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잠들기 십분 전 독서가 왜 중요한지 알 것 같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내면을 끌어내려면 매개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책이 한다.

 

몇 일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까마귀가 이를 이겨내고 리더가 되는 이야기인

<먹구름 까마귀>를 뽀뇨의 마음을 읽을 의도로 꺼내들었다.

 

“뽀뇨, 먹구름 까마귀 이야기 재미있지? 뽀뇨는 어린이집에 친구들이랑 잘 지내?”

 

혹시나 하고 친구관계를 독서 후 끄집어내었는데

뽀뇨가 좋아하는 한 아이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얘길 들었다.

안되겠다 싶어 이야기 중에 나온 친구들 이름과 싫어한다고 하는 아이 이름을 메모해두었다.

나중에 어린이집 부모상담이 있을 때 물어보거나 뽀뇨에게 그 때 그때 물어볼 생각에서였다.

친한 친구 : 지원 윤호 예나

덜한 친구(원래는 싫어하는 친구라 적었다가 고쳤다) : 태연(렛잇고옷)

“나는 렛잇고 옷이 없어서 슬퍼요”

나는 태연이가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뽀뇨가 나에게 던진 한마디에 뽀뇨 어린이집 첫 등원한 날

샤랄라 옷을 입은 한 아이가 그려졌고 그 아이 이름에 ‘렛잇고 옷’이라고 메모해두었다.

하지만 메모후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조금 다른 의도를 가지고 겁 많은 아이 이야기인<라치와 사자>를 꺼내들었다.

빨간 사자가 아이를 용감하게 만든다는 얘긴데

결국 이야기가 어린이집의 교우관계로 흘렀다.

왜 그 아이가 내 아이를 싫어할까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려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그 아이가 자주 입는 "겨울왕국 드레스"와 내 아이가 입고 간 옷 때문에

 "남자 옷 입고 왔다"고 놀림을 받았다는 얘기에 이르고 만다.

 

아차!

 

나는 아이에게 샤랄라 드레스를 사준 적이 없다.

아니 옷 한 벌 제대로 사준 적이 없다.

내가 내 옷을 산적이 평생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이는 내 철학이지 아이가 원하는 삶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니섹스를 지향하기도 하고 성편향이 향후 아이에 미칠 영향도 싫지만

"겨울왕국 드레스"가 갖고 싶은 아이마음을 모른척하면 안되겠다 싶다.

아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왜 내 엄마는 다른 건 다 까먹어도 내 친구들 이름은 기억하는지 알 것 같고

왜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그토록 심한지도 백퍼 공감된다.

하지만 아이 마음속에 들어가되 아이 마음과 동화되어선 안된다고 마음먹었다.

아이의 마음을 읽되 아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며칠 뒤 결국 아내와 대형마트를 갔다.

뽀뇨가 좋아하는 분홍색 드레스를 몇 벌 샀다.

얼마전에 내가 올린 ‘렛잇고 옷에 대한 사연’을 페북에서 읽었는지 누나들이 뽀뇨에게 고급진 드레스를 새 신발과 함께 보내주었다.

 

다음 날 어린이집에 뽀뇨를 늦게 등원시킬 일이 있었다.

고모들이 사준 고급진 옷과 신발을 신은 뽀뇨를 데리고 친구들이 놀고 있는 ‘탐구반’에 들어갔다.

“안녕, 얘들아. 난 뽀뇨 아빠야. 지난 번에 봤지?”

 

라고 하니 다들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데 그중 뽀뇨와 친하다는 예나가 뽀뇨를 안으며 한마디 한다.

 

 “뽀뇨, 오늘 이쁜 옷 입고 왔네”

 

순간 살짝 당황했지만 내색 않고

 

 “아저씨는 친구들 이름 다 안다.”,

 

“어떻게 다 알아요?”,

 

“어.. 다 알아. 그지 태연아”하니

 

돌아앉아 있던 아이가 고개를 잠시 돌려 바라보았다.

(나는 태연이를 보며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여러분 안녕, 아저씨 다음에 또 올게요”

며칠 동안 나는 내 아이를 싫어하는 한 아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아니 내 아이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고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커가며 예쁘고 좋은 모습만 글로 쓰고 싶은건 내 욕심이겠지.

 

까마귀.jpg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블로그 : http://plug.hani.co.kr/pponyopapa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292827/bb2/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수
1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맘에 완패한 아빠, 그래도 육아대디 만한 남편없다 - 토크배틀 TV프로그램 출연기 imagefile [6] 홍창욱 2012-01-31 58488
1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도 별수 없다 imagefile 홍창욱 2012-01-25 17943
1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아이 키우며 제일 힘든거? imagefile [4] 홍창욱 2012-01-16 18423
1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는 외계인? imagefile [4] 홍창욱 2012-01-09 19641
1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신년특집선물] 구멍양말 콩쥐 imagefile [4] 홍창욱 2012-01-03 17756
1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기막혔던 뽀뇨의 첫 이사 imagefile [2] 홍창욱 2011-12-26 61226
1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왜 하필 왼손잡이로 태어났을까 imagefile [7] 홍창욱 2011-12-20 19431
10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배시시 웃음의 정체 imagefile [4] 홍창욱 2011-12-12 17982
9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의 두 얼굴 imagefile [22] 홍창욱 2011-12-05 18605
8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파파의 절규, 둘째는 안돼 imagefile [2] 홍창욱 2011-11-29 28244
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베이비시터 되다 - 잘키운 이웃 아저씨, 열 아주머니 안 부럽다? imagefile [4] 홍창욱 2011-11-21 20947
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안 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imagefile [8] 홍창욱 2011-11-14 50698
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쭈쭈 없는 아빠의 설움 imagefile 홍창욱 2011-11-07 55623
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육아의 적들...답이 어디에? imagefile [4] 홍창욱 2011-11-01 19394
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표 돌잔치? 이제 대세는 아빠표 돌잔치다 imagefile [2] 홍창욱 2011-10-25 54887
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뽀뇨가 커서 아빠를 원망하진 않을까? imagefile 홍창욱 2011-10-18 29297
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전업육아 다이어리를 열며 imagefile [8] 홍창욱 2011-10-12 76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