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때 두시간씩 안고 재우던 아기 아빠
아이가 점점 엄마 찾을수록 꺾이는 아빠의 육아 의욕
졸지에 엄마의 육아 부담만 가중
» 아이를 재우다가 함께 잠든 아빠. 지금은 재우기도 엄마차지가 됐다.
오래 전 내가 꿈꾸던 육아는 19세기 부르주아 집안의 풍경화 같은 것이었다. 잘 차려 입은 내가 우아하게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고 있으면 역시 잘 차려 입은 아이가 나에게로 온다. 잠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놀다가 칭얼 거리기 시작하면 '유모~'를 부른다. 아이는 퇴장.
그러니까 아이를 낳은 뒤에도 똥 기저귀를 간다거나 울고불고 발악하는 아이를 안고 동요 반, 협박 반으로 달랜다거나, 목욕시키다가 우는 아이에게 젖주고 미처 젖을 집어 넣지도 못한 채 헐레벌떡 목욕시키고 물기 닦고 옷 입히고 재우기까지 한다든가, 한시간 동안 얼굴 전체가 밥풀 투성이 된 꼬질한 아이 앞에서 이유식 숟가락을 들고 생쑈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 그러니까 '유모'의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님' 이 찾으면 달려가는 '유모'가 되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마님은 바로 아이 아빠. 아이와 잠깐 놀아주다가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유모~' 대신 '엄마~'를 부르고 나는 유모처럼 달려가 아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내가 굉장히 착한 아내 같지만 남편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오늘도 "아 자식 새끼 다 필요없어. 내가 누구 위해서 이렇게 뼛골 빠지게 회사를 다니는데 말야...."라고 긴 한숨을 내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잠이 깨서 칭얼대는 아이를 토닥여주다가 아이가 얼핏 아빠임을 알아보고 불같이 역정을 내시며 엄마를 대령하라는 엄포 "음마마마마"에 낙심하고는 다시 '유모~' 아니 '엄마~'를 찾게 된 것이다.
처음 아이를 낳아 왔을 때 남편은 나보다 똥기저귀를 치우는데 더 열심에 정성이었고, 아이를 안고 두세시간씩 달래며 재우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를 얼르면서 꼭 하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아빠가 좋아?엄마가 좋아?"였다. 보통 아이 있는 집에서는 터부에 가까운 그 금기어를 매일 매일 주문 걸듯이 신생아한테 반복하면서 "아빠가 좋지? " "뭐라구? 아빠가 최고라구? 어린 놈이 사람보는 눈은 있어서" 등등을 주입시켰다. 그 모습이 어처구니 없어 나는 하지말라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역시 분유수유에서 모유수유로 갈아타며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됐다. 아빠가 아무리 안아줘도 바락바락 떼를 쓰던 아이가 엄마 쭈쭈 한방에 훅 넘어가니 석달 동안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 아빠로서는 육아 의욕이 급다운된 모양이었다. 전에는 우는 아이에게 동요도 불러주고 다양한 방법으로 달래곤 하더니 이제는 울음 소리가 터지자 마자 '엄마~'부터 찾는다. 처음에는 "동요를 불러주던가 안는 자세를 바꿔보던가 좀 다양하게 궁리를 해봐"라고 핀잔하지만 나 역시 울음소리가 시끄러워서 결국 그냥 아이를 받게 된다.
이렇게 울 때마다 엄마가 아기를 안아버릇하니 이제는 아빠와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주말에도 영 둘이 친해 보이지가 않는다. 잘 때가 아니라도 아이는 엄마와 있는 걸 좋아하고 아빠 역시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니면 '보람 없는' 육아 노동에 싫증을 느꼈는지 스리슬쩍 나에게 아이를 떠맡기려고 한다. 물론 내가 눈을 부릅뜨면 아이를 안고 가서 놀아주는 척을 하지만 그것도 '아앙~'소리가 날때까지 잠깐이다.
이제 남편은 더 이상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아이에게 묻지 않는다. 만약 아이가 말을 한다면 "알면서 왜 물어봐요?"라고 대답할 텐데 뭐하러 묻겠나. 전에 남편이 했던 얄밉고도 유치한 행동을 생각하면 고소하기도 하지만 이러다가 육아부담을 나 혼자 뒤집어쓰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된다. 안 그래도 결혼 뒤 가사분담의 깔끔한 실현에 실패해 싸움만 나면 서로 '당신이 집에서 하는 일이 뭐냐'라고 외치는데 육아도 그렇게 된다면 정말이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6개월 된 아이를 두고 오버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점점 멀어지다가 나중에 서먹한 부자지간이 된다고 생각하면 슬프기까지 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아빠 독자님들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 있는지.... 있다면 어떤 타개책으로 육아부담도 나누고 아이랑 친해졌는지 조언해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