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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던 그 주는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매일 둘째를 학교까지 태워다 줘야 했고, 급식 선생님이 없는

첫째를 위해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야 했고, 첫째 학교 고학년 엄마대표를

맡아 회의도 많았고 집안에도 이런 저런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윤정이 입학 이틀 뒤는 윤정이 생일이었다.

유치원을 안 다녔던 딸을 위해 나는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온 후부터는

딸의 생일날마다 이웃들을 불러 생일 잔치를 열어주곤 했다.

또래 친구가 별로 없는 탓에 주로 오빠 친구들과 동생들이지만

어려서부터 잘 아는 언니 오빠들이 축하해주는 생일날을 윤정이는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어했던 것이다.

아이들과 어른들 해서 거의 열 대여섯이 넘는 손님들을 초대해서

생일상을 차렸고 손님들은 밤 아홉시 넘을때까지 신나게 놀다 돌아갔다.


사람들이 떠나고 나니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침엔 두 애들 학교 보내느라 종종거렸고, 오전에는 장보고 청소하느라

고단했고, 오후엔 내내 음식을 만드느라 애를 썼으니 당연한 일이다.

온통 어질러진 집안 치우는 것도 바빴지만 빨리 거실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서 아이들 씻기고 재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생일잔치 중간쯤에 퇴근했던 남편은 사람들이 돌아가자마자

오디오 앞에 앉아서 아마도 회사에서 다운받아 온 듯한 음악 파일을

실행시키느라 꼼짝을 안 하는 것이었다.

'겨울왕국'노래도 나오는걸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준비해온

모양인데 최적의 음질을 셋팅하는 모양인지 이런저런 리모콘을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잘 시간이 넘었는데도 생일잔치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

잘 생각도 안하고 돌아다니고 나 혼자 이리뛰고 저리뛰며 정리하고

애들을 재촉하다보니 화가 나기시작했다.

'그거 나중에 하고 애들 좀 먼저 씻겨줘' 하고 남편에게 몇번이나

부탁했는데 남편은 힐끗 돌아보기만 할 뿐 다시 오디오를 만지는

일에 열중할 뿐이었다.


생일잔치에 놀러왔던 윤정이 또래 친구 두 명이 자고가기로 한 날이라

챙겨줘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진 나 혼자 조바심이 나서 널을 뛰고 있는데

마누라 부탁을 들은척 만척 자기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마침내 화가 나고  말았다.


'그거 나중에 하고 애들부터 씻겨달라고.. 많이 늦었잖아' 했더니

'생일잔치가 늦게 끝났으니 당연히 늦는거를 왜 나한테 짜증이야'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퇴근한 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이제서야 마음 먹었던 일을

좀 하려는데 마누라가 잔소리를 해 대니 화가 난 것이다.

남편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집안이 다 정리되어야 비로소 쉴 수 있는

나로서는 정말 속상한 일이었다.

더구나 윤정이 친구들이 다 쳐다보는 상황에서 나에게 소리 지르는

것에 자손심도 상하고 남편이 너무나 야속했다.


그때 한마디 더 하려다 입을 꾹 다문 나를 아까부터 지켜보던 필규가

'엄마.. 괜찮아요?' 내게 물었다.

'아니, 안 괜찮아!'

나는 너무나 화나고 속상해서 이렇게 쏘아붙이고 주방으로 들어와버렸다.

남편이 밉고 야속해서 분한 마음으로 눈물을 훔쳐가며 요란하게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의 말보다 자꾸만 필규의 말이 마음에 퍼져가는 것이었다.


엄마 괞찮아요? 엄마... 괜찮아요?


아아... 아들은 내 마음이 염려되었구나. 내 마음을 느끼고 있었구나..

갑자기 따스한 무언가가 내 전체를 꽉 채워오면서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까지 한번에 다 녹여버렸다. 


가만히 필규를 불렀다.

'필규야.. 아까.. 엄마괜찮아요.. 라고 한 말.. 왜 한거야?'

'엄마가 오늘 정말 힘드셨잖아요. 윤정이 생일 해 주느라 고생도 많이 하셨고..

그리고 치우고 정리하느라 계속 애쓰셨는데 아빠가 화내고 소리질러서..

엄마가 상처받으셨을까봐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엄마가 정말 그랬어. 애쓰고 힘든데

아무도 안 알아주는 것 같고 도와주지도 않는것 같아서 속상했었어.

그런데 필규가 그렇게 물어봐주니까 너무나 고맙더라.

필규가 엄마 마음 알아준것 같아서 너무나 위로가 되는거야..

있잖아. 언제라도 누구라도 그 사람이 상처받은게 느껴지면

지금처럼 물어봐줘. 내가 당신의 마음을 안다고 표현해주는 것 만으로도

정말 힘이 나고 위로가 되거든.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아니예요, 엄마..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우린 싱크대 앞에 서서 오래 오래 서로를 안고 있었다.

 

열두 살 아들은 여전히 많은 면에서 철부지다.

유치한 일들로 어린 동생들과 싸우고, 사소한 걸로 벌컥벌컥 화를 내고

고집도 세고 주장도 강하다. 그렇지만 가끔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말들로

나를 감동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닐것이다.

어쩌면 아들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보다 더 소중하고

이쁜 마음의 결들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책을 읽거나 남들이 모르는 것을 많이 아는 것 보다도

슬프고 속상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봐주고 그 마음을

물어봐주는 것이 더 귀한 모습일텐데 말이다.

 

늘 철부지라고 생각하지만 문득문득 사려깊은 말들로 나를 감동시키는 아들..

그런게 또 자라는 모습이겠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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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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