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옛 말인데 부모가 되기 전에는, 아니 자식 둘의 아빠가 되기 전에는 실감할 수 없었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좋아하는 자식과 싫어하는 자식이 분명이 보이는데 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가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엄마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할 수가 있어?’라고 생각한 분들도

무척 많을 듯하다.

아이 둘을 놓고 나니 비로소 애정을 두고 비교해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옛 속담이 그러한지 찬찬이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5살 뽀뇨를 보며 극도로 조심을 하게 된다.

뽀뇨가 ‘아빠 싫어’를 연발하거나 아빠에게 냉랭할 때는 둘째 하나에 대한 ‘애정표현’이 과했고

심지어는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귀포 우리 집에 첫째를 잠시 봐주러 오신 엄마는 둘째 날부터 뽀뇨의 ‘창원 할머니 싫어’를 귀가 아프게 들어야 했다.

하나를 처음 보고 애정공세를 편 바로 다음부터 ‘싫어병’이 시작된 것이다.

 

또 다른 옛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이번엔 황희정승의 ‘검은 소와 누런 소’ 이야기다.

누가 더 일을 잘 하냐는 질문에 귓속말로 대답하며 다른 소를 배려했다는 이야기인데

왠지 자녀에 대한 애정도 적당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이 되었다.

다행히 둘째가 아직 돌도 되지 않은 갓난아이인지라 ‘말’로는 첫째를 무지하게 챙기며 점수를 따고 있다.

칭찬이 고래를 춤춘다고 했던가.

칭찬에서 시작해서 칭찬으로 끝나는 하루 일과이다 보니 할머니와의 얽힌 관계도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아직 아이 둘 아빠가 된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열 손가락이 모두 아프다’는 ‘열손가락론’은 일면 맞는 말이지만

뒤에 이어진 문장을 숨기고 있다.

 

‘다만.. 어떤 손가락은 더 아프더라’라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분명 부모에게는 더 애착이 가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성별, 성격, 닮은 정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부모의 마음은 ‘열손가락론’으로 일관하고 또 ‘검은 소와 누런 소’이야기로 평정을 유지하는 듯하다.

지난 5년간 ‘딸바보’였던 내게 둘째가, 그것도 아들이 생길 줄은 몰랐다.

기대하고 고대한 일이긴 하지만 막상 ‘아들’이 생기고 나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목욕탕을 함께 갈 수 있는 자식이 생겼구나’라는 생각..

아마 대부분의 아빠들이 가지지 않을까.

방실방실 웃는 둘째에게 푹 빠져서 지내긴 하지만 늘 첫째의 눈초리를 경계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옛날에는 진짜 열 명의 아이를 낳고 ‘열손가락론’을 설파했을텐데

요즘은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도 많고 아이 하나인 부부들이 대다수인 듯하다.

아이 둘이 되어보니 비로소 ‘열 손가락론’에 대해 가타부타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말씀이 ‘열 손가락이 아프더라’라는 현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열 손가락이 모두 귀하다’는 진짜 부모 마음가짐을 설파하는 듯하여 마음에 든다.

     

‘기실 제 눈에 더 드는 아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제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무한하여 이를 측정한다는 것’은

한심하고도 불가능한 일. 요즘 내 마음이 이렇다.

 

<하나와 뽀뇨, 가깝지만 먼 사이 ㅎㅎ>

뽀뇨하나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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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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