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빵집이 다음달 2월에 문을 닫는다네요.. 섭섭해서 어쩌죠?"



어린이식당 멤버에게서 이런 연락이 왔다.

정말 그 가게 이름이 맞나, 애써 눈을 깜빡이며 한 글자씩 읽어봤는데

역시나.. 그 가게가 맞다.

어린이식당에도 매번 맛있는 빵을 한아름 기부해 주시고

작은 가게였지만, 빵 하나하나가 나름 품위있고 맛도 좋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문을 닫는다 생각하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좋은 가게가 변함없이 있어주길 바란다면

나부터 열심히 이용하고 좋은 손님이 되는 거라 여기며

자주 사먹던 빵집인데 정말 아쉽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누구에게나 가끔은 다시 가 보고 싶은 가게가 있을 것이다.

부산에서 나고자란 나에겐, 90년대 부산대학교 앞,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양식당 <포 시즌>이 바로 그런 곳이다. 친구들끼리는 사계절이라고도 불렀던 것 같다.


탁자가 몇 개 안 되는 작은 식당이었지만,

돈가스에 딸려 나오는 스프가 무척 맛있고 가격 또한 황송할 만큼 저렴한 곳이었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평범하고 소박한 메뉴인데도, 왠지 모르게 요리하는 분의

전문적인 포스가 느껴지던 예사롭지 않은 맛이었다.

내 기억에는 정말 한두 평쯤 될까 싶은 좁은 주방에서

늘 새하얗고 깔끔한 요리사복을 입고 계시던 주인 아저씨를 보며

내가 써내려간 상상력은 이랬다.


--------------------------------------------------------

원래 요리 공부를 많이 하셨던 분인데, 어렵게 개인 가게를 열게 된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은 늘 고만고만.

음식 값을 조금 올리면 가게 형편이 더 나아지겠지만

학교 앞이라 그러기도 힘들다.

아무튼 하루하루 열심히

이 작고 작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이 가게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으로

열심히 가서 먹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 찾아갔을 때, 문을 닫았으면 어떡하나 하는 내 걱정대로

정말 '포 시즌' 식당은 영업을 중단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많은 음식점들이 그렇듯이

손님이 적어 장사가 어렵고 가게 유지비는 많이 드니, 결국 문을 닫은 것이리라.


한국의 수많은 작은 가게들이 얼마나 이런 식으로 사라져 갔을까.

사실 '포 시즌'보다 더 훌륭한 음식 맛을 내는 식당들은

그 당시에도 얼마든지 있었을 거다.

하지만, 큰 규모의 가게들 틈에서 작고 소박한 가게를 자기 식으로 운영해 가는

그런 곳도 함께 존재하면 안 될까.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영화 <카모메 식당>같은 분위기의 그 식당만 생각하면 늘 아쉽다.

지금은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맛이니 더 아련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20여년이 훌쩍 지나, 지금 살고 있는 일본에서도

경제적인 안정을 찾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다음달이면 곧 폐점이 될 동네 빵집을 비롯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작은 동네 가게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게 될까.


멀리서도 일부러 사람들이 찾아오는 좋은 가게가

우리 동네에 있다는 건 참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다.

이미 있는 좋은 가게들이 쓸쓸하게 사라져가지 않도록

자주 이용하고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며 그 가게가 성장해 가는 걸

응원하고 싶다.

좋은 동네 가게가 많은 곳에 산다는 건, 일상의 큰 행복이니까.



크기변환_DSCN8354.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816149/db8/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200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달거리, 너 정말 반갑구나.. imagefile [9] 신순화 2013-05-30 29988
2004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내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이유 imagefile [22] 김은형 2012-09-06 29988
200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기위한 7가지제안(1) imagefile [1] 윤영희 2013-07-18 29984
2002 [김은형 기자의 내가 니 엄마다] 시험관 아기 도전, 혹시 세쌍둥이? imagefile 김은형 2010-06-18 29859
2001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결혼전 딸기여행, 결혼후 딸기체험 imagefile [7] 양선아 2013-03-27 29791
200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바느질 하는 아들 imagefile [9] 신순화 2013-12-24 29725
199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라면, 라면... 또 라면인건가!! imagefile [2] 신순화 2019-03-05 29694
1998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혹시…넷째 임신? 악몽 같았던 ‘50시간’ imagefile [7] 김미영 2013-01-29 29691
1997 [김연희의 태평육아]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 imagefile [9] 김연희 2012-02-15 29649
199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그저 침묵하는 남편, 부부는 무엇으로 사나 imagefile [6] 신순화 2014-04-09 29612
1995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1시간만에 쑥~, ‘한겨레 출산드라’ imagefile 양선아 2010-11-02 29559
199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집, 사람을 바꾸다! imagefile [6] 신순화 2012-05-21 29532
1993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세 번의 졸업식과 네 번의 입학식 imagefile [6] 윤영희 2019-02-26 29531
199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마, 엄마는 아주 천천히 늙어줘 imagefile [1] 신순화 2011-08-17 29391
199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일본 유치원과 학교 바자회 구경 imagefile [4] 윤영희 2013-11-04 29306
1990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형님반에 간다네 imagefile [7] 김태규 2012-02-20 29282
1989 [박태우 기자의 아빠도 자란다] 눈물 콧물 수면교육, 5일만의 기적 imagefile [4] 박태우 2014-07-08 29266
1988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21편]시어머님 안색이 안좋아보여요 imagefile [12] 지호엄마 2013-02-15 29156
198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병원은 환자 취급, 조산원은 사람 대접 imagefile 신순화 2010-06-07 29117
1986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추첨인생, 나도 국기에 대한 맹세 좀 해보고 싶다. imagefile [19] 전병희 2012-12-06 29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