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가격 때문에 무얼 살까 고민했던 디럭스급 유모차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 등에서 엄마 취향·경제적 지위 반영










아이가 태어나고 간절히 백일이 되기를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는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고 싶어서였다. 집에만 처박혀 사는 생활에서 벗어나 숨통을 틔우고 싶었다. 게다가 아이 백일은 5월 말 늦봄. 나가기 딱 좋은 때였다.




아파트 앞에 8차선 대로가 있는 집에서는 고작해야 단지 안 놀이터 산책이 전부였던 나는 벼르고 별러 나무 많은 양재천 앞에 있는 작은 언니네 집으로 나들이를 갔다. 유모차부터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 아이를 피톤치드향으로 샤워해주리라 마음먹었다.




느긋한 토요일 오후 유모차를 조립해 아이를 눕히고 양재천 산책로를 기분좋게 걸었다. 오다가다 유모차들이 눈에 띄었다. 흠 바퀴가 큰 저건 퀴$군.  유모차를 사기 전 왠만한 브랜드는 다 꿸 정도로 열심히 연구 검토를 했던 터라 바퀴만 봐도 어떤 브랜드 제품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흠 저것도 퀴$니, 요것도, 조것도 퀴$네... 점점 산책의욕이 다운되기 시작했다. 퀴$는 내가 산 유모차보다 비싼 브랜드. 자기가 유모차를 타고 있는지 지게를 타고 있는 지도 모를 아이한테 괜히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도 저거 사줄 걸 그랬나 라는 마음이 슬쩍 들었다.




한 달 전 허리 디스크 때문에 전문 병원을 다니다가 아이와 함께 병원 옆에 있는 백화점에 잠깐 들를 일이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 옆에 서 있는 데 수입 유모차 중에서 가장 비싸다는 스토%가 옆에 붙는다.  잠시 후 그 옆에 서는 스토%2, 또 그 옆에 붙는 스토%3, 또 그 옆에... 유아 휴게실에 들어간 나는 무슨 이 제품 동호회 모임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서울의 3대 학원 동네 중 하나에 있는 백화점이었다. 엄마들의 극성과 열성은 학교나 학원도 아니고 유치원도 아닌  유모차 선택부터 시작된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었다.






57f7f0badaacd56158006f7e9b7340f4. » 고심 끝에 대충 산 유모차, 잘 쓰고 있지만 돌 지나면 가벼운 휴대형으로 갈아타야할 것같다.




나 역시 유모차를 사기 전 고민을 안한 게 아니었다. 한 정도가 아니라 임신 중기부터 밤잠을 설치며  ‘눈을 까뒤집고’ 정보를 뒤지고 제품들을 뒤지면서 고민에 고민을 이어갔다. 유모차는 육아용품 중 가장 비싼 물건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두 브랜드의 디럭스 유모차(갓난 아기부터 태울 수 있는 크고 안전한 유모차) 는 1백만원을 훌쩍 넘는다. 싼 것도 40만원 정도는 가뿐히 넘는다. 그러니 고민을 안할 수가 없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어디서 한번 들어보지도 못했던 단어인 ‘양대면’이 어쩌고, 핸들링이 어쩌고 하는 설명과 엄마들의 사용후기 등을 샅샅이 뒤지고 디자인과 색깔들을 일일이 비교하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기침대처럼 디럭스 유모차 역시 필요하다는 쪽과 필요하지 않다는 쪽이 팽팽이 갈리는 용품.  무겁기만 해서 몇달 쓰지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지말까 고민하다가도 허리뼈가 여물지 않았을 때 돌아다니려면 역시 필요할 것같고, 하루에도 몇번씩 변덕을 부렸다.




