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을 심하게 삐었다.

 

마늘 만kg를 들어도 끄떡없던 손목인데,

한라봉 20kg 콘테이너를 수도 없이 들어도 끄덕없던 손목인데

왜 삐었는지 원인도 모르게 시큰시큰 아파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둘째를 안아서 번쩍 들어 천장까지 올리고

어깨위에 올려놓고 빙그르르 돌기도 하고

양팔로 그네도 태워주곤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첫째가

“아빠, 나도 해줘”라고 한다.

 

지난해만 해도 어렵지 않게 안을 수 있었던 첫째. 

둘째와 똑같이 해주려는데 몸무게의 ‘급’이 다름을 느끼고는

‘이상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첫째가 너무 커버린건가 아니면 내가 운동을 안 한건가?’

기분이 상한 첫째를 위해 다른 놀이를 준비했다.

둘째가 생기기전에는 많이 했던 놀이. ‘엄모소’.

바닥에 소처럼 엎드려서 ‘음메~’하고 울면 첫째가 내 등에 올라타고

나는 아이를 태운 채 바닥을 긴다.

 

둘째 앞에서 보란 듯이 아빠 등에 올라탄 첫째.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바닥을 짚었던 왼 손목이 찌릿하게 아파온다.

몇 걸음 나아가지도 못하고 스톱.

 

다른 아빠들도 그런가?

 

요즘 6살 첫째는 아빠에게 미식축구 선수처럼 달려들어서 아빠를 무섭게 한다.

아니 아프게 한다. 등 뒤에 매달려 목을 조르는 것은 다반사,

특히 밥 먹을 때 목조르기는 참기가 힘들 정도라 데시벨과 화가 올라간다.

좋아서 시도하는 과격한 신체 접촉에 안경다리도 하나 부러뜨렸다.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비싼 안경테가 부러지니 아내 목소리 데시벨도 올라갔다.

둘째를 집안에서 늘 안고 다니는 모습에 심퉁이 나서 그런지

첫째의 신체 접촉 강도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데 반해 이를 대하는 아빠의 반응은 반비례하며

독서나 퍼즐을 지향하게 되었다.

 

다시 손목이야기로 돌아와 나는 왜 손목을 삐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정기배송일도 아니고 수확시기에 마을 형님들을 도와드린 것도 아니었기에

손목을 심하게 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손목이 아파온지 이틀째 되는 날 결국 파스를 붙였다.

퉁퉁 부어올라 키보드 자판을 누르는 것이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유와는 별개로 둘째는 또 나의 오른팔에 안겨있고 첫째와는 씨름을 한다.

나는 아빠가 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어릴적 바라보던 아버지의 등판은 어찌나 넓었는지.

 

6살 딸아이와 놀다 손목을 다친 나는 아빠 역할 수행에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아빠는 슈퍼맨이 아니구나’.

또 한가지 느끼게 된 것이 있다면 365일 육아와 가사에 전념해야 하는 아내가 만약 다치게 된다면

내 생활까지도 마비가 되겠구나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별한 아빠는 바라지도 않지만 6살 딸아이와 몸놀이도 거뜬히 할 수 있도록

다시 108배를 시작해보아야 겠다.

 

아빠는 슈퍼맨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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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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