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나에게 왼손은 거칠고 낯선 느낌이다.
내가 오른손잡이여서가 아니라
항상 무뚝뚝하고 다소 거칠은 내 아버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경상도 스타일의 아버지,
고장에서 사나이 중에 사나이로 불려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홍씨’ 집안(친가)을 닮지 말고 ‘신씨’집안(외가)을 닮으라고 나에게 주입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엄마 닮았다는 얘길 많이 듣고 자랐지
아버지 닮았다는 얘기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고
신체의 일부 또한 딱 한 곳을 제외하고는 아버지와 닮은 점이 없었다.
(실제는 많았겠지만 눈으로 드러나는 곳은 별로 없다)
바로 뒷머리의 제비추리.
하필 보기 싫은 곳을 닮았다.
머리를 깎을 때가 되면 항상 목뒤까지 길게 내려오는 것이 어찌 생겼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방법은 없지만
어쨌든 나에게 머리 깎을 타이밍을 정확히도 알려준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6년이 지났다.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살아간다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드릴 시간도 없다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은 전혀 하질 않았다.
그런데 양손으로 색연필을 잡는 뽀뇨를 보고 혹시나 해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뽀뇨가 왼손잡이 아닌가요?”
아내는 아니라고 한다.
아내에게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왼손잡이인 것을 숨기고
“우리 아는 사람 중에 왼손잡이 없지?”하며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요즘 한참 젓가락질을 하는 뽀뇨를 보고는
이제 더 이상 아내나 나나 모른척 하기가 어렵게 되어버렸다.
양손도 아니고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뽀뇨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가 잠재우기를 포기한 밤 늦은 시간
뽀뇨는 두꺼운 육아잡지를 첫 페이지부터 끝페이지까지 오랫동안 넘기며 본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뽀뇨가 왼손잡이로 살면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부터 된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왼손잡이 비율이 30%가 넘음에도 불구하고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은 1%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왼손잡이로는 삶을 살아가며 불편한 점이 많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왼손잡이로 태어났지만 불편을 감수하며 오른손잡이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하필 왼손잡이로 태어났을까,
그것도 낯설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는 그 왼손잡이로..
아내가 묻는다.
뽀뇨에게 오른손 쓰는 법을 가르쳐야 할까라고.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나이가 될 때까지 한번 놔둬보자’.
19개월이 된 뽀뇨는 아빠의 서투른 젓가락질 보다 젓가락질을 더 잘한다.
<뽀뇨나고 70일 즈음에 찍은 사진. "뽀뇨야, 오른손잡이 세상에 왼손 카운터펀치를 날릴 준비가 되었니?">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뽀뇨가 처음으로 노리개 잡던 날의 영상으로 이어집니다. 근데 그 것도 왼손이었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