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지난 겨울방학 때 연 만들기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들었다. 갑자기 왠 연인가 싶었는데 아내가 동화 소재로도 재미 있을 것 같고 뽀뇨가 심심해 하니까 겸사겸사 신청했다고 했다. 한번은 가오리연에 각자의 그림을 그려서 집에 가져 왔길래 나도 그 수업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어릴 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연을 날리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서귀포 학생문화관에 갔더니 마침 아이들과 선생님, 부모 몇몇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멀리 전깃줄을 피해서 날려야 하는데 뽀뇨 연과 친구 연이 엉키기도 했고 또 어떤 연은 땅으로 고꾸라져서 잘 날지 못했다. 선생님은 연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가오리 연 옆의 지느러미(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가 떨어져서 그런거라며 친절하게도 풀로 다시 붙여주셨다.

연에 그림을 그리고 대나무살에 붙여 완성한 연을 몇 개 더 만들고 날리는 연습까지 하고서야 연 만들기 수업이 끝이 났다. 겨우내 바람도 잘 불어 연을 날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춥다는 핑계로 집에만 있었다. 벽에 걸려 있는 연을 보며 ‘언제나 한번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기회만 보다가 지난 주말에 연을 차에 실었다.

아파트가 많은 지역에선 연 날릴 곳이 없다. 우리 동네엔 그래도 공터가 많고 바람도 잘 불어서 장소 선택에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기왕에 연을 날리는 거 여기가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연을 손에 쥐었다. 표선해수욕장. 아마도 백사장의 폭이 한국에서 제일 길지 않을까 싶다. 바람이 불 때는 패러글라이딩과 수상보드를 결합한 레저스포츠도 즐겨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표선이다.

아이들은 모래장난 할 수 있다고 벌써 신이 났다. 바닷가에 사는 아이들이 지난 주에 이어 또 모래장난이라니..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또 다른 아이가 되어 표선도서관 태극기가 흔들리는 방향을 주시하며 연 날린 장소를 물색했다. 날이 따뜻하여 모래놀이 하는 아이들과 여행객들이 간혹 보였다.

해변 공연장에서 가오리연을 꺼내들고 실타래에서 실을 풀며 연을 날리는데 얼마가지 않아서 실이 엉켰다. 바람이 꽤 불어서 연을 높이 올리는건 어렵지 않았는데 조금 있으니 빙글빙글 돌다가 떨어지고, 겨우 띄우면 또 빙글빙글 돌다가 떨어졌다. 옆에서 보다 못한 뽀뇨가 “아빠, 연을 이렇게 잡아당겨서 위로 올려야지”하며 시범을 보였는데 내가 보기엔 별반차이가 없었다.

기대를 잔뜩하고 연을 날렸는데 흙바닥에 고꾸라지기를 여러 번, 하늘로 오른 연도 바람을 못 타서 시시하게 끝이 날 무렵 아이들이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해변 정중앙 모래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왠지 그쪽은 장애물이 없고 바람도 잘 탈것 같아서 두 번째 가오리연을 차에서 꺼내곤 아이들을 따라갔다. 애들은 뛰고, 아빠하고 부르고 하였지만 내 관심은 오직 연날리기 밖에 없었다.

연줄을 팔 길이 정도로 늘어트리고 걸으니 연이 마치 갈매기라도 된 듯 내 머리 위로 쫓아왔다. 몇 분을 걸어 도착한 바다에서 바람을 맞으며 실타래를 푸는데 연이 어찌나 잘 날던지. 왠지 살아있는 새처럼 잘 날았고 잘 길들여진 애완동물처럼 내 말을 잘 따랐다. ‘줄이 더 길다면 좋을텐데’라고 아쉬워하며 엉킨 줄을 풀어보았지만 딱 그만치였다.

어릴 적 생각이나 연 만들기 과정에 찾아갔고 춥다는 핑계로 몇 달을 기다린 끝에 최고의 연날리기 장소를 찾아갔지만 줄이 짧아 아쉽다는 감상으로 40대 남자의 연 날리기는 끝이 났다. 연 줄이 더 길다면 아니, 연이 더 커서 나를 하늘로 데려가 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TV에서 피터팬을 본 후에 즐거운 상상을 하며 거실에서 마당으로 펄쩍 하고 뛰었는데 날아오르기는 커녕 비오는 흙바닥에 내려앉았다. 꼬마 때 일인데 아직 나는 어른이 덜 되었나보다.

IMG_4578.PNG » 뽀뇨의 연날리기 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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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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