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행사.jpg

 

군포에 이재정 교육감님이 오셔서 '마을교육공동체'에 관한 간담회를 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감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인데다 평소에도 관심이 많은 주제여서 솔깃했는데

주최측에서 마을공동체에 속해 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마을협동조합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경험들을 이런 자리에서 한 번 발표해보라고 권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이 필규는 사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교육감님 앞에서  마을공동체의 활동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아들을 슬슬 꼬드겨보았다.

 

"필규야.. 마을조합에서 하는 활동에 너도 많이 참가했잖아. 어떤게 좋았어?"

"방학프로그램이요. 겨울방학에 갔다온 평화기차 여행도 좋았구요,

평화시장 나들이도 좋았구요. 생태 탐험이랑 뜨게질도 재미있었어요.

아, 지금 하고 있는 보드게임도요"

"음.. 그런 활동들이 왜 좋은거 같애?"

".. 재미있잖아요. 학교에서 못 하는거 할 수 있고... 마을에 친구들도 생기고..."

"그렇지.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여러사람 앞에서 들려줄 수 있어?"

"여러사람 앞에서요?"

"응, 군포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님이 오시는데 마을공동체의 활동에 관심이 많으시대.

실제로 마을공동체를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 목소리를 직접 들으시고 싶으신가봐.

니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교육감님이 마을공동체를 더 많이 지원해주실 수 도 있고,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줄지도 모르고.....  한 번 해볼래?

대신 니가 원하는 맛있는거 사줄께"

 

나는 음식에 유독 관심이 큰 아들에게 미끼를 던졌다.

그래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이라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별 기대는 안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하던 녀석은

 "... 엄마... 치킨 한 마리 반이면 해 볼래요. 꼭 한 마리 반이어야 되요.

후라이드 한 마리, 양념 반마리요" 하는거다.

속으로 푹 웃음이 터졌다.

"치킨 한마리 반?"

그정도면 되는 거구나, 이렇게 저렴한 아들이라니.. 싶었지만 내색않고

"오케이, 이걸로 우리의 딜은 성사된거야" 못을 박았다.

의기양양해서 돌아서는 아들 뒤에서 한참 웃었다.

세상에나.. 그렇게 남 앞에 서서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녀석이

치킨 한마리 반에 넘어가다니...  그렇게나 치킨이 좋구나. 허허허.

 

집에서 3년째 닭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28일만에 치킨이 되는 공장식 사육현장의 닭들을

먹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애들이 그렇게 원해도 치킨은 안 사준다. 아들은 그런 현실을 잘 알면서도 바삭하고

고소한  치킨이 먹고 싶다. 치킨을 위해서라면 대중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리하야 나는 3월 23일 오후 6시 반에 군포청소년 수련관 대극장으로 세 아이를 모두 데리고 출동했다.

교육감님과 둘러앉아 마을공동체에 관해 솔직하고 편안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거라는

순진한  상상을 하고 달려간 나는 큰 규모의 토론회장과 그 넓은 객석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뜨악했다.

간단히 허기를 가릴 수 있는 간식을 먹여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는데 나중에 필규가 발표할것을

염두에두고 일부러 앞줄에서 세번째 자리를 차지해 앉았다.

 

필규 22.jpg

 

그러나 이재정 교육감을 중심으로 각계에서 나온 패널들이 주제 발표를 하고

교육감님이 주제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식으로 토론회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관중석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우리마을조합에서 참가한 아이들 뿐 이었다.

대부분 각 학교 교사들과 시민단체, 복지관의 활동가들이 꽉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필규는 치킨 한마리 반을  먹을 생각에 지루함을 꾹 참고 토론회 내내

볼펜 한자루와 종이 두어장으로 버텼다.

토론 마지막 쯤에 참가자가 발표하는 시간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윤정, 이룸.jpg

 

조합에서 함께 온 마을 언니들과 나란히 앉은 윤정이나 내 옆에 앉아있는 이룸이도

 볼펜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필규나 윤정이에게도 쉬운 자리는 아니었지만 여섯살 이룸이가 보여준 인내심은

정말 대견한 것이었다. 

중간에 5분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세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회 내내

이룸이는 그림을 그리고 얼마안되는 내 화장품을 찍어 바르며 놀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내 아이와 모든 아이들을

위해 마을에 좋은 교육공동체가 생기는 것이 절실했던 나로서는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재정 교육감님이 생각하는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해 듣고 싶었고

마을에서 행복한 배움을 누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어

이런 무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토론되는 어른들 중심으로 돌아갔고, 드디어 돌아온 참석자 발표시간에도

교육감님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싶어하는 수많은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은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끝까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던 조합 아이들은 결국 아무런 말도 못하고 일어서야 했다.

 

이재정.jpg

 

마을공동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어 어린 아이들까지

다 데리고 참석했는데 아이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고 교육감님께

말씀을 드리자 시간이 너무 없어서 미안하다며 다음 기회를 만들겠다는 말씀만 들을 수 있었다.

