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적들이 너무 많다. 

평소에 적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번 만큼은 아닌가 보다. 

 

나를 끔찍이 아끼는 엄마. 


‘집에서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이 일자리를 잃고 힘든 줄 알고 며칠간은 위로했다. 

하지만 제주에 다니러 오셨을 때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라’고 하루 종일 나를 들들 볶았다.

멀리 서울까지 유학 보낸 멀쩡한 아들이 집에서 아기 본다고 하니 남들에게 창피했나 보다 .

(이 말을 맞벌이 하며 육아전담 했던 여자후배에게 했더니 “누구는 서울 유학 안다녀왔나?”하며 거든다. 백번 동의.) 

창피하다는 말은 못하고 “네 일도, 육아도 아무것도 제대로 안되니 제발 맡겨라” 으름장도 놓고 타이르기도 하지만 아들고집도 못 말린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셔서 무슨 말을 했는지 막내누나까지 설득에 나섰다. 

 

아내를 끔찍이 아끼는 장모님. 


아이 걱정도 걱정이지만 딸 걱정 때문에 전화를 자주 하신다. 

육아와 돈벌이를 동시에 하고, 많은 시간을 재택근무를 할 뿐인데 장모님은 밖에서 고생하는 딸 걱정에 사위가 못마땅한가 보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잠시 쉬며 밥을 먹고 있는데 하필 그때 걸려온 장모님 전화. 

 

“우리 딸 보면 맘이 쓰여 죽겠어”. 

 

“열심히 돈 벌겠습니다. 어머니”라고 대답했다. 


딸 걱정하기는 사위도 마찬가지인데 마음이 답답하다.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유모차를 밀며 입구에서 만난 1층 아주머니.

 

“저쪽에 어린이장난감 도서관 있는데 가봤어? 거기 일년에 5만원이면 장난감도 많이 빌려줘.” 

 

얼굴을 몇 번 마주쳤나? 

이야기도 제대로 안 해본 40대 노산 아주머니가 내게 팁을 알려준다. 

 

“아...네.” 

 

왠지 답답한 마음이 뻘쭘함으로 이어지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는 이제 누가 봐도 아줌마구나’

 

오후 시간의 놀이터. 

아이들만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엄마들이 제법 모인다. 

나만 아빠다. 

모여 수다라도 떠는 상황에는 내 입지가 더 좁아진다. 

슬슬 자리를 빠져 나가는데 왠지 전업육아를 선언한 첫날이 떠오른다. 

 

낮 시간에 ‘이제 여유가 많아서 좋다’라고 했는데 유모차를 몰고 나오니 만날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아는 사람은 모두 일터에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 걸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 누가 알까?


뽀뇨 사진.jpg » 유모차 밀고 나들이하는 아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첨부
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블로그 : http://plug.hani.co.kr/pponyopapa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5175/948/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맘에 완패한 아빠, 그래도 육아대디 만한 남편없다 - 토크배틀 TV프로그램 출연기 imagefile [6] 홍창욱 2012-01-31 58259
1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도 별수 없다 imagefile 홍창욱 2012-01-25 17923
1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아이 키우며 제일 힘든거? imagefile [4] 홍창욱 2012-01-16 18411
1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는 외계인? imagefile [4] 홍창욱 2012-01-09 19627
1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신년특집선물] 구멍양말 콩쥐 imagefile [4] 홍창욱 2012-01-03 17744
1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기막혔던 뽀뇨의 첫 이사 imagefile [2] 홍창욱 2011-12-26 60979
1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왜 하필 왼손잡이로 태어났을까 imagefile [7] 홍창욱 2011-12-20 19423
10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배시시 웃음의 정체 imagefile [4] 홍창욱 2011-12-12 17973
9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의 두 얼굴 imagefile [22] 홍창욱 2011-12-05 18590
8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파파의 절규, 둘째는 안돼 imagefile [2] 홍창욱 2011-11-29 28237
7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 베이비시터 되다 - 잘키운 이웃 아저씨, 열 아주머니 안 부럽다? imagefile [4] 홍창욱 2011-11-21 20938
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안 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imagefile [8] 홍창욱 2011-11-14 50478
5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쭈쭈 없는 아빠의 설움 imagefile 홍창욱 2011-11-07 55398
»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아빠육아의 적들...답이 어디에? imagefile [4] 홍창욱 2011-11-01 19385
3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엄마표 돌잔치? 이제 대세는 아빠표 돌잔치다 imagefile [2] 홍창욱 2011-10-25 54724
2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뽀뇨가 커서 아빠를 원망하진 않을까? imagefile 홍창욱 2011-10-18 29202
1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전업육아 다이어리를 열며 imagefile [8] 홍창욱 2011-10-12 7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