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순진했다.
아니 우린 그때 못 볼 것까지 보여주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으리라.
뽀뇨가 갓 돌을 넘길 때 함께 외출을 하였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거의 동시에 머리가 아파왔다.
‘뽀뇨를 어디다 맡겨야 하지? 누구 잠시만 봐줄 사람 없나?’
근처 여성문화센터 화장실을 이용해야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뛰기 시작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경비실,
‘경비아저씨는 절대 안봐준다고 하시겠지?(역시 남자들은 쓸데가 없어)’
하며 현관 앞에서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전시안내를 맡고 계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너무 반가워서 ‘할머니 화장실 갈 동안만 애기 좀 봐주시면 안되나요?’하며 부리나케 화장실로 직행.
돌 지난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니 별일 다있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경우가 흔한 일일수도 있겠다 싶어 아내에게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같이 들어가서 볼 일 보면 되죠”.
“음... 일을 보는 동안 딸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는다, 그럼 울지않을까? 용변처리는 어떻게 하지?”
닥치지 않은 일로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런데 내 머릿속이 복잡한 것은 다른 경우에서 나타났다.
장소는 동일한 화장실.
밖에서 큰 것보다 작은 것을 많이 해결하게 되는데
그때는 가끔 뽀뇨라는 불청객이 함께 있다.
금방 걸음마를 시작할 때여서 내려놓지도 못하고 왼팔로 안고 오른손으로 볼일을 보아야 하는
신기에 가까운 일을 행하여야 했다.
처음엔 딸아이 데리고 용변보는 일이 조금 머쓱했는데 하다보니 뭐 식은 죽먹기라.
근데 내가 복잡한 건 누가 힐끔힐끔 내 신체 일부를 쳐다본다는 것.
왼팔에 있는 딸이 오른손에 있는 아빠 신체 일부를 쳐다보았으니 민망하기보단 당황스러웠고
당황스러움은 이내 걱정으로 바뀌었다. 어떤 날 일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여아인 뽀뇨를 데리고 화장실을 가고 있습니다.
밖에 나와서 화장실 가야하는 엄마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는데요.
한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서서 용변을 봐야하는 아빠의 특성상
누구에게 아이를 맞길 수 없는 상황엔 한쪽팔로 아이를 감싸고
한쪽팔로 일을 봐야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노출이 되는데
여자아이인 뽀뇨에게 혹시 어떤 영향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시는 분, 좀 알려주세요.”
별 지나가는 개가 뒷다리 긁는 소리라 할지 모르겠지만
오른손이 숨기면 숨길수록 뚫어져라 쳐다보는 딸아이에
아빠는 요즘말로 멘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멘붕도 지속되면 흔한 일, 흔한 일을 자주 겪다보면
요령이 생기기 마련이다.
요즘 아빠는 뽀뇨를 안고 용변을 보지 않는다.
뽀뇨 몸이 무거워져 한쪽 팔로 안기가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내려놓는다고 크게 사고 칠 나이(?)는 지났기 때문이다.
그럼 큰일은 어떻게 해결할까?
누구에게 맡기면 민폐라는 생각에 1평도 안되는 공간에서 우린 얼굴을 마주한다.
아빠의 공간을 여러 번 침입한 뽀뇨덕택에 우린 이미 그런 사이가 된 것이다.
다만 옆칸에 있는 아저씨 놀랄까봐 아빠는 검지를 세우고 입에 대며 “쉬~”.
화장실에서도 익숙해진 부녀의 이야기, 다음은 어디일까요?
<아빠의 공간을 침입한 뽀뇨. 이젠 일상이 되었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빨래하다가 도망치는 뽀뇨를 보실 수 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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