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둘이 있을 때 친구하기로 한 거 맞지?“
"쉿, 근데 다른 사람 있을 때는 절대 말하기 없기“
얼마 전부터 첫째와 친구를 먹었다.
아내들 입장에서는 아이 하나 더 키운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기에 별로 희한할 것이 없겠지만,
아이와 공식적인 친구사이가 되는 건 피터팬 신드롬 가득한 아빠에겐 일종의 신세계다.
나이 때문에 혹은 아빠라는 지위 때문에 짓눌려 있었던 내 안의 본성을 깨우는 일,
나는 딸내미와 친구를 먹어서 가능한 일이라 본다.
사실 ‘아빠와 친구사이’가 과연 가능할까
혹은 친구에서 아빠로의 빠른 전환이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예를 들자면 다른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우리끼리의 일상적인 대화,
“야, 너 그러면 안 되잖아. 똥꼬바지야”라고 내게 이야기를 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
혹은 “이제 유투브로 피삼총사 그만보고 집에 가자”라고 했을 때
고집을 피우며 더 이상 내 말에 따르지 않게 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가끔은 아이에게 먹을 것, 혹은 좋아하는 것으로 회유하거나
화를 내며 윽박지르거나 할 때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보자면
6살 딸아이에겐 친구가 되어서 놀아줄 아빠가 최고인 듯하다.
아이와 놀 때는 그 대상이 아빠건, 엄마건, 할아버지건,
심지어 선생님이건 나이와 지위 등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로 우리 둘의 비밀약속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나와 딸은 싸울 일이 없고 싸운다 하더라도 쉽게 화해가 될 것이다.
딸아이가 선을 넘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잠재워지니 올 여름은 물놀이하기에 참 좋았다.
일요일마다 아내에게 휴식을 줄 겸 첫째 혹은 아이 둘을 데리고 물놀이를 떠나게 되는데
가방을 누가 가져갈까, 둘째가 혹시나 미끄러지지 않을까라는 걱정만 빼고는 아이처럼 놀았다.
어떤 때는 평일 저녁에 가까운 자구리 해안가에서 시원한 용천수에 몸을 담그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수를 맞으며 즐거워했다. 솜반내 시냇물은 어찌나 차가운지 ㅠㅠ
표선해수욕장에선 땅 짚고 헤엄을 치며 첫째와 물속에서 잡기놀이를 했다.
태풍 오는 날 논짓물에서 집채 만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시간아 갈 테면 가라하며 바다가 떠나가라 웃었다.
첫째는 둘째 튜브로 나는 첫째 튜브로 파도를 맞았는데 내게 작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남원해수풀장은 물이 너무 차가워서 첫째로 아쉬웠고
어른들은 미끄럼틀을 탈수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아내가 만들어준 물놀이 키트(수영복, 수건, 해먹, 모자, 튜브등)를 들고 집을 빠져나올 때
역시나 둘째 기저귀를 안 챙기거나 어떤 때는 모자, 간식을 빠뜨려 마트에서 살 때도 있었지만
“아차, 이걸 빠뜨리고 왔네”하는 실수가 가끔은 삶의 여유같이 느껴졌다.
양복 입을 일이 상가집 문상 갈 때도 없거니와 넥타이 멜 일은 마을 일하며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파마머리 할 때는 그 머리가 싫은지 엄마와 장모님이 다들 한마디씩 말을 남겼고
내 20대 때 뚫었던 귀에 귀걸이 안한지도 10년이 넘어간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서 제주에 내려왔고
또 그런 일을 하고 있지만 내게도 남 눈치에 앞서 내 스스로 자기검열하는 일이 종종 있다.
사실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것일텐데.
‘아이와 친구사이’는 그래서 내게 해방감을 준다.
아이처럼 아니 내 있는 그대로 웃을 수 있어서.
<아이처럼 친구처럼>
<솜반내에서 신이난 둘째>
<태풍오는 날 논짓물, 신이 난 첫째>
<남원해수풀장에서 잠든 둘째>
<자구리해안의 클라스>
<자구리 분수대, 얘들아 나도 좋아한다규 ㅠㅠ>
<천지연폭포는 동네 밤마실코스>
<넓은 백사장의 표선해수욕장>
<한적한 하도리 해변.. 바로 앞으로 우도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