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새.jpg

 

3월의 어느 주말.. 현관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바로 옆 벽에 붙어있는 우체통에서

작은 새 한마리가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저 새가 저긴 어떻게 들어간거야.. 그냥 신기하게 여기고 말았는데

잠시 후 남편이 나를 부른다.

 

"여보.. 여기.. 이 안에 새가 둥지를 지었어"

"정말?"

 

우체통 안에 편지가 있나싶어 손을 쑥 집어 넣었는데 뭔가 뭉클한것이 잡혔다는 것이다.

깜짝놀라 통을 살그머니 열어보니 밥 그릇같이 생긴 새 둥지가 있었다고 했다.

마른풀과 낙옆, 깃털같은 것이 섞여있는 둥지는 정말 둥그런 밥그릇같이 생겼다.

가만 들여다보니 얼룩덜룩한 작은 새알이 너덧개 놓여 있었다.

 

그날 우리집엔 작은 흥분이 일었다.

애들은 우체통에 새가 집을 지었다는 사실에 좋아서 야단이었다.

그러더니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알이 깨질꺼라고 안내문을 붙이기로 했다.

윤정이가 귀여운 새 그림을 그린 안내문을 그려 우체통에 붙여 놓았다.

 

딱새 2.jpg

 

언니를 따라 이룸이도 새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 놓았다.

당분간 우편물을 우체통 아래 놓인 낡은 의자 위에 놓아달라는

안내문도 만들었다.

 

딱새 3.jpg

 

가끔 아이들과 살그머니 우체통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몇 번은 알을 품고 있는 엄마새와 눈이 마주치는 가슴 설레는 일도 있었다.

 

알이 잘 깨나야 하는데... 설마 못된 사람들 손을 타는 일은 없겠지?

며칠을 우리 가족은 새를 생각하며 두근두근 기다렸다.

 

그러던 지난 주말, 아이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엄마새와 아빠새가  번갈아

입에 벌레를 물고 우체통을 드나드는 모습을 발견했다.

새끼가 태어난 모양이었다.

 

가만히 우체통 문을 열어 보았다.

 

딱새 7.jpg

 

알이 있던 자리에 갓 태어난듯한 어린새 다섯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잘 태어난 것이다.

 

딱새 5.jpg

 

도감을 찾아 보았더니 '딱새'였다.

우리집에서 제일 흔하게 보이는 새 중 하나다.

' 나무 구멍, 바위틈, 처마 밑에 낙엽, 나무껍질, 이끼로 밥그릇 꼴 둥지를 만든다'

고 쓰여 있는데 딱 맞는다.

딱새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단다. 앉아 있을때는 머리와 꽁지를 위 아래로 까딱거린다.

 

딱새 4.jpg

 

엄마새는 몸이 회갈색이다.

아빠새와 번갈아 벌레를 찾아 물고 부지런히 우체통을 드나든다.

어찌나 열심인지 지켜보는 내 마음이 다 애틋해졌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어떻게 우체통에 둥지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현관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수시로 식구들이 드나드는 곳인데다

매일 우편물이 들어가는 통인데 왜 그곳을 알 낳기에 제일 안전하다고

여긴 것일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우리 가족들을 믿은 것일까.

 

이 사람들이면 안전해.. 이 사람들이면 괜찮아...

 

거실 창가에 서서 딱새가 우체통을 드나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굉장히 고마운 마음이 차오르곤 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 곁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기르고 있는 것이

뿌듯하고, 감동스럽고, 고맙고... 뭔가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파트를 떠나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온 후 제일 먼저 가까와진 존재들이

바로 '새'였다.

오래 비어있던 집은 동네 까치들의 아지트였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수십마리 까치들이 마당에 모여있어 무섭기도 했었다.

겨울에는 꿩이 마당근처까지 나타나곤 했다.

마른 꽃사과나무 열매를 겨우내내 쪼아 먹는 녀석이 직박구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닭장 근처 나무에 놀러오는 귀여운 새가 '맷비둘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까마귀도 많았고, 딱새랑 박새도 많이 놀러왔고, 드믈지만

뒷마당에서 딱따구리를 보기도 했다. 소쩍새 소리가 들리고, 산비둘기

소리가 들리고, 뻐꾹새 소리가 들리는 집이란 정말 근사했다.

곤즐박이, 오목눈이, 참새도 어찌나 많은지 사람이 안 사는 동안

이 집은 새들의 집이었구나.. 깨닫곤 했다.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근처에 물가도 있고, 유기농 농사를 짓는 논 밭도 많아서 벌레도 많을 것이다.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저수지에는 '흰뺨 검둥오리'가 살고 있고

약수터 근처 나뭇가지에 가득 앉아 있다가 활홀하게 날아오르곤 하는

새들은 물까치라는 것을 알아가며 지내왔던 4년은 매일이 신기함과

놀람과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었다.

 

가끔 죽은 새를 발견해 묻어 주기도 하는 가슴 아픈 기억도 있었지만

올 해는 딱새가 우체통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

뭔가 더 특별하고 멋진 일이 일어날것만 같다고 아이들과 마음 설레고 있다.

 

그새 아기새들은 많이 자라서 살그머니 우체통을 들여다보며 기척을 내면

노란 입들을 쩍쩍 벌린다. 머지않아 작은 우체통 안이 짹짹 거리는 소리들로

부산스러워질테고 봄이 무르익으면 둥지안의 아기새들도 첫 날아오르기를

하겠지.

 

두 해전 처마밑 둥지에서 자라던 아기새들이 첫 날아오르기를 하다

땅에 떨어지면 둥지에 올려주고, 다시 날다 비틀거리며 떨어지면 달려가

안아서 올려주곤 하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다 마침내 잘 날게 되었을때

새들은 금방 나뭇가지 위로 날아 올랐었지..

 

새가 살고 있는 집에 사는 일이란 생각만해도 멋지고 근사하다.

새가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울만큼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이,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해코지 안 하고 잘 지켜봐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일상을 더 겸손하고 고맙게 여기게 한다.

 

새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힘차게 우체통을 박차고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새들과 친구가 되어 오래 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딱새도, 박새도, 직박구리와 흰뺨 검둥오리도 모두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다.

 

새가 믿어주는,

새한테 신뢰를 얻는 좋은 인간으로 살아야지...

다짐하는 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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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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