여자 아이가 혼자 머리는 감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롭냐고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내게는 정말 육아 인생 13년 만에 맞이하는

감동스런 순간이다. 큰 딸을 키우는 만 9년 동안 머리감기기의 전쟁이

끝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정일보다 보름이나 일찍 태어났을때 딸 아이는 머리칼이 거의 없었다.

그랬던 아이가 첫 돐이 지나면서 머리칼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놀라운 속도로

자라났다. 세 돐이 지났을때는 엉덩이 근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이 된 것이다.

머리 길이도 경이로왔지만 숱도 놀랄만큼 많았다.

양 갈래로 땋고 나가면 한쪽 갈래가 보통 아이들의 머리칼 전체를 묶은 것보다도

더 탐스러울 정도였다. 딸은 머리카락 때문에 어디서나 주목을 받았고, 긴 머리칼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 했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머리 감는 것을 아주 아주 무서워 한다는 것이었다.

 

물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아이들은 아기때부터 물을 좋아하고 물에 들어가면 잘 노는가 하면, 큰 딸은

목욕은 좋아해도 머리를 감는 일은 병적으로 싫어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기때 안고 감기던 시절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어느정도 자라서

저 혼자 앉아 고개를 숙이거나 젖혀서 머리를 감게 된 때부터 사달이 났다.

아들을 키우다가 딸을 키우게 된 나도 여자 아이의 머리를 건사하고 감기는 데 오랫동안 서툴었는데

그러는 동안 몇 번 머리를 감길때 샴푸 거품이 눈에 들어가기도 했던 모양이다.

보통 그럴경우 맑은 물로  씻거나 마른 수건으로 재빨리 닦아주면 상황이 해결되곤 하는데

딸의 경우는 달랐다. 자지러지게 울고 펄펄 뛰면서 공포에 질리더니 그 다음에는 어떤 수를 써도

머리를 감으려고 하지 않았다.

 

비누거품이 눈에 들어갈까봐 그러는구나.. 싶어 아이들 머리 감기는데 유용하다는 이런 저런

도구도 사 들이고 안 매운 샴푸를 써 봐도 소용없었다. 머리를 감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딸은 공포 반응을 보였다.

다 큰 아이를 안아서 감기려고도 했으나 자세가 문제가 아니었다. 무조건 머리 감는 일이

싫었던 것이다.   어르고 달래도 보고, 야단도 쳐 보고 억지로 힘으로 해 보기도 했지만

머리에 물이 닿는 순간부터 덜덜 떨며 비명을 질러대는 딸 아이의 모습은 흡사

고문을 받는 사람 같이 절박하고 끔찍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도 머리를 안 감길 수 는 없어서 몇 번 억지로 머리를 감겼으나 그때마다 죽을 것 처럼

비명을 질러대는 딸의 모습에 마침내 나는 단념했다. 딸은 정말 입학하기 전까지

한 달에 두 세 번 감는 것으로 견뎠다. 안 감으면 가렵거나 답답하기도 할텐데

딸은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쫑쫑 땋는 머리스타일을 늘 유지하고 있어서

어쩌다 머리를 풀러도 냄새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조금씩 크면서 다행스럽게도 머리 감는 일에 대한 공포는 서서히 잦아 들었지만

마른 수건을 손에 들고서 물 한 방울이라도 얼굴로 흘러내리는 기미가 보이면 닦아가며

머리를 감곤 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저 혼자 머리를 감는 일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웃에 딸을 키우는 엄마는 자기 딸은 여섯살이 되니까 일러준 대로 혼자 머리를 잘 감더라며

왜 그게 안될까.. 갸웃하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그 아이는 여섯살때부터 수영장으로 강습을

받으러 다니면서 혼자 머리도 감고 몸도 씻고 나오는 야무진 모습을 보였다.

밑으로 더 손이 많이 가는 막내도 있는 내게 그런 모습은 솔직히 부러웠다.

 

머리가 길던 딸은 여섯살 무렵 어깨까지 오는 길이로 성큼 잘랐다. 그랬더니 머리 감기는 일이

한결 수월했다. 그래도 머리숱이 너무나 많아 머리카락을 물에 적시는 일도, 샴푸를 고루

바르는 일도, 야무지게 문질러 거품을 내고 구석 구석 말끔히 씻어내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다.

다 감고 나면 마른 수건으로 털고, 드라이어로 말리고, 매끈하게 빗기까지 땀이 쪽 빠질만큼

힘이 들어가곤 했다.

추운 단독주택에서 겨울을 날 때 큰 딸의 머리를 건사해주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주 아이를

탓하고 불평을 하곤 했다. 그렇다고 긴 머리를 좋아하는 딸의 머리칼을 내 맘대로 짧게

자를 수 도 없었고, 저 혼자 못하는 일을 하라고 등 떠밀 수 도 없어, 나는 오랫동안 딸의

긴 머리를 감기고, 말리고 빗기는 일에 많은 애를 써야 했던 것이다.

 

입학을 하고, 친구들이 생기고 가끔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와 하루 자고 가기도 할 때

딸은 친구랑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 몸도 같이 씻고 머리고 같이 감고 나와 나를 깜짝 놀래켰다.

