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보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제지하세요. 눈을 맞추고 단호하게 말해야 합니다.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지난 6월 두돌맞이 정기검진에서 의사선생님은 아이가 떼를 쓸 때 ‘훈계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러나 육아현장에서 이 이론을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주 전의 일이다. 아침밥을 먹이려고 녀석을 식탁의자에 앉히려는데 밥을 먹지 않겠다는 녀석의 발버둥에

그만 밥그릇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녀석을 안방 침대 위에 앉힌 뒤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훈계를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은 마치 까꿍 놀이를 하듯 제 눈을 두 손으로 가렸다 보였다를 반복했다. 녀석의 깜찍한 행동에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꾹 참았지만, 녀석은 내 훈계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저녁밥을 먹이려고, 뒹구는 녀석을 안으려 하자 녀석이 내 얼굴을 발로 밀쳐냈다.

녀석을 일으켜 앉혀놓고는 “어디 아빠 얼굴을 발로 차? 사람 얼굴 발로 차면 나쁜 아가야”라며 훈계를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이 갑자기 샤방샤방 눈웃음을 날렸다. 이 엄중하고 진지한 순간에 웬 ‘예쁜 짓’?

나는 눈, 코, 입에 잔뜩 힘을 주었지만 역부족이다.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소리 없이 웃고 말았다.

옆에 있던 아내가 하는 말. “아빠! 웃는 거 다 보여요.” 그래, 내가 졌다.



어른들 표현을 빌리자면 녀석 또래의 아이들은 꾀가 말짱하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제 엄마 아빠의 눈치를 살살 보며

위기를 모면하려 잔머리를 굴린다. 그런 녀석 앞에서 ‘감정’이라는 기름기를 쏙 뺀 교과서적인 건조한 훈계는

무력화되기 일쑤다.



두 돌 즈음에 시작된 ‘아빠 뺨 때리기’는 훈계의 방식을 놓고 더 깊은 고민을 하게 했다. 귀엽다고 안아주면

녀석은 웃으면서 원투 스트레이트로 내 뺨을 쳤다. 녀석의 애정표현이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되는 느낌이었다.

엄밀히 말해, 조막만한 손이 뺨을 스치는 정도였지만 공공장소나 친척들 앞에서 이런 비행이 연출될 때면

그 민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녀석에게 불쾌감을 설명하며 정색하고 타일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제 엄마 뺨에도 손을 댔다. 그 순간 아내도, 아프지는 않겠지만 기분 나쁠 정도로

녀석에게 똑같이 되갚아주었다. 아이도 똑같은 기분(당황스러움, 아픔 등)을 느껴봐야 상대의 감정도 이해하게 된다는,

30년 전 장모님이 터득하신 일종의 ‘민간요법’이었다.

녀석은 일찍이 경험 못한 엄마의 역습에 당황하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신기하게도 녀석의 비행은 거기서 멈췄다.



2ff00426770b6be474d0e984553c6825.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육아이론이라는 것이 심도 있는 실증연구를 통해 정립됐겠지만 현실의 특수함을 100% 반영할 수는 없을 터. 녀석을 예의 바르고 경우를 아는 훈남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때때로 악역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 가슴 아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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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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