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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사랑하며 아꼈던 소파를 없애기로 했다.
누군가 쓰임이 다 했다고 아파트 입구에 버렸던 것을 주워다 쓴 이후로 7년이 더 흐르는 동안
이미 한참전에 소용이 다 했을 소파였다.


소파2.jpg



처음에는 가죽이 헤져서 찢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죽죽 떨어져 나갔다.
그 아래로 솜이 비어져 나와 너덜거렸고, 마침내는 쿠션에 댄 스펀지까지 드러나서 여간
보기 흉한게 아니었다. 몇 번이나 치우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아들은 펄쩍 뛰었다.



 "....이 소파... 낡아도 괜찮은데... 꼭 버려야 되요?
저는 이 소파가 좋아요. 버릴 수 없다고요"

2014년에 큰 맘 먹고 버릴려다가 소파에 앉아서 끝내 눈물을 떨구는 아들 모습에 단념했었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 큰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만서까지 없앨수는 없었다.
그 후로 3년을 더 써 오는 동안 소파는 낡을대로 낡아버렸다. 게다가 그 사이 늘어난 책들과
이런 저런 물건들로 거실이 너무 좁아져서 답답하던 차였다. 이번에는 아이들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3.jpg


소파가 너무 무겁고 커서 현관문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집안에서 해체를 해서 들어내기로 했다.
남편이 작업하기 전에 두 딸들이 마지막으로 소파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토록 이 소파에 애착을 기울이던 아들은 낮잠을 잔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칼로 가죽연결부분을 도려내고, 가죽과 솜과 스펀지를 분리해서 대형 쓰레기봉투에 넣고, 나무 널을
떼어 내기까지 남편과 내가 흘린 땀은 족히 한 말쯤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튼튼하고 손이 많이 가게 만들었으니 분명 처음에는 무척 좋은 소파였을 것이다.
쓰는 내내 앉기도, 눕기도 편안하고 좋았다.
돈 주고 살래도 이렇게 맘에 꼭 드는 소파는 만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두 아이 낳아 젖 먹여 키우는 동안 소파가 없어 불편했었다. 바닥에 앉아서 젖을 물리다보면
허리도 골반도 시큰하니 아팠다. 편안한 소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나 사자고 결심하고
숱하게 가구점을 돌아보았지만 너무 비싸거나, 너무 크거나, 안락하지 않거나 맘에 들지 않았다.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쓰레기 분리 수거 하는 날,우리가 살던 아파트 편관 앞에 이 소파가 나와 있었다.
남이 쓰던 거라 싫다는 남편에게 조르고 졸라서 이웃 사람 손까지 빌려 우리집으로 옮겨왔던 것이
2010년 이었다.



세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매일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장난을 쳤다.
주말에는 남편이 소파에 누워 꿀같은 낮잠을 자곤 했다.
7년 동안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소파였다.

수명이 다 하고도 더 오랜 시간을 아낌을 받던 물건을 막상 치우려니 가슴 한 켠이 서늘해졌다.
세 아이들이 가장 어렸던 날들을 이 소파와 함께 보냈다. 물건이지만 생명있는 무엇인양
특별했던 소파였다.
12월 31일이면 이 소파에 온 가족이 앉아 가족 사진을 찍곤 했었는데 올 연말엔 다른 풍경이
될 것이다. 이 소파에 깃들어 있는 수많은 추억을 더듬어가며 고마웠어.. 많이 고마웠어..
속삭이며 소파를 분해했다.
큰 조각으로 분리된 쓰레기들을 치우고 가장 큰 조각을 들어사 마당으로 내어가고 바닥을 치웠다.
거실이 한층 넓어졌다.

식탁 앞에 두었던 2단짜리 앉은뱅이 책장을 분리해 더 넓은 쪽을 소파가 있던 곳에 두고
그 위에 커다란 방석 두개를 놓고 이불을 잘 덮어 놓았더니 그럭저럭 작은 의자가 되었다.
나머지 책장은 주방쪽 변면에 붙여 놓았더니 넓이가 딱 맞았다. 역시 그럴듯한 천을
찾아 덮어 두었다.


       소파4.jpg

겨울이면 벽난로 위에 주렁주렁 빨래가 걸리는 거실 한 구석에 작고 소박한 나무 의자가 생겼다.
두 딸이 함께 앉아 책을 볼 만은 하다. 등받이 대신 식탁 의자에 깔던 방석을 대 놓았다.
어수선하던 식탁 앞도 말끔하니 환해졌다.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곳이 한결 넓고 여유있어져서 좋다.


      소파6.jpg


4년전 열 한살때 울면서 소파와 헤어지기를 힘들어하던 아들은 정든 소파가 다 분해되어
나갈때까지 방에서 자다가 거실이 다 정리가 된 후에 나와서
"와.. 넓어졌네요" 한다.
그리고는 모자티를 뒤집어쓰고 게임에 열중한다.
낡은 소파 하나 버리는 것에도 마음아파하던 여린 아이는 그 사이 시크한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애착이 큰 물건 하나 담담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마음이 크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2016년 여름)

사진첩 곳곳에 소파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남아있다.
이따금 다시 들춰보며 그립게 추억하리라.

물건에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꼭 필요했을때 와준 소파..
내가 가장 바쁘고 고단했던 시절을 지켜주었던 고마운 존재였다.
마음속에, 추억속에 소중하게 간직한다.

고마왔다.
그 긴 시간..
우리와 함께 해 주어서..
잊지않을께.

갑자기 울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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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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