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18_2.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육아아휴직중이던 그 시절, 13개월이 된 아이와 단둘이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처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유모차에 동네 한바퀴가 내 세상의 전부였다. 아! 이렇게만 살 순 없잖아! 과감히 카시트에 아이를 ‘묶었’다. 여느 때같으면 싫다고 몸을 틀며 고함을 지르던 아이가, 그날은 웬일인지 반항하지 않았다. 아! 아빠 마음 안거야? 그런거야? 아싸! 가는거야!

마음은 설레었지만, 막상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이왕 나왔으니 근사한 데를 가야 할텐데. 문득,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물고기 흉내를 내는 게 떠올랐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노래와 함께 가르친 눈부신 성과였다. 그래! 수족관! 노래를 불러줬더니 아이는 또다시 양손을 까딱까딱…, 옳거니!
하지만 아빠 혼자 외출이 어디 그리 여유롭기만 할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땐 처음이라 뭘 몰랐다. 아이를 데리고 나간 세상엔, 솔직히 불편한 일이 너무 많았다.

‘고난’은 도착 직후 시작됐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들어갔더니, 수족관 입구엔 에스컬레이터 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아이를 한손으로 안고 유모차를 둘로 분해했다. 하나씩 올린 뒤 위에서 다시 조립해서 아이를 앉혔다. 땀을 뻘뻘 흘렸다. 왜 엘리베이터가 없는거야!

아빠의 고충은 아랑곳않고 아이는 신이 났다.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생각날 때마다 양손을 까딱까딱…, 귀여운 녀석! 하지만 가다보니 경사로 없는 계단이 또 나왔다. 낑낑대며 유모차째 들어서 계단을 올랐다. 왜 경사로가 없는거야!

한쪽에 수유실이 보였다. 기저귀도 갈고 목도 좀 축이고, 무엇보다 때가 됐으니 이유식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수유’만을 위한, 그래서 아빠는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에휴! 수유실 옆 벤치에 잠깐 앉아 아이와 함께 목만 좀 축였다. 수유실에 드나드는 엄마들이 왜 그리 부러운지. 왜 아빠 수유실은 없는거야!

그렇다고 이유식을 건너뛸 순 없었다. 나도 배가 고팠다. 수족관을 나와 바로 옆 베트남식당에 들어갔다. 쌀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유아용 의자가 없었다. 일단 아이를 옆자리에 대충 앉히고, 집에서 싸온 이유식과 수저를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하지만 아이는 몇숟갈 뜨더니 더 먹지 않았다. 오랜만의 외출을 만끽하느라, 옆자리, 뒷자리, 앞자리 손님들을 찾아가 인사하기 바빴다. 나도 그걸 쫓아다니느라 몇달만의 쌀국수는 먹는둥마는둥했다. 왜 유아용 의자는 없는거야!

우유라도 조용히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야겠다 싶어 옆 백화점 수유실을 가려 했다. 거긴 아빠들도 들어갈 수 있고, 시설도 괜찮으니까. 문제는 엘리베이터였다. 문이 열릴 때마다 꽉 찼는데, 누구도 유모차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에스컬레이터 타도 되잖아!

결국 백화점 수유실은 포기하고 차로 돌아와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였다. 차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버스나 지하철이었다면 한층 힘들었을 게다. 외출의 즐거운 기억과는 별개로,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외출이 거듭되면서 불편은 익숙해졌고 불만은 잊혀져갔다. 많은 것을 ‘으레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됐다.

다만 며칠 전, 그때 기억이 잠시 살아난 적이 있었다. 지금 출입하는 국회의 한 남자화장실에 갔다가, 좌변기 칸 안 한쪽 벽에 유아용 안전의자와 기저귀교환대가 있는 걸 봤다. 다른 곳 남자화장실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설비다. 왜 이런 건 국회에만 있는 거야!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2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태그
첨부
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이메일 : oscar@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oscar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84582/186/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1945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커밍아웃? 햇님군의 사립초 생활기-1편 imagefile [8] 전병희 2013-12-13 36762
1944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남자들은 죽어도 모를 그곳 통증 imagefile 양선아 2010-11-17 36743
1943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55편] 아줌마의 리얼 패션~ imagefile [8] 지호엄마 2016-06-29 36724
»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그날 외출 뒤, 사회불만세력이 되다 imagefile [14] 김외현 2012-10-18 36682
1941 [김연희의 태평육아] 공짜 대마왕, 공짜집을 마다하다 imagefile 김연희 2011-09-02 36602
1940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아기 집에 바늘 콕 "미안하다, 고맙다 아가야"   imagefile 양선아 2010-06-18 36465
1939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말이 늘어요 imagefile 윤아저씨 2010-09-02 36383
1938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편지 imagefile 윤아저씨 2011-06-30 36300
193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이들끼리 전철에 모험 싣고 고고씽! imagefile 신순화 2010-11-30 36268
1936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14편] 직장맘, 퇴근 후 응가 이야기 imagefile [10] 지호엄마 2012-09-21 36240
1935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52편] 초등초등엄마가 되어보니 imagefile [10] 지호엄마 2016-04-18 36164
193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마가 되어 ‘엄마’를 다시 만나다 imagefile 신순화 2010-07-12 36054
193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엄친딸 조카도 손빠른 동서도 ‘이젠 괜찮다’ imagefile 신순화 2011-09-08 35880
1932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미안 ㅋㅋ imagefile 윤아저씨 2011-03-17 35836
1931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끝내 실패한 낡은 소파 버리기 imagefile [9] 신순화 2014-08-21 35757
1930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불가항력 imagefile 윤아저씨 2011-04-07 35756
1929 [최형주의 젖 이야기] 젖꼭지에 불났다, 어떻게 끄지? imagefile [12] 최형주 2013-07-12 35747
1928 [김명주의 하마육아] 유럽까지 1주일 1만원 imagefile [14] 김명주 2014-12-28 35685
1927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페낭 힐, 푸니쿨라타고 벌레잡이 식물을 보러 가다. imagefile [7] 빈진향 2013-07-17 35627
1926 [김명주의 하마육아] 언어천재의 탄생 [6] 김명주 2015-04-28 35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