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08285-1.JPG



“바다야, 이 그림의 이름은 ‘지아 달’이야.

엄마가 엄마를 그린 거야.“

 

“예쁘다, 엄마 달.”

 

바다가 이 그림을 '엄마 달’이라고 불렀을 때

내 가슴은 기쁨으로 울렁거렸다.

 

며칠 전에 1년 동안의 표현예술치료 공부를 마무리하며

각자가 그린 자화상을 걸고 공연을 했는데

이 그림이 바로 그 때 나온 자화상이다.

 

나는 나의 자화상인 ‘지아 달’ 에

나의 신성과

나의 눈물과 웃음과

나의 긴장과 이완과

나의 떨림과 부드러움과

나의 어두움과 빛을 담았다.

 

그리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비참함과 텅 빔과 무너짐을 담게 되었고

 

공연을 한 후에는

나를 일으키는 섬세하고 단단한 힘과 감싸는 사랑이 담기게 되었다.


비참함과 텅 빔과 무너짐은

그림을 그리다가 쓰러진 일에서 만나게 된 나의 감정인데

최근에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고

아픈 관절과 힘이 없는 몸을 움직여 겨우 그림을 그리다가

순간 정신을 잃고 바닥에 놓인 그림 위에 얼굴을 부딪치며 쓰러진 것이 그 일이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옆에서 나를 본 친구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싫었고

나의 그런 비참한 모습이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텅 비고 힘이 없는 내 몸에게

아직 더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몰아 부쳐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공연의 중심에 그 감정을 담았다.

무너짐의 시작인 출산 장면을 표현했고

출산 후에도 쉬지 않고 수유하고 청소하고 바쁘게 일 하는 나를 표현했다.

더 많은 것을 더 잘 하기 위해서 바쁘게 뛰던 나는 결국 무너지듯이 쓰러졌고

어렸을 때 내 이름을 행복하게 부르던 부모님의 목소리를

다시 회상하듯 들으며 정신을 차리고

두 분의 보이지 않는 손을 잡고 쓰러졌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돌아 신성의 그림을 발견하고 신성과 함께 춤을 추었다.

 

공연을 하고 나서

나의 비참함과 텅 빔과 무너짐에 대한 인정과 위로 위에

아주 큰 사랑과 우주의 보살핌이 소복하게 쌓였다.

 

그래서 지금도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너무나 버겁지만

나를 몰아세우거나 나의 힘든 상태를 비참하게 느끼지 않는다.

힘들면 쉬고 나에게 필요한 걸 해주려고 애쓴다.

고민이나 힘든 일이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 지아 달과 대화하고

밤새 꾼 꿈에 대해서도 지아 달과 대화한다.

 

지아 달은 내 안에 있는 신이고

그 신은 지혜와 순수와 유머러스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나의 친구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런 공부를 하고

이런 자화상을 그리고 공연을 한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모른다.

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을 것이고

공연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존재인지 몰랐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는

나의 가장 신성하고 빛나는 존재의 부분을 꺼내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림으로 만들고

그 그림을 매일 보고 만지며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고 기쁘다.

 

바다와 하늘이도 이 달과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엄마의 신성을 느끼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난 가장 빛나는 나의 신성, 지아 달아,

고마워!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최형주
이십 대를 아낌없이 방황하고 여행하며 보냈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시골 대안학교로 내려가 영어교사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지금은 두 딸 바다, 하늘이와 함께 네 식구가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 살고 있다. 부모님이 주신 '최형주'라는 이름을 쓰다가 '아름다운 땅'이라는 뜻의 '지아'에 부모님 성을 함께 붙인 '김최지아'로 이름을 바꾸었다. 베이비트리 생생육아에 모유수유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그림과 글로 표현한 ‘최형주의 젖 이야기'를 연재 완료하였다.
이메일 : vision323@hanmail.net      
블로그 : https://blog.naver.com/jamjamlife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25293/855/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145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힘들땐 '딸랑이'를 흔들어 주세요!! imagefile [2] 신순화 2018-01-23 6246
144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딸은 사춘기 엄마는 갱년기 imagefile [3] 윤영희 2018-06-21 6241
14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들과 함께 자고 싶어하는 아빠 imagefile [2] 홍창욱 2018-01-24 6234
142 [소설가 정아은의 엄마의 독서] 너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결혼이라는 통과의례 imagefile [4] 정아은 2017-12-14 6222
141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67편] 미세먼지 많은 날엔 이런 음식이! imagefile [5] 지호엄마 2017-05-16 6211
» [최형주의 빛나는 지금] 엄마 달 imagefile [2] 최형주 2017-05-31 6183
13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들이 온다 imagefile [2] 신순화 2018-03-28 6183
138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imagefile [3] 정은주 2018-04-19 6152
137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어른책] 매일 먹는 놀이밥 imagefile [8] 서이슬 2018-02-20 6143
136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막내의 과소비 imagefile [4] 신순화 2018-11-06 6139
135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아이책] 그것이 사랑 imagefile 서이슬 2017-07-20 6116
134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세상 속으로 등 떠밀기 imagefile [1] 정은주 2017-05-01 6112
133 [강남구의 아이 마음속으로] 두 마음 사이 전쟁 imagefile 강남구 2017-12-01 6105
132 [박진현의 평등 육아 일기] 장래희망? 내가 어떻게 알아! imagefile [3] 박진현 2018-03-06 6093
131 [일본 아줌마의 아날로그 육아] 가능하지 않은 걸 꿈꾸면 안되나요? imagefile [4] 윤영희 2017-07-25 6085
13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빨래, 그래도 별 탈 없다 imagefile [3] 신순화 2017-10-12 6063
129 [정은주의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 뿌린 대로 거두리라 imagefile [3] 정은주 2018-03-16 6060
12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우린 언제나 새로운 노래를 부를 수 있어 imagefile [5] 신순화 2019-01-08 6055
127 [아이와 함께 차린 글 밥상] [아이책] 누구에게나 있는 것 imagefile [4] 서이슬 2017-10-16 6052
12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수학꼴찌, 초등 2년 내 딸을 위하여 imagefile [6] 홍창욱 2018-03-25 6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