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번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당연히 산타의 존재도, 커다란 양말도 본 적이 없다.
워낙에 시골마을이기도 하였고 집안형편도 크게 넉넉하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부모님을 이해해본다.
나는 크리스챤은 아니지만 내 아이들이 ‘산타’의 존재를 믿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선물을 모두에게 나눠줘. 말도 안돼’,
‘아파트에 굴뚝이 어디 있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기 싫다.
세상에는 아직 기적이 많고 그 기적들은 아주 작은 믿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부모들은 ‘산타’를 통해 아이들을 회유하고 질책하게 되는데 그 때가 되면 12월이 다되었구나 싶다.
며칠 전 뽀뇨에게 “오늘 산타할아버지와 통화했는데 뽀뇨가 아빠 말 안 듣는다고 얘기했어”라고 이야기하며 뒤돌아서서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있는게 아닐까? 아니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 뽀뇨가 받고 싶은 선물이 뭔지 아내도 나도 묻게 되는데
엊그제는 어린이집에서 산타복장을 하고 선물을 전달할 예정이라며 집에서 선물을 준비해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자기야, 퇴근할 때 대형마트에 가서 ‘OO북’ 사오세요. 엊그제 뽀뇨가 그거 갖고 싶다고 했어요. 녹색으로 사오세요. 가격은 5만원 정도 할거에요”
아내와 나는 그날 밤 뽀뇨가 쉽게 실증내지 않을까,
‘OO북’은 유아교육용인데 과연 효용이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하다 결론을 어렵사리 내렸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해줍시다. 그래야 뽀뇨에게 기억이 많이 남을 거에요.”
조카 성은이가 어렸을 때 위인전을 생일선물로 주었다가 울며 이불속으로 들어갔던 기억과 뽀뇨가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동시에 스쳐갔다.
오늘 마트에 들러 아내에게 한번 더 확인하게 했다.
“뽀뇨, 엄마는 산타할아버지랑 통화하는 사이야. 뽀뇨,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 갖고 싶은지 물어보는데”,
“엄마, 나 산타할아버지 통화하게 바꿔줘”,
“(....) 어, 지금은 할아버지가 바빠서 통화하기 어렵데”,
“나 OO북 갖고 싶어”.
5만원을 현금 인출기에서 뽑은 나는 매대에서 6만원이 넘는 가격표를 보고는 다시 돈을 더 뽑았다.
매대에 수 없이 쌓인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며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내키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어린이집에서 산타 선물받기’였다.
‘아이들이 선물을 그 자리에서 개봉하게 될텐데 서로 비교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아이들 선물들이 포장 및 규격을 키우는 건 친구들과 비교하게 만드려는 완구업체의 상술이 아닐까’,
‘아이가 당장 좋아하는 것을 사주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가’,
‘집안 형편이 어려운 부모가 아이에게 선물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신경이 쓰일까’에서 출발하다보니
‘지난해에 산타복장을 하고 뽀뇨에게 선물을 전해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결국 산타의 존재를 들통나게 될까봐 그만뒀지.
어린이집 총무님이 산타분장을 할 텐데 아이들이 알아채지 않을까’,
‘그것보다 부모들이 아이 선물 준비하느라 신경 쓰게 하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네.
아내에게 24일 뽀뇨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자라고 하면 애보기 힘들다고 하지 않을까’로 생각이 뻗어나가 있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니
“뽀뇨의 동심을 지켜주는게 좋을 거 같아요. 24일날 내가 뽀뇨 볼게요. 보내지 맙시다”라고 동의해 주었다.
나는 뽀뇨가 산타를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음속에서 살아서 평생 함께 해주는 산타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 선물은 뽀뇨가 좋아하는 분홍색 띠로 이쁘게 포장해서 베란다로 들어갔다.
25일 아침, 뽀뇨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고는 내년에는 꼭 산타할아버지를 만날 거라고 얘기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