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라는 이름으로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본지 1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집에서 아이돌보는 아빠들만 모아놓은 방송에 출연하고

아이재운다는 핑계로 꿀맛 같은 낮잠도 잤다.

아내와의 경쟁에서 지기 싫어 뽀뇨에게 쮸쮸도 먹여보았고

내 어머니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박도 받아 보았다.

단조로운 회사생활과는 달리 웃는 일이 너무나 많고 가슴 벅찬 일도 다반사.

아이와 함께 잠이 들고, 아이와 함께 일어나는 작은 행복이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건 경험해보지 못한 아빠는 모르리라.

 

밖에선 ‘아빠가 아이 잘 본다’는 칭찬도 곧잘 듣는지라 자부심이 충만하지만

‘엄마인 아내’앞에만 서면 ‘아빠인 남편’은 능력의 한계를 체감하게 된다.

 

‘넘사벽’이라고 들어보았나?

 

넘어서려고 해도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인 능력차를 말한다.

나는 한때 아빠의 모성이 엄마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함께 케이블방송을 출연했던 거의 대부분 아빠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핑크벤츠를 몰 정도로 사업에 성공한 한 엄마가 밤늦게 일 마치고 돌아와

아이를 하루에 30분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엄마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저건 지나친 자신감, 아니 자만심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가 ‘아빠’와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나 가지고 있는 듯 이야기를 하니

대부분의 전업육아 아빠들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의 우월성을 그때도 부인하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일을 겪고는 체념을 넘어 이제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이 왔고 어제 오늘 축제 부스에서 열심히 농산물을 팔아야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아이가 감기 걸릴까봐

부스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차안에서 아이를 놀게 두었다.

 

차 뒷좌석과 앞좌석을 오가며, 핸들을 돌리고 온갖 버튼을 눌러 소리를 낸지가 30분..

왠지 조용하다 싶어 가보니 핸들 밑 공간에서 혼자 손장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제 혼자서 놀 정도로 다 큰 컸나 싶었다.

 

하루가 지나 오늘은 아내와 함께 부스에 왔다.

날이 갑자기 궂어지길래 아내와 아이는 잠시 차에 대피하였고

이내 짐정리를 위해 아내가 차에서 나와 거드는 사이, 뽀뇨의 울음이 터졌다.

몇 분 동안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려 차문을 열었는데

코까지 빨간 채 눈물콧물 흘리는 뽀뇨 얼굴을 보니

‘엄마’가 곧 ‘전부’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머릿속을 스치는 어릴 적 기억 하나.

동네 방앗간 목욕탕(희안하게도 동네 방앗간에 따뜻한 물이 나왔나 보다)에 할머니 한분과 함께

씻으러 들어간 엄마를 어찌나 목이 타게 부르며 울었는지

아직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엄마’는 ‘세상’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나이에 따라, 환경에 따라 ‘엄마’의 ‘비중’이 다르겠지만

세 살 뽀뇨에게 엄마는 내게 그러하였듯 ‘움직이는 세상’이 아닐까?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식구’ 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그 자리’에 만족하려 한다.

 

나는 가끔 뽀뇨의 울음을 마주할 때 실컷 울게 놓아둔다.

그리고 그냥 안아준다.

평생을 살아가며 언제 ‘엄마’를 목 놓아 부르겠는가.

그 중에 ‘아빠’ 한번 불러주는것도 감지덕지지.

 

왠지 순애보 ‘삘’이긴 하지만 오늘은 딸바보 아빠의 완패를 인정할 수 밖에.

하지만 바보같은 열정은 잃지 말길.

 

<넘사벽, 엄마와 함께 찰칵 ^^>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푸른 들판'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달리는 뽀뇨를 보실 수 있어요.

뽀뇨와 엄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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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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