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세 아이와 걸어서 등교했다가 나 혼자 천천히 되 돌아 온 아침..
물 한잔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친정엄마다.
"나, 지금 니네 집 가고 있다. 여기, 대야미 전철역이야. 걸어서 갈테니
신경쓰지 마"
"엄마.. 나 오늘 점심 약속 있는데..."
"괜찮어. 엄마 신경쓰지 말고 나갈 일 있으면 나가"
엄마는 연락도 없이 갑자기 온 것에 내가 불편할까봐 연신 신경쓰지마라를
되풀이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직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각인데, 연락도 없이 이렇게 일찍? 왠일일까?
무슨 일 있나?
보통은 전날 우리집에 오시겠다고 전화하시고 오전 11시쯤 도착하시곤 했기에
난 갸우뚱 하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엔 집 전화가 울린다.
친정 아빠다.
"작가딸!!
엄마 연락 왔었니?"
"네.. 벌써 전철역에 도착하셨다는데요?"
"허허.. 엄마 오시면 니가 잘 좀 풀어 드려라. 말도 없이 갑자기 나갔어"
"아하.. 아빠, 엄마랑 싸우셨어요?"
"아 그게.. 참.. 어제 저녁에 엄마가 앵두를 씻어서 채반에 받쳐 놓았더라고..
물이 빠지니까 밑에 쟁반 하나 받쳐 놨는데 한참 지났길래 아빠는 앵두의 물기가
다 빠진 줄 알고 채반만 들어서 소파에 앉아서 앵두를 먹은거야.
그런데 물기가 좀 남아 있어서 가죽 소파에 물이 한 두 방울 떨어졌지.
그걸 니 엄마가 보고 밑에 쟁반도 안 바치고 먹는다고, 물 흐른다고,
걸레로 닦으면서 내가 못살아, 내가 못살아 하면서 막 야단을 하는거야.
아빠가 그냥 듣고 말아야 하는데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지.
그랬더니 오늘 아침에 말도 없이 나가시더라.
참..아무것도 아니고 사소한 일인데.... 참..."
"하하하. 아빠, 잘 잘았어요. 제가 엄마 오시면 잘 풀어드릴께요.
엄마가 집 나오면 올데가 여기밖에 없는데 뭘 걱정이세요.
제가 잘 해드릴께요."
"부탁한다"
전화를 끊고 나는 한바탕 웃었다.
우리 엄마, 아빠, 아직도 참 재미나게 사시네.
잠시 후 엄마가 도착하셨다. 걸어오셔서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물 한잔 따라 드리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참외를 깎아 드렸다.
"엄마,, 아빠한테 전화 왔었어요.
엄마가 아빠랑 싸우고 집 나오셨다면서요? 큭큭.."
"얘기하디? 나 참.."
"앵두 먹다 소파에 물 조금 흘린거 가지고 엄마가 엄청 화내셨다고 그러시던데요?"
"조금? 물이 질질 흘렀어. 조금은 무슨...
밑에 그릇하나 받치고 먹으면 아무일 없지. 소파만 적시고..
그런데 왜 나한테 소리를 지르냐고, 소리를.. 그냥 미안하다고 조심한다고 하고
말아야지"
아하하... 알겠다. 두 분의 설전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오늘 아침 말도 안 하고, 점심 어떻게 먹으라는 소리도 안 하고 나와버렸지.
자기는 맨날 친구 만나러 가면서 내 점심 걱정 안 하는데, 나는 왜 아빠 점심을
걱정해야돼? "
"잘 하셨어요. 점심이야 아빠가 알아서 드시겠지. 그나저나 우리 엄마,아빠
재미나게 사시네. 신혼같네요, 이렇게 싸우고 홱 집도 나오고...
잘 하셨어요. 속상한거 있으면 참지 마시고 박박 싸우세요. 그리고 푸세요.
나이들수록 속상한거 참으면 병돼요."
엄마랑 나는 한바탕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마음이 풀린 엄마는 나랑 같이 얼마전에 담근 매실 항아리를 살피러 갔다.
매실은 그새 잘 녹아서 엄마를 흐믓하게 했다.
산비탈 앵두나무 옆에 살구나무에서 익은 열매들이 툭툭 떨어지고 있다고
했더니 엄마는 감 딸때 쓰는 자루 달린 장대를 찾아 살구를 딴다고 나가셨다.
