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음식.jpg

 

몇 년 전 시어머님이 8월 초에 돌아가신 후 여름휴가는 제사를 모시는 일이 되었다.

군포와 대전, 구미에 사는 세 며느리들이 모여 제사음식을 준비하는데

올해는 유난히 더워서 힘이 들었다.

 

친정은 인천이지만 서해쪽과는 별 상관없는 도시에서 자란 내게 강릉 시댁의

문화는 정말 많이 달랐다. 제사와 명절을 지내는 모습이 특히 그랬다.

친정에서 살때 제사건 명절이건 단출했다.

종갓집에 2대 독자인 친정 아버지였지만 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제일 가까운 친척들도 모두 먼 지방에서 살고 계셔서 제사와 명절은 늘

우리 가족끼리 지내곤 했다.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여섯 아이를 키우는 살림이라 한번도 넉넉해 본 적이 없어서

차림새도 소박했다.

 

친정에 있을때 제사란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딸 다섯을 낳고서야 막내 아들을 두신 아빠는 제사때마다 어린 동생 대신

장성한 딸들과 함께 준비를 하셨다.

딸들은 제사를 모실 수 없다는 전통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으셨다.

너희들이 자손이니 조상에 대해서 알아야지... 하셨다.

제사는 당신이 주관하셨지만 술은 위로 큰 딸 셋이 번갈아 따르게 하셨고

그럴때마다 제사의 절차와 의미를 나직하게 설명해 주시곤 하셨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 제일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제사때 였다.

마흔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당신 나이 마흔이 되고보니 얼마나 젊은 나이였던가

사무쳤다는 이야기며, 늦게 외아들을 낳고 모든 정성을 다 쏟으시가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림움을 털어 놓으시던 것도 제사 때 였다.

아빠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 가장 여린 마음을 슬쩍 엿보던 때가

제사였다. 부모를 일찍 여윈 설움, 여전히 부모가 그리운 마음,

부모없이 나이들어가는 쓸쓸함 같은 것들이 어린 내 마음에도 전해져서

같이 숙연핸지곤 했다. 그게 친정의 제사였다.

 

그러나 시댁은 강릉 토박이인데다 일가 친척이 모두 근처에 살고 계셔서

명절에 한 번 보이면 40명 가까이 되는 대 가족이었다.

제사 음식도, 예법도 달랐다.

친정에서는 밤 아홉시 무렵 제사를 지냈지만 강릉은 밤 열두시가 넘어야

제사가 시작된다. 음복을 하고 뒷정리를 마치면 보통 새벽 2시가 넘곤 했다.

제사 다음날은 상하기 쉬운 제사 음식을 먹어치는 일이 큰 고역이었다.

 

제일 더울때, 먼 곳에서 모여 허위 허위 제사를 준비하고 차리고나면

다시 정리하고 먼 곳으로 돌아가기 바쁜 모습들을 보면서 늘 아쉬운 마음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날 자손들이 모이는 것은 무엇보다 돌아가신 분을

다시 만나는 자리라는 의미가 클텐데 정작 절차에 신경을 쓰다보면

어머님에 대한 추억 한 자락씩도 나누지 못하고 끝나버리게 된다.

 

제사와 명절이 흩어진 가족을 다시 모으게 하고, 한 가족을 엮어주는 정신적

유대를 깊게 한다는 것엔 공감한다.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을 후손들이 계승하고 지켜나가는 것도 귀하다.

부모세대와는 달리 젊은 사람들은 예전만큼 엄격하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모든 전통과 예법도 결국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우리 세대의 제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절차와 형식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더 나눌 수 있는 제사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내겐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있다.

몇 년전 큰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그녀는 그 후 삶도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죽음이란 삶속에 스며있는 것이고,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은 일상의 많은 것들을 새롭게 생각하게 한 것이다.

 

그녀는 얼마전 유언장을 만들어 블로그에 공개했다.

마흔 일곱에 쓰는 유언장은 심각하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았다.

맑은 정신일때,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을때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고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들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퍽 의미있는

일 이었다.

 

그 유언장에서 그녀는 제사에 대한 그들 부부의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서 남겼다.

죽은 날을 기억하지 말고,

결혼해서 부부가 된 날이야말로 가족의 출발이었으니 그 날을 기억해 줄것.

먹지 않는 제사 음식을 장만하지 말고,

평소에 부모가 좋아했던 음식을 준비해 상에 올릴 것,

절차와 형식에 매달리지 말고,

그날은 자손들이 모두 모여 부모가 좋아했던 음식을 함께 나누며

부모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자리로

만들어 줄 것이 핵심이었다.

 

신선했다. 유쾌했다.

어른들의 제사는 어른들이 살아왔던 세계의 반영일것이지만 내 제사는

내 뜻대로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제사는 구미에 사는 형님 집에서 모시게 될 것이다.

어른들 세대가 지나간 후의 제사는 어쩌면 또 조금씩 달라질 지 모른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는 또 많은 변화들이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더 나이드시기 전에 당신들의 제사를 어떻게 지내줄 것을 바라시는지

여쭈어야 겠다. 내 제사에 대해서도 남편과 의논해서 정리해 둘 생각이다.

어떤 형식이든 가족이 서로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자리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기회에 나도 내 유언장을 만들어 봐야겠다.

사후를 생각하는 일은 지금을 더 잘 살게 한다.

더운 여름 가고 찬바람이 불때면 내 삶에 대한 명쾌한 정리 몇 줄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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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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