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장에서 나오는 농산물 중에 가장 비싼 것이 달래가 아닐까 싶다.
제주에선 달래를 꿩마농(꿩마늘)이라고 하는데 뿌리의 쌉살한 맛과 향이 제법이다.
된장에 넣어 먹어도 좋고 밥에 고추장 넣고 비벼먹어도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
이렇게 맛좋은 달래, 농수산물이 저렴한 오일장에 가도 한 바구니도 아닌 것이 이천원.
왜 이렇게 비싼지는 달래를 직접 캐보면 알 수 있다.
집에서 출발하여 차로 20분, 내려서 또 10분은 넘게 걸어야 닿을 수 있는 한라산 중턱의 숲속.
작년에도 여기서 달래를 캤는데 올해도 여기에 뿌리를 내려주었다.
혹여 숲속에서 만날 멧돼지를 대비하여 큰 전정가위와 작업용 호미를 대동하고
우리 식구는 숲속을 살피며 들어갔다.
일년 만에 와서 길을 잃지나 않으려는지 걱정되었지만
낯익은 오솔길을 따라 드디어 달래밭을 만났다.
달래가 비싼 이유는 캐는데 들어가는 노동력때문이리라.
농약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연이 알아서 키운 달래.
캐려면 가장 핵심인 뿌리를 온전히 땅속에서 꺼내야 하는데
나뭇가지나 돌덩이에 걸려 제대로 뽑아내기가 여간 귀찮고 힘든 것이 아니다.
한 시간 정도 쪼그려 캐내고 있으려면 요 작은 걸 먹자고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때로 쪼잔하게 보이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있으랴.
풀밭에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뽀뇨도 여기저기 숲속을 달라 뺀다.
워낙 깊숙한 숲속이라 위험하기에 한 명은 뽀뇨를 보고 한 명은 달래를 캐고 있는데
뽀뇨가 아빠의 행동거지가 궁금했나 보다.
“아빠 뭐해?”,
“어. 아빠 달래캐고 있어”,
“달래?”
집에선 아빠가 무엇하는지 궁금할 상황이 연출되지 않는데 반해,
밖에 나오니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또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아빠, 엄마가 영어를 배운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 언어로서 습득을 못한 것은
새로운 환경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자극받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래서 뽀뇨의 조기 언어습득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다양한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끔은 변화된 환경을 즐겨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숲속에서 달래를 캐며 느낀 것이 ‘육아에 대한 아이디어’라니..
뭐 어때.
아이디어 또한 아무것도 아닌 정보의 숲속에서
필요한 어떤 것을 캐낸 결과물이 아닐까.
1시간 반 정도 캐고 나니 일 년치는 아니지만 냉동실에 쟁여둘 만한 양을 캤다.
쌉살한 맛이 좋은데 다 먹고 나면 어쩌나하고 숲에게 작별을 고한다.
뽀뇨와 집으로 돌아가며 앞으로 똑같은 일상이지만
조금은 다른 변화를 주어야 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오늘부터 똑같은 동화책을 읽더라도 좀 더 다르게 표현해야지. 다른 목소리, 다른 분위기로..
<한라산이 키운 달래의 맛은 어떨까?>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열심히 풀을 뽑고 있는 뽀뇨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