나는 재빨리 더운 밥을 지어 어제 저녁에 김밥 싸고 남은 재료들을 꺼내
맛있고 두툼한 김밥을 두개 말아 놓았다.
점심 약속이 있어 집을 잠시 비우겠지만 엄마는 딸이 싸 놓은 맛있는
김밥을 드시면 될 것이었다.
며칠전 담근 앵두효소도 설탕이 잘 녹아 앵두알이 노글노글 해 졌다.
앵두 먹다 두 분이 싸운 모습이 떠 올라 다시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딸 다섯을 키우시는 동안 친정 부모님은 우리 앞에서 싸우신적이 없다.
내내 사이가 좋으셨지만 무엇보다 엄마는 마음 깊이 아빠를 존경하셨다.
아빠도 식탁에 앉을 때 마다 엄마의 요리를 칭찬하셨다. 소박한 반찬이라도
맛있다고, 오늘은 특별히 맛있다고 웃으시며 엄마를 바라보시던 모습,
지금도 기억한다.
그래도 두분이라고 왜 서로 힘든 때가 없었을까.
자식 보는 앞에서 언성 높이는 일 없게 하려고 오래 애를 쓰셨을 것이다.
내가 부모가 되고보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나만 해도 자주는 아니지만 자식들 보는 앞에서 남편한테 소리지르며
울고 불고 싸운 적이 몇 번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엄마는 자식들이 대학생이 된 이후에 폐경기를 맞으면서
아빠랑 몇 번 크게 싸우시곤 했다.
화가 나서 말없이 집을 나가버리시는 바람에 아빠가 모든 딸들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행방을 물었던 일도 두 어번 있었다.
그때마다 딸들은 두 분 사이를 중재하면서도 엄마 편을 들어 드렸다.
평생 참고 헌신하며 살아오신 엄마가 더 이상 참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에겐 더 좋아 보였던 것이다.
내가 마당있는 집을 얻어 서툰 농사를 시작했을때 엄마는 수시로 우리집에
오셔서 농사일도 거들고, 애 셋 키우느라 소홀한 집안일을 거들어 주시곤
했다. 그러면서 아빠가 속상하게 한 이야기도 하고, 드라마며 텔레비젼에서
본 이야기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엄마가 내 집을 편안하게 여시고 아무때고 오셔서 허물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아빠 흉도 보시고 나도 남편 흉을
늘어 놓고, 그러다가 서로 신랑한테 잘 하자고 다시 다짐도 하고
밥도 같이 해 먹는 그런 시간들이 너무 좋다.
나는 엄마 걱정없이 내 약속 때문에 집을 비울 것이다.
엄마는 살구를 따고, 밭에서 비름나물도 뜯고, 닭장에서 알고 꺼내면서
부지런히 움직이실 것이다.
서로 힘들지 않게, 서로 신경쓰지 않게, 그렇지만 서로 좋은 그런 사이가
엄마와 내 사이다.
남편과 싸운 아침, 보란듯이 집을 나와 딸네 집으로 올 수 있는 엄마의 날들이
참 부럽다.
이 다음에 우리 딸들이 멀리 살기라도 하면 나는 남편과 싸운 날 맘 놓고
갈데가 있을까..
눈치 안 보고 편안하게 찾아가 허물없이 수다를 떨고, 야속한 신랑 흉도 보면서
같이 웃고, 울고, 밥도 먹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엄마와 딸 사이..
우리 딸들이 직장에라도 다닌다면 내겐 그것도 어려울지 모른다.
지금 내가 전업주부여서, 마당과 텃밭이 딸린 큰 집에 살고 있어서
언제든 도울 거리가 있으니 엄마는 편하게 오실 수 있는 것이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나이든 아빠와 싸우고 기세좋게 달려올 딸 네가 가까이 있어서 말이다.
엄마... 언제든 오세요.
속상하고, 신경질나고, 화 나는 날엔 언제든 오세요.
내가 바빠도 신경쓰지 마시고 다녀가세요. 현관문 비밀번호 알고 계시니
언제든 오세요. 내가 챙겨드리지 못할때에는 드실거리 마련하고 나갈테니
언제든 여기로 오세요.
자라오면서 늘 내가 기대고 의지하던 엄마가 이제 내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만큼의 넉넉한 그늘을 내가 만들어 드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뿌듯하고... 눈물나는 한낮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