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적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내 나이 29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일찍 돌아가신 것은 아니지만
막 입대한 시기인지라 충격이 상대적으로 심하였다.
아버지가 사라지게 되었을 때의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장 와닿는 표현이라면 “그 다음이 내가 되겠구나”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죽음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어떻게 안정시켜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죽음에 관한 책을 3권 사서 읽으며
아버지를 핑계로 나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이해되는 것과 달리 죽음에 대한 살떨림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아버지, 먼 친척, 친구 아버지, 친구 할 것 없이
5년 사이에 장례식장만 수도 없이 다녔다.
친구의 자살이 있었고 또 다른 여자친구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꽃다운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 당시 나는 은평구의 뉴타운이 들어설 택지에 있었던 공동묘지의 인골들을
하나 둘 정리하는 작업을 하였다.
수십 구의 뼈에 묻어 있는 먼지와 흙을 털어내며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을 때
나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는 어떠하였을까?
그리고 나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제주로 내려왔다.
일련의 사건들이 어떤 영향을 미친 지는 알수 없으나 나
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가까이 있으며, 죽음이 두려운 만큼 삶이 절실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요 며칠 봄 햇살이 화창한 날, 며칠 뒤에 있을 아버지 제사를 떠올리게 되었고
자연스레 죽음이라는 것을 곱씹어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듯 나또한 죽음을 맞이할 터인데
나는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정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이러다 보니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내 딸 또한 자연스럽게 생겨났듯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왠 쓸데 없는 잡생각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부모가 자식보다 먼저 가는 것이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보고
간디도, 예수도, 김구선생도 모두 죽었으니 나또한 사라짐이 합당한 것이라 마음을 다스려 본다.
오늘 저녁은 사람들을 만나 회 한 접시를 먹었다.
방금 전까지 펄떡 펄떡 뛰었을 생명체를 앞에도 두고
농담을 하며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살점을 집어 삼키듯이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나 흔한 일상이고
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또 삶이다라는 것으로 며칠간의 잡생각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