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녀석이 너무도 당당하게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있다.
2011년의 봄, 3월의 시작은 우리 가족에겐 단순한 봄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3월2일, 성윤이가 어린이집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1년 남짓 엄마가 품다가 다시 1년 남짓을 ‘이모님’이 돌봐주셨고, 집안에서 안온하게만 크다가 33개월 만에 드디어 가족이 아닌 ‘다른 사회’를 경험한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의미 부여일까.
어쨌든 챙겨야 할 서류도 준비물도 많았다. 입소신청서, 어린이집 규정 준수 서약서, 응급조처 동의서... 그리고 이불, 내복, 수저 세트, 뚜껑 있는 컵 등등. 모든 물건에는 아이 이름을 적어야 하고, 이불이나 내복 등에는 바느질로 아이 이름을 수놓아야 했다.
자신의 직장 어린이집에 애를 맡겨야 하는 성윤 엄마는 많이 바빴다. 온갖 입소 수속을 도맡았고, 부모 오리엔테이션에도 참석해야 했다. 아내는 어린이집 선생님들로부터 ‘어머님’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고 했다.
반면 녀석이 어린이집을 들어가는 데 아빠인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회사에서 재직증명서를 떼어주고, 수많은 입소 관련 서류에 주민번호나 주소, 연락처 기입 등의 잡무를 도운 것 정도. 군대에서 군복에 ‘주기’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 녀석의 이불이나 내복에 이탈리아 장인의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김성윤’ 석자를 수놓았다...면 좋았겠지만, 마음만 있고 시간은 없어서 그 일도 성윤 엄마의 차지였다.
녀석이 들어간 어린이집은 입소 초기 엄격한 적응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첫날에는 아이가 희망하는 시간까지만 있다가 집으로 보내고 그 다음날에는 점심을 먹고 하교, 그 다음날에는 낮잠도 자보고 하교, 이런 식으로 최장 한 달 동안 체류 시간을 서서히 늘려가는 방식이다. 아이가 원하면 언제라도 집에 갈 수 있도록 옆방에서는 일하는 부모가 아닌 다른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은 집에 와계신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맡아주셨다.
» 성윤 엄마가 몰래 찍은 식사 사진.
녀석은 3월2일 입소 첫날, 아무 거리낌 없이 어린이집에 들어가 언제나 그랬듯 엄마와 쿨하게 작별했다고 한다. 이날 원래 목표는 점심 먹기 전까지 머무는 것이었는데 2시간이 지난 오전 11시에 “집에! 집에!”하며 하교를 재촉해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날은 체류 시간이 조금 늘었고 4일 금요일에는 점심식사까지 하고 왔다. 집에서는 밥을 먹여줘야 먹던 녀석이 그곳에서는 다른 아이들처럼 수저를 들고 혼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그밖에 특이사항? 녀석과 함께 새 학기에 들어간 또래친구 2명이 더 있는데, 얘네들은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려고 하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했다. 또 음악을 틀어주면 녀석만 유독 앞으로 나가 춤을 춘다고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얘기가 전해들은 내용이다. 요즘 일이 많아 귀가가 늦어 평일 저녁에는 녀석 얼굴 보기가 쉽지가 않다. 물론 어린이집에도 한 번도 못 가봤다. 그래서 그런지 ‘성윤이 어머님’ 소리를 들은 아내와 달리, 난 학부형이 되었다는 실감이 아직 안 난다.
그래도 녀석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아내는 “성윤이가 아직 어린이집을 놀이방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래도 갔다 오면 표정이 너무 행복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나와 똑같은 ‘소우주’가 세상에 여럿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때론 부딪치고 때론 양보하면서 마음의 키가 훌쩍 커졌으면 좋겠다. 네살박이 녀석이 ‘인생 공부’를 할 만한 곳인지, 이번 주에는 점심시간을 빌어서 꼭 그곳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