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온지 무려 22년만에 '내 집'이라는 것에 대한 설레임이 생겼다.

아내가 결혼전부터 부어온 청약통장,

7년이 지났으니 돈도 제법 쌓였는데 평생에 한번 뿐이라는 그 통장을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그 기회가 안 올줄 알았다.

서울이 아니니 집값이 저렴하지 않을까 했는데

제주에서 괜찮은 집을 살려고 하니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결국 청약통장을 걸고 우리는 서귀포 혁신도시에 분양신청을 하게 되었다.

결혼 3년이 지났으니 신혼부부 특별분양은 2순위로 밀리고

일반분양이 있는데 경쟁률이 셀까하며 마음조리며 며칠 밤을 기다렸다.

 

아내는 많은 사람들이 제주시로 몰려드는 상황에서

서귀포로 내려가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하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남편의 일터인 무릉리에 가까워진다는 것에 쉽게 동의해주었다.

드디어 청약발표가 있는 날.

마을에 일을 하러가며 일부러 아내에게 확인전화를 하지 않았다.

'되겠지'라는 자신감과 함께 기분 좋은 소식일수록 내색을 덜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오전 9시 32분, 드디어 아내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우리아파트당첨되쌈"

당연히 될거라 생각은 했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눌려고 하는데 왠지 목소리가 쳐져있다.

 

"수미씨,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우리 1층이야 ㅠㅠ"

 

1층.

아파트를 내놓으면 가장 싸게 팔린다는 1층,

사생활이 거의 노출되다보니 여름에도 창문을 제대로 열수 없고 방범창 비용이 든다는 그 1층.

아내가 한마디 더 이었다.

 

"인생에 되는 일이 없냐"

7년동안 청약통장에 상당히 많은 금액(점수)이 모였고

우리 두 부부의 공식수입이 청약순위에서 거의 지붕뚫고 하이킥수준이라 1순위는 따논 당상이었는데,

평생에 한번 쓸수 있는 재테크 카드를 1층으로 날렸다고 생각하니 억울할 수 밖에..

 

소문 안낼려고 했는데 마을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모두 1층 당첨소식을 얘기하고

저녁 8시 46분경,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2:1의 경쟁율을 뚫고 임대아파트, 무려 1층이나 당첨되었다. 아내는 멘붕상태지만 뭐 어떤가?

 쉰살에 17평 아파트를 갖게 되었으니 ^^v"

 

이어지는 35명의 좋아요와 17개의 댓글.

 

"남들이 뭐라할지 몰라도 장기임대아파트로 내집마련의 꿈을 대신하고 여행이나 다녔음 좋겠다라고 생각한 저로서는 매우 부럽습니다^^",

"대박!!! 2;1 숫자놀음하는 세상이라 감을 잊었다면 모를까 엄청난 경쟁이죠 형 축하해요",

"무려 일층... 떨어져도 안다쳐서 좋겠다. 엘리베이터 안기다려 좋겠다.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얼굴 시도때도없이 마주칠수 있어 좋겠다... 축하한다.",

"일층이 행복하다는걸 곧 느낄겁니다".

그리고 밤 11시 41분에 올라온 아내의 페북글.

 

"페북을 보니 남푠이 나이50 에 17평 아파트 1층을 소유하게 될 예정임을 자랑하였다. 음. 조금 슬프다. 이렇게 없이 살아도 되는거임?"

생각해보니 뽀뇨 옷하나, 신발 한켤레 새것을 사준 적 없이 돈을 모았고

서울 살때는 휴일에 알바, 제주에서도 아이돌보고 재택근무하며 4~5가지는 기본으로 일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무슨 집값은 억억하고 올랐는지..

 

1층이라 다소 의기소침하긴 했지만 신청서류 접수하고 계약금을 내러 모델하우스에 갈때는 아내나 나나 기분이 좋았다.

직원아저씨가 아파트모델을 보며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1층이어도 괜찮아요. 저기 사선으로 보면요. 바다도 보일거에요. 높은 나무만 없으면.."

 

아저씨의 위로(?)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지만 뽀뇨와 몇 명일지 모르는 동생이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길거란 사실에

나또한 아이마냥 기분이 좋다.

서귀포에도 내려왔겠다 아내, 뽀뇨와 함께 천지연폭포도 구경하고 올레시장도 둘러보았다.

천지연폭포 윗길로 드라이브하며 몇 년뒤에는 우리나라 관광의 최고명소인 서귀포시민이 될거니 자긍심을 갖자고 아내를 위로했다.

 

<10*동 10*호. 우리 부부가 절대 잊지 못할 숫자다. 첫번째 아파트이자 1층이라 ^^ 과연 사선으로 바다가 보일까?>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여러분을 서귀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뽀뇨가 이끌어갈겁니다. ^^

임대아파트.jpg

 

<간만에 아내도 뽀뇨와 활짝 웃었다. 아내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하여 반쪽만 노출하는 센쓰 ㅋ@천지연폭포>

 

엄마와 함께.jpg

 

<공원에서 신이난 뽀뇨. 뽀뇨와 함께라면 어디든 두렵지 않다. 1층이 다 모야. 지하1층도 괘안아~~ ㅋ>

침순이 뽀뇨.jpg

 

<뽀뇨데리고 여기저기 다니기 너무 힘들다. 결국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모닥치기로 마무리>

모닥치기.jpg

우리,블로그밖에서도만나요 ^^

트위터 + 페이스북 + 유튜브 +핀터레스트 + 메일로받아보기 + 팟캐스트구독 + 포스퀘어 + 뽀뇨아빠 소개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블로그 : http://plug.hani.co.kr/pponyopapa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71162/b55/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맘에 완패한 아빠, 그래도 육아대디 만한 남편없다 - 토크배틀 TV프로그램 출연기 imagefile [6] 홍창욱 2012-01-31 58057
1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도 별수 없다 imagefile 홍창욱 2012-01-25 17801
1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아이 키우며 제일 힘든거? imagefile [4] 홍창욱 2012-01-16 18319
1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는 외계인? imagefile [4] 홍창욱 2012-01-09 19542
1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신년특집선물] 구멍양말 콩쥐 imagefile [4] 홍창욱 2012-01-03 17642
1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기막혔던 뽀뇨의 첫 이사 imagefile [2] 홍창욱 2011-12-26 60774
1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왜 하필 왼손잡이로 태어났을까 imagefile [7] 홍창욱 2011-12-20 19334
10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배시시 웃음의 정체 imagefile [4] 홍창욱 2011-12-12 17863
9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의 두 얼굴 imagefile [22] 홍창욱 2011-12-05 18487
8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파파의 절규, 둘째는 안돼 imagefile [2] 홍창욱 2011-11-29 28121
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베이비시터 되다 - 잘키운 이웃 아저씨, 열 아주머니 안 부럽다? imagefile [4] 홍창욱 2011-11-21 20825
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안 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imagefile [8] 홍창욱 2011-11-14 50246
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쭈쭈 없는 아빠의 설움 imagefile 홍창욱 2011-11-07 55176
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육아의 적들...답이 어디에? imagefile [4] 홍창욱 2011-11-01 19296
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표 돌잔치? 이제 대세는 아빠표 돌잔치다 imagefile [2] 홍창욱 2011-10-25 54477
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뽀뇨가 커서 아빠를 원망하진 않을까? imagefile 홍창욱 2011-10-18 29044
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전업육아 다이어리를 열며 imagefile [8] 홍창욱 2011-10-12 75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