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jpg


창 밖엔 첫눈이 펑펑 오는데, 나는 집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쪽파때문이다.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낸 아침나절, 비로소 느긋하게 신문을 펴는데 창 밖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음.. 첫눈이군..
다른 곳에선 이미 첫눈이 내렸다고 한바탕 야단이었지만 우리 동네엔 빗방울이 지나갔을 뿐
눈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눈발은 금새 거세져 마당과 지붕을 덮기 시작했다.  이렇게 펑펑 내리는 첫눈이라니... 감탄도 잠시
정신이 번쩍 났다.
아!! 쪽파!!!

윗밭에 쪽파를 여지껏 뽑지 않고 두었던 것이다.
다음주에 김장할때 써야 하는데 날이 추워진다는 얘기는 계속 듣고 있으면서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어왔는데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고 있자니 지금이라도 뽑지않으면 애써 자란 것들이

못 쓰게 될 것 같아 화들짝 놀라 소쿠리를 안고 윗밭으로 내달렸다.
날 좋을때 게으름피더니 눈 맞으며 파를 뽑게 되었다.

아직 땅이 얼지 않아 쪽파는 그럭저럭 뽑혔다.
힘 줄때마다 흙속에서 딸려 나오는 파 냄새가 진했다.
날이 추워질수록 악착같이 뿌리를 내려가며 버티고 있었으리라.
잎은 비들비들한데 파대궁과 뿌리는 단단하고 튼실했다.

계절을 나기 위한 야무진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급하게 한 소쿠리 가득 파를 뽑아 내려왔다. 이젠 꼼짝없이 파를 다듬어야 한다.

     
쪽파2.jpg  


칼로 파뿌리를 잘라내서 마른 잎을 떼어내며 다듬는데 맵고 진한 파냄새가 진동을 한다.
겨우 한 줌 다듬었을뿐인데 코끝이 얼얼하고 눈이 매워서 끝내 눈물이 줄줄 흐른다.
내 눈은 파 냄새에 언제나 약하다.
옷섶으로 눈물을 훔쳐가며 요만큼 다듬다가 도망쳤다. 아... 못살겠다.

마트에 가도, 시장에 가도 다듬어 놓은 파가 훨씬 비싸다. 당연하다.
정말 비싸게 받아야 된다. 파 한단 다듬어 보라. 손끝은 흙투성이가 되고, 허리를 지끈거리고,

무엇보다 눈이 매워 애를 쓰게 된다. 그런 수고가 담긴  파를 헐값에 살 수 는 없다.
시간과 정성과 쉽지않은 손길이 닿은 것은 당연히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하고 얻어야 한다.
나는 새삼 파를 다듬으면서 이런 귀한 채소들이 너무 헐값에 팔리는 것 같아 분개한다.
내가 해보지 않았을때는 비싸다고 입을 내밀며 사던 것들이다.
경험이란게 이렇게 분명하다.
몸으로 시간으로 해 본 일은 그 수고가 새겨진다. 알아지는 것을 넘어 정신에 새겨지는 거다.

농사지은 마늘은 알이 작고 단단했다.
요리할 때마다 일일이 까서 사용했다.

더디고 귀찮은데 미리 까서 찧어놓은 마늘을 쓸때와 비교할 수 없이 진한 마늘향을 맡을때마다

귀찮은 마음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래도 마늘까는 일은 힘들었다.
재주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마늘 까는 부업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에 담가놓은 마늘 한 망을 벗기면 몇천원인가 하는 품삯을 받는다고 했다.
내 인디언식 이름은 '앉아서 마늘까'이다 라고 말하는 글을 읽어본 적도 있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주저앉아 찬물에 담긴 마늘 껍질 벗기는 일을 해 왔는지, 그 힘들과 어려운 일을
해서 쥘 수 있는 적은 돈이란 얼마나 애달픈지 글을 읽는 동안 가슴이 저려왔다.

돌아가신 어머님은 대관령 파 밭에서 종일 파를 뽑아 손질해서 한단씩 묶는 일을 한 품삯 10만원을
떼인채 돌아가셨다. 준다 준다 하고 안 주더라고, 그래도 언젠가는 주지 않겠느냐고, 그런 말을
내게 들려주셨는데 결국 그 돈을 받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파를 볼때마다 그 생각이 나면 다시 마음이 분해진다.
그런 돈 떼 먹는 사람은 천벌을 받아야 한다. 그게 어떤 돈인데 그런 돈을 떼 먹을까. 힘 없고
착한 노인네니까 그럴 수 있었을거다. 나 같은 젊은 아줌마가 일한 돈이었다면 바로 주었겠지.
아... 다시 생각해도 열불난다. 지금이라도 어떻해서든 받아서 어머님 산소에 올려드리고 싶다.
또 눈물난다.

얼치기로 농사 지으면서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보던 풍경들이 하나하나 애달프게 다가온다.
이제 시장에 가서 깨끗하게 손질된 파들이 수북히 쌓여있는 모습을 봐도, 한망가득 깐마늘이
담겨있는 모습만 봐도 마음 아프다. 그것들 다듬은 손을 가진 사람은 이 사회에서 제일 힘 없고
약하고, 어렵고, 고달픈 사람들일것이다. 우린 너무 헐값에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것들을 사서
먹는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야 이런 것들이 알아진다.
파 다듬다 철 들고 있다.


     쪽파3.jpg  

혼자서 눈물 훔치다 창 밖을 보니 첫눈 쌓여가는 세상은 또 너무 그림같다.
이래 저래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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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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