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로 태어난 적이 없다.

 

어찌보면 부모로 길러지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사회에서 인정하는 부모가 되었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아이가 태어날 때도 내가 육아책을 내었을 때도 아닌

며칠전 첫째 뽀뇨의 재롱잔치에 참석해서였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장면 중에 어린이집 재롱잔치에 참석을 못해

가슴 아파하는 주인공 이야기도 나오고,

사회생활이 어렵지만 아이 재롱잔치를 보며 다 컸구나 싶어

눈물을 훔치는 부모 이야기도 나온다.

나 또한 TV 속 한 장면을 떠올리며 ‘나도 이제 부모가 된 건가’라는 실감이 전해졌다.

 

아이가 몇 달 전부터 연습을 해왔는데

나는 최근에야 아이가 부르는 노래가 재롱잔치 때 공연곡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공연 당일 아이가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아내가 뽀뇨에게 화장을 해주고서야

오늘이 우리 가족의 일생일대의 날이구나를 직감했다.

 

큰 아이의 경험이 온전히 나와 아내의 첫 경험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공연장에 가자마자 우리는 이별을 했고

행사순서지를 보며 언제 뽀뇨가 나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3살 꼬마들이 무대에 올라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엄마를 찾으며 우는 것을 보며 웃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7살 언니오빠들이 공연할 때는 집단적인 체조 느낌이 나서 보기가 좋지 않았다.

그 아이의 부모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몇 달간 율동 배우고 대형 만들고 최종 연습까지 하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쓰럽기까지 했다.

 

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어 아주 어릴적 기억은 없지만

초등시절 매스게임이며 합주등의 집단적 경험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당시엔 때약볕에서 북을 치며 연습을 주구장창 했는데

과연 학부모들이 그렇게 고생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박수를 칠까 싶다.

 

3살 꼬꼬마와 7살 언니오빠의 공연이 끝이 나고

곧 뽀뇨의 반 아이들이 올라오는 순간 나는 휴대폰을 준비했다.

늘상 들고 다니던 카메라를 이 중요한때 빠뜨리는 실수라니..

무대에 아이가 두리번거리며 올라가 자리를 잡는데

갑자기 숫기 하나 없는 아내가 옆에서 “홍해솔, 파이팅”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순간 깜짝 놀랐다.

 

캄캄한 무대로부터 정적을 깨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뽀뇨는 고개를 크게 흔들며 박자에 맞춰 템버린을 연주했다.

하는 것이라고는 템버린을 양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흔드는 것이 다였는데

고개 흔들기는 베테랑 바이올린 연주자의 비장함이 느껴졌다.

 

맨 앞자리 정중앙에 앉아 웃으며 북을 두드리는 뽀뇨 친구를 보며

뽀뇨는 왜 공연내내 웃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수 백명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몇 개월 동안 연습해오던 것에

혹여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이 대다수 아이들 표정에서 느껴졌다.

 

재롱잔치 자체가 워낙에 어린이집과 가족 이벤트가 되다보니

아이들을 덜 힘들게 하면서도 부모들이 더 뿌듯함을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겠지만

다음날 몸살로 아픈 아이들을 볼 때면 부모 마음이 편치는 않다.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성취감을 주며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경험을 주는 것도 좋지만

어린 나이에 많은 율동을 반복적으로 익혀야 하는게

과연 아이들 행복에 좋은 일인가도 생각해보아야 할 듯하다.

 

공연이 끝나 예쁘게 차려입고 춤춘다고 노력한 뽀뇨를 힘껏 안아주었다.

한뼘은 더 커있는듯, 아니 내 아이가 맞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몸빼바지 입고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던 아빠들을 보며

내년에 내게 제의가 들어온다면 과연 용기를 낼수 있을까란 상상을 해본다.

 ‘샤방샤방 홍해솔’ 피켓까지 만들어간 아내는

이번 재롱잔치에서 경품을 두 개나 타서 신이 났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맛있는 족발로 하루를 마감했다.

 

나는 부모로 태어난 적이 없다.

하루 하루 부모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뽀뇨처럼 나또한 매일매일이 아빠로서 새롭다.

아마 둘째 재롱잔치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린이집 잔치.jpg 샤방해솔.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블로그 : http://plug.hani.co.kr/pponyopapa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2695/148/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1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맘에 완패한 아빠, 그래도 육아대디 만한 남편없다 - 토크배틀 TV프로그램 출연기 imagefile [6] 홍창욱 2012-01-31 58248
1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도 별수 없다 imagefile 홍창욱 2012-01-25 17912
1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아이 키우며 제일 힘든거? imagefile [4] 홍창욱 2012-01-16 18404
1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는 외계인? imagefile [4] 홍창욱 2012-01-09 19625
1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신년특집선물] 구멍양말 콩쥐 imagefile [4] 홍창욱 2012-01-03 17739
1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기막혔던 뽀뇨의 첫 이사 imagefile [2] 홍창욱 2011-12-26 60958
1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왜 하필 왼손잡이로 태어났을까 imagefile [7] 홍창욱 2011-12-20 19416
10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배시시 웃음의 정체 imagefile [4] 홍창욱 2011-12-12 17967
9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의 두 얼굴 imagefile [22] 홍창욱 2011-12-05 18583
8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파파의 절규, 둘째는 안돼 imagefile [2] 홍창욱 2011-11-29 28228
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베이비시터 되다 - 잘키운 이웃 아저씨, 열 아주머니 안 부럽다? imagefile [4] 홍창욱 2011-11-21 20927
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안 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imagefile [8] 홍창욱 2011-11-14 50459
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쭈쭈 없는 아빠의 설움 imagefile 홍창욱 2011-11-07 55389
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육아의 적들...답이 어디에? imagefile [4] 홍창욱 2011-11-01 19384
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표 돌잔치? 이제 대세는 아빠표 돌잔치다 imagefile [2] 홍창욱 2011-10-25 54700
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뽀뇨가 커서 아빠를 원망하진 않을까? imagefile 홍창욱 2011-10-18 29190
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전업육아 다이어리를 열며 imagefile [8] 홍창욱 2011-10-12 75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