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2때 일 것이다.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영상물을 보았다.
성행위 자체도 그렇지만 스토리도 놀라웠고 흥미진진했다.
그 전에 사촌형 집에서 시티헌터와 같은 만화책을 본적이 있고
인터넷으로 야한 사진을 수도 없이 본적이 있지만 이보다 강력한 것은 없었다.
고교 진학후 자연스레 동영상을 찾으러 마산역 앞 리어커 아저씨를 찾았고
교복을 입은 채로 비디오 대여점에서 19금 영화를 빌리곤 했다.
그렇게 25년째 봐오고 있는 야동.
나는 결혼한 후에 야동을 안 보게 될 줄 알았다.
행위와는 다른 개인 취향의 문제일수 있겠다고 인정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쿨’하게 이해해주는 아내가 있어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는데
(아내의 속마음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부부생활과는 별개로 야동이 가져오는 내적 갈등과 정서적 영향에 대해 아직도 고민 중이다.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오랜 기간 생각할 정도라면 약간의 중독일수 있을 텐데
나는 긍정과 부정 속에서 많은 갈등의 세월을 보냈다.
긍정이라면 중학교 체육선생님이 보여주었던 동영상과 적당한 자위예찬론이었는데
나는 이 수업 이후 처음으로 자위라는 것을 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야동은 심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긴장을 이완시키기에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라는 생각도 보태진다.
끊어야 된다는 것은 야동 이후 남는 죄책감 때문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딱 이러할 때 어울린다.
학교 다닐 때는 야동 감상이 나의 육체 및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결국에는 대학진학을 망치지 않을까 항상 마음을 조려 왔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내 눈치도 보게 되고
어떤 때는 내가 아이 둘의 아빠인데 이런 걸 봐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통제나 판단의 문제를 떠나
이제 ‘아빠’라는 책임이 야동 감상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내게 야동이 ‘혼자 지내는 남자만의 공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동안 구축해왔던 내 남성성의 초라한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 모습이 찬란한 히말라야 등산이거나 캠핑이 아니라 ‘야동’이라는데 있다.
둘째를 낳은 이후 부부 관계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하는 횟수가 줄고 관계가 줄다보니
실제 성생활과 소비되는 영상 간의 간극이 커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아이가 커가고 나이가 들수록
‘혼자 지내는 남자만의 공간’이 확보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데
작은 행복 중에 하나가 목욕이었다.
작은 욕실에 아주 뜨거운 물을 틀고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며 심신이 이완되는 짧은 5분의 시간.
어찌 보면 야동의 시간 혹은 자위의 시간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 야동 감상,
대한민국 아빠들 중에 얼마나 보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대다수 아빠들은 ‘혼자 지내는 남자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듯 싶다.
‘야동’에 대한 죄책감까지 ‘아빠의 역할’을 들먹여야 하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완전한 대한민국 아빠가 된 듯 하다.
퍽 유쾌하지는 않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 또한 요즘 아빠의 몫이 아닐까.
<동굴로 들어가 마늘을 먹는다면 과연 사람이 될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