내가 감길때는 엄살도 많고 요란스러웠는데 좋아하는 친구랑 둘이 들어간 목욕탕에서는

킥킥 거리는 즐거운 소리와 함께 물소리만 들리더니 둘 다 젖은 머리로 생글생글 웃으며

목욕탕 문을 열었던 것이다.

수건으로 털어주고 드라이를 해주는 것은 여전히 내 몫이었지만 그래도 친구랑 둘이

머리를 감고 나왔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대견하고 신기해 어쩔 줄 몰랐다.

엄마가 가르쳐주고 지켜볼때는 서툴던 일이, 이미 익숙해 있는 또래 친구에게 배우고

같이 하니 용기도 생기고 요령도 금방 터득한 모양이었다. 아하..

 

아홉살이 되고 나자 딸 아이는 머리 감는 일에 조금 더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을 적셔주면 샴푸를 발라 본다거나, 앞 머리만 헹구어 본다거나, 수건으로 조금씩

말려보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확 달라지진 않았지만

아주 천천히 딸은 애쓰고 있었다.

조금 더 빨리 내 손을 털었으면.. 하는 욕심이야 늘 있었지만 일부러 재촉하진 않았다.

거의 다 왔으니 조금 더 기다리면 저 혼자 하는 날도 오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어떤 날은 동생과 둘이 목욕탕에 들어가 자기보다 숱이 적은 동생 머리를 감겨주었다고

자랑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물로만 감아도 되면 저 혼자 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하더니

마침내 혼자 들어간 목욕탕에서 아주 아주 오랜 시간과 아주 아주 물을 많이 쓰는 소리가

들리던 어느날 밤, 딸은 김이 자욱하게 서린 목욕탕 문을 열고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엄마, 나 혼자 머리감았어요.!!!"

 

달려가봤더니 드문드문 샴푸기가 덜 빠진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분명 저 혼자 머리를 적시고

샴푸를 칠하고(나중에 확인해보니 딸이 샴푸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발랐던 것이 린스였다.

그래서 헹구어도 헹구어도 거품이 나와서 오래 걸린 것이었다) 헹구고, 대강이긴 해도

수건으로 머리도 말리고 나왔던 것이다.

 

"와, 윤정아 잘했다. 이젠 다 컸구나. 혼자 머리도 다 감고..."

 

나는 아주 아주 열렬하게 축하해 주고 칭찬해 주었다. 긴 시간이 걸려 해 낸 일이었다.

내겐 더할나위없이 장하고 기특한 일이었다.

윤정이는 으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빗었다.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두 딸들2.jpg

 

아이를 키우다보면 그런 순간들이 많다.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데 왜 내 아이는 아직 못 할까.. 속상하고 의구심도 드는 그런 순간 말이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어떤 아이에겐 몹시 힘든 일일 수 도 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게 된다. 그래서 똑같은 기대와 요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윤정이는 저 혼자 머리를 감기 까지 꼬박 아홉해가 걸렸다. 아직도 완전하진 않다.

그러나 어떻게든 혼자 해 낸다. 그럼 된 것이다.

이젠 머리를 감자, 감아라 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감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제가 알아서

하니까 말이다. 아직 젖은 머리를 말려주고, 아침에 엉킨 머리를 빗겨주는 일은 내 손길이

가야 하지만 이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다.

조금만 지나면 거울 앞에서 온갖 스타일로 머리를 빗어가며 멋을 낼 것이고 엄마가

해 주는 머리 모양이 더 이상 맘에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니를 보며 막내는 뭐든지 빨리 배운다. 이젠 막내가 저 혼자 머리를 감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막내는 언니보다 더 빨리 내 손을 털겠다.

 

모든 시간은 다 지나간다.

조금 더 걸리고, 조금 더 힘들어도 어쨌거나 지나간다. 그리고나면 다신 그 시절이 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렸을때는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 빨리 빨리 자라라, 제발 빨리 빨리 자라라

주문이라도 외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큰 아이가 열네살이 되면서 제 생활이 생기고, 둘째도 열살이 되면서 많은 일을 스스로

하게 된 지금은 아직 일곱살이어서 내 손을 제일 많이 의지하는 막내를 볼 때마다

천천히 자라라, 천천히.. 하는 맘이다.

이 아이까지 크고 나면 이렇게 진하게 아이와 엮여져 보내는 순간들이 너무나

그리울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이 시간을 알뜰히 즐기고 있다.

오래 내 손에 의지하다가 마침내 저 혼자 하게 되는 큰 딸의 순간도 감사하게

즐기는 것처럼...

 

10년 걸렸다.

큰 딸이 저 혼자 머리를 감기까지..

큰 아이가 학교를 좋아하기까지는 13년이 걸렸고

막내가 글씨를 쓰는데는 딱 5년이 걸렸다. 참으로 다양한 세 아이의 자라는 시간표를

이젠 신기하고,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조바심은 내려놓고, 느긋함을 가질 수 있다면 아이 키우는 일은 한결 편안해 질텐데

나도 이만큼 배우는데 13년 걸렸다.

 

그러니

모두 모두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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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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