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금요일날 시간 되요? 놀이공원 신청해놨는데 같이가요”

며칠 전 아내가 놀이공원에 같이 가자며 스케줄을 물어봤다. 다행히 쉬는 날이라 아무 생각없이 “네, 가능해요”라고 말해두었다. 원래는 뽀뇨 초등학교 친구가족들과 함께 가기로 했는데 이미 다들 몇 번은 무료 입장을 해온터라 오늘은 우리 네 식구만 가기로 했다.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제주 유일 놀이공원인데 겨울이기도 하고 홍보도 해야 되어서 무료예약을 받고 있었고 우린 추운 1월을 피해 날이 풀리는 2월에 가기로 한 것이다. 아침부터 빵과 김밥을 배불리 먹고 차를 30분 달려 도착한 평일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워낙 넓은 놀이 공원인데 사람들 몰리기 전에 놀이 기구부터 몰아서 타자고 아내와 계획을 짠 후에 우린 쫓기듯 입장했다. 첫 번째로 탄 놀이기구는 ‘회전목마’. 20대 때는 절대로 타지 않았던 놀이기구인데 애 아빠가 되다보니 쪽팔림도 없는지 제일 먼저 발길이 갔다. 유현이가 아직 어려서 내 앞에 태우고 아내와 뽀뇨가 옆에 타니 우린 ‘남 부러울게 없는 기사단’이었다. 디즈니 목마가 아닌 라바 캐릭터 목마여서 아쉬웠지만 우리 가족 4명이 함께 탄 유일한 놀이 기구라 나중에 한번 더 탔다.

다음은 ‘익스프레스’. 말이 익스프레스지 통일호 열차보다 더 느렸고 구간도 짧았다. 하지만 제주에 기차가 없어서 ‘열차 침목’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제주에 기차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니 노면전차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생각을 해보지만 제주가 점점 ‘교통지옥’이 되고 있기에 그냥 추억만 떠올렸다.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기차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놀이공원이 크지 않다보니 다음 놀이기구를 타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플라잉 기구’. 에버랜드, 롯데월드에서 쳐다보지도 않았고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그 기구를 나는 뽀뇨와 함께 탔다. 가끔 이런 류의 기구들은 가동 중 공중에서 멈춰서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을 몇 시간 가둬두는 것으로 유명한데 나도 뉴스에서나 보던 그것을 처음 탄 것이다. 평생 그런 거 타지 않고 살아왔는데 “아빠, 같이 타자”며 이끄는 뽀뇨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나는 겁이 많은 촌놈이다. 고향 마산창원엔 놀이공원이 없었다. 서울에 와서야 처음으로 놀이공원을 가보았고 놀이기구를 타보았다. 대학 신입생때 심심해서 무작정 동기들과 인천 월미도를 갔고 거기서 처음으로 바이킹을 탔다. 그 이후로 나는 죽기보다 바이킹 타는 걸 싫어한다. 처음 탄 놀이기구가 바이킹, 그것도 ‘월미도 바이킹’이라니 나는 놀이 기구와 전생에 악연이 있었나 보다. 앞으로 뒤로 쏠리는 속도감도 멀미나게 하지만 월미도 바이킹의 치명적인 장점(?)은 안전바와 무릎사이 공간이 남아서 자칫하면 몸이 빠지지 않을까 공포에 떨게 한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살려고’ 죽어라 안전바를 무릎쪽으로 누르며 소리를 질렀는데 운전요원 아저씨는 그게 ‘신나서’ 지르는 환호성인줄 알고 더 태웠다나 뭐라나. 하여튼 그 이후 나는 놀이기구 주위에 얼씬도 않았고 그건 아이들이나 타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플라잉 기구’는 ‘월미도 바이킹’의 추억을 소환했다. 멀미가 나서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는데 아내와 유현이는 웃으며 나를 놀리는 듯 보고 있었고, 기구를 위 아래로 움직여서 탑승자들을 더 신나게 한다는 ‘조정레버’를 나는 차마 누르지 못하고 손에 땀만 쥐었다. ‘손에 땀을 쥐었던’ 플라잉 기구도 끝이 나고 우린 좀 더 쎈 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뽀뇨와 나. 아내는 보고만 있어도 멀미난다고 했고 유현이는 키 120센치 이하로 아예 탑승할 수 없었다. 평소엔 겁 많은 뽀뇨가 이날만은 ‘용자’가 되어 나를 이끌었다.

 

‘바이킹’을 연상시켰던 ‘스핀앤 범프’. 놀이기구들의 이름과 얼굴, 기능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딱 한가지로 변함이 없다. 바로 어른과 아이들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놀이기구를 타고 우는 상이면 ‘어른’, 웃는 상이면 ‘아이’. 놀이기구를 탑승하려는데 바로 내 앞에서 대기선이 쳐질 때는 더 곤욕이다. 어른들의 놀란 상과 비명소리를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로 내 뒷줄에선 한 엄마가 아이를 놀이기구에 태우려고 계속 설득 중이었다. “하나도 안 무서워. 저것봐. 다들 좋아하는 표정이잖아”. 어떤 집은 엄마가 놀이기구 태우려 애쓰는데 우리 집은 아빠가 아이 손에 이끌려 놀이기구를 타는구나. 그렇게 나는 ‘스핀앤 범프’를 탔고 기왕에 타는 거 소리라도 힘껏 질러보자고 함성을 질렀는데 이번엔 운전요원 아가씨가 내 함성을 ‘환호성’으로 잘 못 듣고 바로 전 탈 때 보다 두 배를 더 태웠다.

 

고문기구 같은 놀이기구를 타며 하얗게 불태우는 동안 뽀뇨도 무서웠는지 눈을 감고 탔고 우린 합의하에 청룡열차 등 나머지 놀이기구를 건너뛰기로 했다. 아빠는 체력이 방전되어서 앉을 곳을 찼는데 뽀뇨는 유현이랑 놀이터에서 얼마나 신나게 뛰는지..

나는 TV에서 놀이기구 타며 울상을 짓는 ‘김종민’을 보며 뭘 그렇게 엄살을 떠나 했는데 직접 타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왜 엄마들이 그룹으로 놀이공원에 가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아빠들이 있다면 미리 알려주겠다. 놀이공원 따라간다고 할 때 아이들 데려가는 건 좋다. 그런데 놀이기구 탈 짝을 꼭 만들어서 놀이공원에 가라. 그렇지 않으면 ‘우는 김종민’이 되어 집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IMG_4229.JPG » 스핀앤범프를 타는 나와 뽀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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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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