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일어나자마자 녀석을 찾았다. 어젯밤 귀가가 늦어 녀석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잠이 들었지만, 지긋지긋한 추위도 끝이 났으니 오늘은 녀석과 나들이 나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마침 자고 일어난 녀석은 외출하려는 삼촌 앞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녀석에게 다가가

얼굴을 맞대고 눈을 맞췄다. 그런데...

 눈이 퉁퉁 부어있다. 눈물도 고여 있었다. 나를 보고 웃기는 웃는데...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말간 콧물은 인중을 지나 금세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25b0b98af85de71f4d8b56d3196ed561. » 저 아파요!



 































































    

   

    지난 수요일 아침, 자고 일어난 녀석은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말문이 터져 재잘거리던 녀석이

아무 말도 못할 정도였다. 목감기가 심했다. 장인·장모님이 오셔서 녀석을 돌봐주시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녀석은 잠들어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할머니와 마루에서

잠든 녀석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몸이 뜨끈뜨끈했다. 수건에 물을 적셔 이마에 얹어주었다.

잠자던 아내를 깨워 응급실 출동 문제를 상의했지만 그 정도 사안은 아니라고 결론 내리고 다시 누웠다.

     그런데 코가 막힌 녀석의 호흡은 가쁘기만 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불안감에 몇 시간 동안

녀석의 가슴에 손을 얹고 토닥여주다 잠이 들었다.

 그 다음날 밤에는 새벽녘에 한 시간 단위로 울음을 터뜨리며 보챘다. 안아주고 업어주고 달래길

여러 차례. 지친 아내는 새벽 5시에 녀석을 외할머니한테 보내야 했다.



 녀석은 지금까지 감기를 심하게 앓아본 적이 없다. 웬만한 감기는 콧물 며칠 흘리다 이겨낸 적도

많았고, 병원에 가서 하루 정도 약 먹으면 금방 나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증상이 오래갔다.

천식환자처럼 밭은기침도 토해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먼저, 실내온도. 집에 웃풍이 세다 보니 온도 맞추기가 참 쉽지 않다. 방바닥은 절절 끓어도

코는 시리다. 그 때문에 취침시 온도를 더 높이자는 아내와 며칠간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불을 차내 버리고 자는 녀석으로서는 온도 조절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며칠간 다녔던 동네 병원의 불친절도 찜찜했다. 집앞에 내과, 소아과, 재활의학과 등 여러 과목의

입원시설까지 갖춰놓은 작지 않은 규모의 병원이 있어 주치병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장인어른 말씀을 들어보니 그럴 게 아니었다. 분명히 개원 시간을 9시라고 안내해놓고도

“10시에 문 연다”며 환자를 돌려보내는가 하면, 할아버지는 아픈 손자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은데

의사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퉁명스런 답변만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런 불친절과 무성의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지만, 3일이나 병원에 다녔어도 녀석의 증상에는 차도가 별로 없었다.



 감기와 싸우던 4일째 날, 눈물 가득 고인 퉁퉁 부은 녀석의 눈빛은 마치 ‘아빠! 일찍 들어와서

나한테 신경 좀 써주세요’라고 내게 항의하는 것 같았다. ‘그래, 성윤아... 아빠가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구나.’

     미안한 마음에 난 녀석을 들쳐 안고 나왔다. 근처에 그 동네 의원을 대체할 마땅한 병원이 없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새롭게 찾은 이비인후과의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녀석의 상태를

살펴주셨다. 몸에 열이 있기는 하지만 목 상태도 나쁘지 않고 크게 걱정할 상태는 아니라고 하셨다.

마음이 놓였다.

 집에 돌아오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녀석은 몸 상태가 안 좋았는지 제 발로 침대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난 그 사이, 불친절한 병원에서 처방해준 갖가지 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일요일 아침, 녀석은 빠르게 활력을 되찾았다. 녀석의 투병으로 침울했던 집안 분위기는

봄날씨처럼 다시 화창해졌다. 애 키우면서 웃을 일이 훨씬 많지만 우울한 일도 적지 않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우리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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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블로그 : plug.hani.co.kr/dok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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