교육감님은 대신 그 앞에 서 있던 아이들을 안고 단체사진을 찍으셨다.

 

그리하여 늦은 시간까지 세아이와 함께 토론회에 참석했던 나는 교육감님과 아이들이

함께 찍은 사진만 간직한체 나와야 했다. 나는 많은 것이 아쉬웠지만

필규는 발표를 안 하게 된것이 더 좋은 눈치를 감추지 않았다.

"엄마, 그래도 치킨은 쏘셔야 되요"

"알았어. 발표는 못했지만 이렇게 지루하고 힘든 자리를 세시간동안이나 견뎌준것 만으로도

니 나이엔 정말 대단한거다. 엄마가 인정할께"

필규는 신나는 표정으로 으쓱하며 어깨를 올려 보였다.

 

그날 나는 밤 아홉시가 훌쩍 넘긴 시간이 되어서야 세 아이들과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을 수 가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룸이는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 아들이 그토록 원하던 치킨을 사 주었다.

 

필규 23.jpg

후라이드 한마리, 양념 반마리에서 그냥 후라이드 한마리로 소박하게 줄어 버렸지만

치킨 가게에서 끼워주는 피클과 소스, 양념대신 내가 만든 피클과, 내가 만들어준

양념소스에 치킨을 찍어 먹으며 아들은 싱글벙글했다.

 

아이고.. 녀석, 참 순진하구나.

치킨을 먹을 수만 있다면 교육감님 앞에서 발표도 할 수 있는 이 맑은 영혼이라니..

귀엽다. 이쁘다.

그래, 그래.. 니 나이에 마을공동체니 조합이니 하는 것에 구체적인 관심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냥 보드게임이 좋고, 마을에서 함께 가는 여행이며 탐사가 좋고 이렇게

좋아하는 치킨을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한거지. 너 답고, 네 나이 다와서 엄마는 좋다. 참 좋다.

 

그날 토론회에서 교육감님이 들려준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모호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육감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

엄마 따라 온갖 토론회며 강의장에 다니느라 가끔 지루하고 힘들때고 있겠지만

이런 시간을 견뎌보는 것도 네 안의 무언가를 자라게 할 거라고 믿는단다.

지금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엄마가 관심을 가지고 애쓰고 있는 많은 일들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다음엔

혹 이해할 지 모르지. 아니어도 상관없고..

 

니 덕에 엄마도 정말 정말 오랜만에 치킨 한 조각 맛 볼 수 있었다.

지금 너를 움직이는 것은 바삭하고 고소한 치킨이지만 살다보면 치킨보다 더 귀한 일이 너무나 많단다.

내게 당장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나서야 하고, 참가해야 하고

내 시간과 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들도 너무나 많단다.

아직은 거기까지 몰라도 되고 아직은 치킨이 더 좋아도 된다.

그렇지만 조금씩 조금씩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보자.

 

애쓰고 고마왔다.

치킨을 너무나 좋아하는 아들아..

그 단순하고 이쁜 마음을  정말 사랑한단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50295/70d/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27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열세살의 야구 imagefile [2] 신순화 2015-08-13 7685
26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며느리의 휴가 imagefile [7] 신순화 2015-08-05 14448
26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세 아이가 방학 했다!! imagefile [5] 신순화 2015-07-28 7503
26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의 진실!! imagefile [6] 신순화 2015-07-16 16469
26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홉살의 명랑일기 imagefile [2] 신순화 2015-07-09 9664
26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닭장의 수컷 본능, 미움 연민 공포 imagefile [8] 신순화 2015-07-02 22025
26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뿔난 엄마를 부탁해 imagefile [8] 신순화 2015-06-24 14608
26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 수학 가르치다가 유체이탈 할 뻔... imagefile [2] 신순화 2015-06-19 11124
26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앵두야, 앵두야.. imagefile [8] 신순화 2015-06-11 11309
26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 imagefile [20] 신순화 2015-06-08 13365
26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딸들 덕에 나는야 공주 엄마 imagefile [2] 신순화 2015-05-31 22939
25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열세살 아들, 밉다 미워!! imagefile [2] 신순화 2015-05-22 8248
25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영어공부라니... imagefile [9] 신순화 2015-05-15 13215
25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모두가 함께 하는 작은 학교 운동회 imagefile [5] 신순화 2015-05-07 12011
25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어린이날엔 어린이를 돕자! imagefile [3] 신순화 2015-05-05 10587
25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우리집 우체통에 딱새가 살아요!! imagefile [4] 신순화 2015-04-22 12004
25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셋째 때문에 또 다시 도진 내 아이 영재증후군^^ imagefile [9] 신순화 2015-04-16 11703
25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이들이 가르쳐 준 '죽음'에 대한 예의 imagefile [6] 신순화 2015-04-09 13303
25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마흔 여섯살 내 꿈은 손 큰 동네 이모!! imagefile [9] 신순화 2015-04-01 11120
»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열세살 아들 움직인 건 '치킨'!! imagefile [11] 신순화 2015-03-25 10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