육아카페에 가면 대표적으로 비싼 유모차인 스토% 논쟁이 이따금 붙기도 한다. 엄마들의 허영심이다, 정말 쓰기 편하다, 등등 성인 여성들의 명품 논쟁이 고스란히 유모차 논쟁으로 옮겨진 형국이다. 개인적으로 유모차가 백만원을 훌쩍 넘기는 건 오바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비싼 값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아주 잠깐 동안 고민 리스트에 올려놓기도 했다.




기사를 쓸 때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각종 기자상을 휩쓸지 않았을까하는 열정으로 뒤지고 뒤져 몇가지 후보 리스트를 만들었다. 인터넷 상의 정보 만으로 결정하면 안될 것 같아서 백화점에 가서 시운전도 해봤다. 그런데 실제 만지고 끌어보니 더 어려워졌다. 실상 유모차의 성능이란 다 거기서 거기였던 것. 이 칼럼을 <한겨레21>에 먼저 썼을 때 하필 다음 메인 화면에 올라 스토% 쓰는 엄마들과 유모차 성능에 예민한 엄마들로부터 ‘절대 거기서 거기 아니다’라는 격한 댓글 리시브를 받긴 했지만 어쨋든 내 생각은 그랬다. 요즘 같은 세상에 뻑뻑한 핸들링이나 차체 흔들림 같은 게 있으면 어디다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그러니 일정 수준 이상의 유모차들은 다 왠만큼 쓰기 편리하다. 결국 유모차 선택에 중요한 건 엄마의 취향이나 관심사 또는 경제적 수준 등이 된다. 특히 유모차는 밖으로 다닐 때 쓰는 물건이니 과시적 육아용품 1순위다. 기능도 기능이지만 내 아이를 좀 더 멋지고 고급스러운 유모차에 태우고 싶은 마음은 일견 당연하다. ‘나’가 아니고 ‘내 아이’를 위한 것이니 더 그렇다.




암튼 이렇게 필요없는 걱정과 욕심에 몇달을 고민하면서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래서야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결정을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기적처럼 출산 2주 전 결정을 내리게 됐으니 그 역시 평소 나의 쇼핑 패턴처럼 고심 끝에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고심 끝에 엉뚱한 충동구매였다. 차양이 마음에 안들어 후보 리스트에도 놓지 않았던 유모차이건만 ‘전시상품 세일 품절 임박’이라는 글씨에 나도 모르게 ‘바로 구매’ 클릭. 차양만도 몇박 몇일을 고민했건만 ‘차양이야 가림막이나 전용 양산 사서 씌우면 되지 뭐’라고 초스피드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장고 끝에 대충 산 유모차를 백일 때부터 지금까지 뻔질나게 쓰고 있다. 사용후기를 한줄로 쓰자면 ‘대만족, 괜히 고민했어~ 괜히 고민했어~’ 둘 중 하나다. 유모차 고를 때 내가 이 제품의 진가를 간과했든가, 아님 진짜 유모차 다 거기거 거기든가다. 




오늘도 유모차 고민에 밤잠 설치시는 예비엄마와 엄마 여러분.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시지말고 얼릉 ‘한놈만 찍어’ 세일 등 다양한 기회를 잘 활용해 보시길. 그리고 깨끗한 중고를 사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디럭스 유모차는 너무 무겁다고 해서 절충형이라는 지금 유모차 홍보에 솔깃했으나 이것조차 써보니 너무나 무겁더라. 지금이야 잘 쓰지만 걷기 시작하는 돌만 지나면 가벼운 휴대형으로 갈아타야 될 것 같다. 결국 디럭스 유모차는 고작 몇달 쓰는 물건인데다가 왠만한 브랜드 제품은 다들 몇년은 너끈히 쓸 수 있을 만큼 워낙 튼튼하다. 그러니 깔끔하게 쓴 중고를 얻거나 싸게 사는 것도 한 방법.  어차피 아이는 자기가 수백만원대 유모차를 타는지 지게를 타는지도 모르니 그 돈 모아 나중에 아이가 원하는 좋은 장난감을 사주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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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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