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태풍이 지나갔다.
독감 예방접종도 있어서 어린이집을 건너 뛰고
오늘은 아빠와 엄마, 뽀뇨 세 식구가 실평수 15평도 안되는 좁은 아파트에서
하루 종일 보냈다.
엄마가 맛있는 김밥도 만들고 책도 함께 읽고
뽀뇨가 좋아하는 빼꼼도 보았지만
하루가 왜이리도 긴 것인지.
평소 같았으면 뽀뇨를 데리고 어디든 갔을텐데
태풍이 우리를 집안으로 가두었다.
제주에 살며 차로 5분이면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갈 수 있다보니
아파트에 사는 것이 갑갑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하루 종일 뽀뇨와 실내에서 보내다 보니
쓰레기 버리러 나오며 바라본 아파트 전경이 왠지 케이지 닭장같이 답답하게만 보인다.
몸이 제법 커지고 움직임도 빨라지다 보니 집이 좁아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옛날에는 단칸방에 어떻게 몇 명의 식구가 살았는지 싶고
아이가 크면 더 큰 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당연한 것이라 느끼게 된다.
이게 아빠가 되는 건지 아니면 철이 드는 건지 알수는 없지만
오늘 처음으로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면 뽀뇨가 얼마나 좋아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모 웹진에 올라와 있는 평범한 시민의 집짓기에 대한 글을 보는데
비용은 왜 그렇게 많이 들며 짓고 나면 비싸게 지었다고 왜들 그렇게 후회를 하는지.
더 평범한 소심아빠는 엄두도 못낼 정도다.
시골 마을에 마당은 기본인데다가 텃밭까지 100평이 넘는 집에서 자라다보니
아파트에서 나서 자라는 것이 어떨까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사실 어릴 때는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집앞 놀이터에서, 할머니집 마당에서, 동네앞 들판과 뒷동산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남의 집밥은 또 얼마나 맛이 있던지.
휴일을 빼고는 어린이집과 집, 간혹 동네 놀이터 정도만 가게 되다보니
뽀뇨는 늘 엄마, 아빠와 아파트 입구에서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아빠, 나 집에 들어 가기 싫어”, “뽀뇨, 집에 가서 맛있는거 먹자”,
“아니야, 우리 소풍 가자”, “뽀뇨, 소풍 가기에는 조금 늦었어요”,
“아니야, 아빠, 나 집에 안갈래”.
아침에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 봉고에 태우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다시 5시에 만나기 까지 우리는 서로를 잠시 잊고 지내긴 하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는 ‘집’이라는 공간, 특히 너무나 획일적인 아파트,
그것도 세 들어 사는 곳에서의 한계를 조금은 느끼게 된다.
그림을 그리고, 아빠 등에 올라가 타고 놀고, 책을 읽고, 먹을 것을 만들어 나눠 먹고 하는
집에서의 일과는 따뜻한 느낌이지만 조금은 지루해져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래서 휴일이면 아이와 함께 바닷바람도 쐬고 공원에 가서 뛰어 놀고
여름 바다의 아름다운 노을을 그리워하게 되고 하나 보다.
내일은 공휴일이지만 뽀뇨를 데리고 마을에 가게 된다.
나에게는 일터이고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아이와 함께 오름과 바다, 구름을 볼 수 있고 마을에서 흙을 밟고 ‘소’도 구경할 수 있으니
작은 일상에 조그마한 변화가 아닐까?
창원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에 자주 갈 수 없지만
할머니의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시골에서 일하고 있음이 나와 내 아이에게 큰 행운이다.
<사진설명 : 비오는 날, 제주조랑말박물관 옥상전망대에서. 차에서 쉬를 하고 기저귀까지 차고는 친구 유담이랑
어찌나 잘 뛰어노는지.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4살 뽀뇨를 보며 그 에너지에 맞는 공간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