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2.jpg

 

산낙지가 산에서 나는 낙지인줄 알았다. 정말이다.
그래서 산낙지의 반대말이 죽은 낙지라는 것을 알았을때 정말 깜짝 놀랐다.
바다낙지인 줄 알았다.
낙지는 바다에서 나는 건데 산낙지를 어떻게 산에서 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냐고 기막혀 하겠지만
평창의 깊은 산 속에서 맛있는 송어회를 먹어본 일이 있는 나는 낙지도 깊은 산 속에서 양식으로
기르는 것이 있는 모양이라고 간단하게 이해해 버렸다.
(살아있는 낙지는 '산낙지'라고 부르면서 왜 살아있는 물고기는 '산고기'라고 안 하는건지,
'활어'나, '생물'이라는 말을 쓰고 있으니 산낙지도 '생낙지', 나 '활낙지'라고 해야 하는게 아니냐고
그래야 일관성이 있는 거 아니냐고 나는 지금도 주장하는 바이다. ㅋㅋ)

'갈매기 살'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 고기인 줄 알았다.
닭 말고도 거위나 오리나 먹는 새는 많으니까 갈매기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쉬었다.
게다가 갈매기는 큰 새니까 살도 많겠지. 맛도 좋나보다. 그러니까 고깃집에서 갈매기 살도 팔지..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어른이 되고도 오랫동안 갈매기 살을 먹어본 일이 없었기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대학병원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내 여동생은 '꼬리 곰탕'이 정말 곰 꼬리로 끓인 탕 인줄 알았다고 했다.
동생은 충분히 그럴만 하다. ㅋ)

운전면허를 따기 전에 버스나 택시를 타고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눈에 띄는 '비보호'라는 뜻이
정말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로부터 그 신호등을 보호하고 있다는 표시라고 이해했다.

왜 모든 신호등이 아니고 몇 몇 신호등 앞에만 그렇게 써 있는지 까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저렇게 써 놓는 신호등은 특별히 빗물로부터 따로 보호할 필요가 있나보다 여겼다.

누구에게 물어 볼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이해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 없었기 때문이다.

카 센터나 수리 센터 같은 곳을 지나치다 보면 '순정부품'사용이라고 써 있는 표지들을 보게 되는데
나는 그것을 '순 정부품'이라고 이해했다. '백 퍼센트 정부에서 제공하는 물품'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내게 '순정부품'의 반댓말은 '민간부품'이었다. 조달청 같은 곳에서 정부가 일괄 구매해서
제공하는 그런 물품들을 말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했다. 민간인들이 만드는 것 보다 믿을만 하다는
뜻이려니... 했다.
어떻게 그렇게 이해할 수 있냐고 내 얘기를 듣는 사람마다 아우성이었지만 글자를 보자마자
'순 정부품'이라고 이해가 되버린 이유를 설명할 수 가 없다. 띄어쓰기가 없어도 내게는 당연히
그렇게 보이는 거다. 그렇게 이해하고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그것을 일부러 물어 확인할 필요도
없었으니 아무 상관없었다.

짧은 연애를 할 때 남편은 번쩍 번쩍 빛나는 새 트라제 차를 몰고 있었다.
조수석에 타면 차창을 통해 사이드 미러가 보였는데 사이드 미러 아랫편에 작은 글씨로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 보다 클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남편이 읽은 책 속에서 의미있는 경구를 일부러 새겨 넣은 것 인 줄 알았다.
명상이며 철학서적등을 오래 탐독한 내게 그 글귀는
그렇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면 안되지...  이런 깊은 뜻으로 읽혔다.
이 남자.. 그렇게 안 봤는데 뭔가 심오한 정신세계가 있는 모양이라고 속으로 감탄했다.
면허도 있었고 내 소유의 낡은 경차도 운전하고 있었지만 내 차엔 그런 글귀 따위가 없었으므로
나는 그렇게 이해하며 나이 든 연인을 조금 더 존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아.. 참말로 나는 나만 아는 세상이 따로 있었다.
그 세상도 나름 이치에 맞고 불편없이 잘 돌아갔었다.
그래서 '산낙지'나, '순정부품'이나 '비보호'같은 말들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될 때마다 깜짝 놀라며
감탄하곤 했다. 나이가 들어도 감탄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지금도 남들 다 아는 것을 나만 새롭게
알게 되어 놀라고 감탄하며 산다. 사는 일이 지루할 틈이 없는거다.

'사물이 눈에 보는 것보다 클 수 있습니다'라는 말의 뜻이 실제보다 작게 보이는 사이드미러의
단점을 경고하는 말 인것을 알았을때는 정말 크게 웃었다.
남편은 심오고 뭐고 책은 정말 거의 안 읽는 사람이라는 것과 명상이니 철학이니 같은 것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는데는 긴 시간도 필요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내게 보이는 대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이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 뒤죽박죽 들어있는 온갖 내용속에는 분명 '순정부품'같은 예가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마딱뜨릴 일이 없으면 영원히 제 뜻을 알 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들도
있겠지. 그러면 어떤가.
살아보니 세상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또 다른 세상들이 존재 하더라.
아직도 세계 어디에서는 지구가 둥근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지. 매년 모임도 갖고
나름대로 학술회도 한다는데 그런 사람들은 위성사진같은 것도 다 조작이고 거짓이라고 주장한다는데
예수가 외계인 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마이클 잭슨이 여자였다고 믿는 사람들이나
앨비스 프레슬리가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끄떡없이 존재 한다는데
그런 것들에 비하면 내가 슬쩍 다르게 생각하고 사는 것들은 귀엽고 재미난 애교 정도 되겠다.

언제나 말 없이 빙긋 웃는 사람과 짦은 연애를 하는 동안 그 웃음과 침묵이 속에 깊고 큰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으로 오해 했기에 우리는 부부가 될 수 있었다.
사람 사이의 이런 오해와 착각이 없으면 연애나 사랑은 애시당초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린 보고 싶은 대로 보면서 느끼고 싶은  것을 느껴가면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일테니 말이다.
넘치는 상상력과 앞 뒤 상관없이 땡기는 대로 편하게 내 맘대로 이해해버리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마누라때문에 남편은 자주 속이 터지는 모양이지만 이런 마누라때문에
사는 게 늘 생동감 넘치는 거라고 나는 또 내 맘대로 생각하며 산다.
이런 착각 덕분에 우리 부부는 오늘도 깨 쏟으며 사는 것일테지.

그러니 남편이여...
미소와 침묵이 그냥 미소와 침묵일 뿐 그 안에 그럴듯한 무언가는 결코 없었던 남편이여..
명랑하고 재미나게 말 하는 여자인것이 좋아서, 이런 사람과 살면 늘 재미있고 행복할 것 같아서
나와 결혼 한 후 마누라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포수같은 잔소리에 일찌감치 질려버린 남편이여..

우린 서로의 오해와 착각 덕분에 부부가 되었으니 이 또한 다행이 아닐까.
서로의 본 모습을 알았다면 우린 어쩜 남남이 되었을 거야...ㅋㅋ
살아도 살아도 아직도 도무지 알기 어려운 서로인 탓에 이 나이 되도록 싫증이 안 나는구만.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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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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