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 위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아직 마흔도 안 되었는데 왠 주름살이람. 

아내는 나이 먹으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요즘 눈 위의 주름살, 

거칠어진 손바닥, 들어가지 않는 배를 바라보며 마음이 착찹하다.


착찹한 아빠의 마음을 쭈글쭈글하게 만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세 살에 접어든 뽀뇨다. 

'우유', '바나나', '귤', '쮸쮸무아(요거트를 가르키는 뽀뇨만의 단어), '더 조' 등 계속해서 먹는 걸 찾는데, 

가져다주면 얼마 먹지 않고 여기 저기 던진다. 


밥 먹을 때는 작은 밥상에 뽀뇨를 앉히는데 아직 숟가락질을 잘 못해 반은 흘리고 반은 입에 들어간다. 

그리고 남은 음식을 모두 흩친다. 

빵을 들고는 이불이고 의자고 할 것 없이 올라가 부스러기를 흘리며 먹는다. 

이하 생략.

 

아빠, 엄마가 그런 상태에 익숙해서 다행이지 

만약 빈틈없이 청소하는 엄마아빠였으면 아이를 가둬놓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내 주름살은 아이가 어질러 놓은 상황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원인은 아이가 말 짓(?)을 할 때 어떻게 혼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데 있다.


이건 요즘 뽀뇨를 돌봐주는 내 엄마의 고민거리기도 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손자를 혼내고 때려줄 수 있는 간 큰 시어머니가 몇이나 있을까? 

아내 또한 틈틈이 뽀뇨를 보며 늘 웃고 받아주는 편이다. 

결국 아이를 자주 볼 수 없는 아내와 며느리 눈치가 보여 아이를 제대로 혼내지 못하는 시어머니, 

놀아주기는 잘해도 눈물 쏙 빠지게 혼내지 못하는 아빠 사이에서 

뽀뇨는 미운 세 살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 아빠, 할머니가 차례로 얼굴을 꼬집히고 

아빠 얼굴엔 손톱자국이 가실 날이 없지만 

"뽀뇨, 아빠가 한번 더 그러면 혼낸다. 우리 강아지, 아빠 말 들어야 해요"

정도를 넘어서지 않으니 내가 나를 봐도 답답하기만 하다. 


한번은 뽀뇨 돌전에 다니러온 엄마가 아이가 말을 안 들어 때린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제지를 한 적이 있다. 

분명 기분 나쁘게 느끼셨을 텐데 말귀를 알아듣는다손 치더라도 때리고 싶지는 않다.

 

답답한 마음에 다른 엄마는 미운 세 살에 어떻게 대처하나 하고 검색을 해보는데 

'아이 엉덩이를 때리고는 마음 상해하는 엄마들'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이 엉덩이 때리는 걸로 화와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겠지만, 

이후 마음 상해하는 걸 보면 역시 주름살 하나 더 늘어나는 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오신 엄마가 생일을 맞았다. 내가 주름 하나면 엄마는 주름 세개가 아닐까?>

 

*간만에 올리는 동영상. 구두신고 노는 뽀뇨.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영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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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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