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베이비트리에 글을 쓴지 1년이 지났다.
작년 5월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유모차를 끌고 나왔을때 아빠의 모습은
결코 눈부시지 않았다.
일터가 아닌 도심에서 유모차를 끌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고
오후 4시가 지나서야 붐비는 동네 놀이터는 온통 아주머니들 뿐이었다.
일을 다니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나 엄마의 존재를 아이에게 묻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는 뽀뇨를 대신하여
“엄마, 돈 벌러 갔어요”
라고 대신 말해준 것이 아마 백 번은 되지 않을까?
애딸린 아빠에 대한 주위의 부정적 시선에 대해서는 이미 허다하게 말을 하였고
(아빠육아의 적들, 답이 어디에편) 긍정적 시선도 존재함을 오늘 밝히고자 한다.
1년동안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얻은 긍정적 시선 중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도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이를 좋아하고 환대한다는 사실이다.
덩달아 함께 있는 아빠 또한 환대를 받는다.
공식적인 행사에 아이를 달고 나타나는 건 어떨까?
워크숍에서, 동문회 회식자리에서, 기자회견장에서, 콘서트장에서,
심지어 교육장에서까지..
누구도 애와 애딸린 아빠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의 옷매무새를 장소에 적합할 정도만 맞춘다면 입장은 환영을 받는다.
물론, 충분할 정도의 과자와 음료가 필요하긴 하고
그것조차 떨어지면 애딸린 아빠는 아이를 안고 서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게 다다.
그렇다면 초면에 아이를 데리고 미팅을 갖는 것은 어떨까?
내가 찾아가서 부탁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누구도 그 자리를 불편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를 잘 돌보며 미팅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나에게 매달리고 뒤에서 목을 조르는 중에도
나는 미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농촌에서 아이의 인기는 폭발적인데
아빠가 시골마을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뽀뇨다.
돌이 갓 지난 아이를 차에 태우고
농촌 들녘과 밭을 땀흘리며 다니는 젊은 아비를 보고 마을 어르신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내 손주같고 내 아들같지 않았을까?
가족, 그것도 아이와 함께 나타났기에 나는 마을 형님, 형수님들과
빨리 거리를 좁힐 수 있었을 것이다.
과장된 것 같다면 이번 추석, 고향집을 떠나올 때 할아버지 할머니 눈시울을 떠올려보라.
아이는 그 생명력 하나만으로 큰 감동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애딸린 아빠는?
그 감동에 편승하는 작은 존재? ^^;
아빠딸린 아이, 뽀뇨에게 감사를 표한다.
<추석 1000키로를 오가는 배안에서 뽀뇨와 아빠. 쓰러진 아빠와 기둥에 기댄 뽀뇨 ^^>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뽀뇨 돌즈음하여 걷는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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