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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 끝에 맞은 어린이 날... 아파서 입원 중인 시이모님 병문안을 다녀오느라

오후가 되서야 집에 돌아왔다.

필규는 이모네집에서 사촌들과 이틀을 잘 놀고 돌아온 참이었다.

온 가족이 다 모여 맛있는 닭백숙으로 저녁을 먹고 있을때, 내 핸드폰을

꺼내들고 아이들을 불렀다.

 

"애들아.. 엄마가 너희들하고 의논할 일이 있어.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월드비전'에서 문자가 왔는데 네팔에 대지진이 일어난거,

알고 있지? 월드비전에서도 긴급구호를 위해 담당자를 파견하고 구호금을

지원하고 있대. 워낙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많은 도움이 필요한가봐.

이런 것들로 도울 수 도 있대. 엄마가 읽어줄께, 들어봐.

 

조리기구세트 지원에는 1만 7천원

위생키트 지원은 2만원

가족용 텐트 후원은 42만원..

물론 이런거 말고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은 얼마든지 있어.

너희들도 네팔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뭘로 도울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볼래?"

 

내 얘기가 끝나자 큰 아이가 벌떡 일어나 제 방을 갔다 오더니 식탁위에

2만원을 올려 놓는다.

 

"어린이날 용돈으로 받은거.. 드릴께요. 이걸로 조리기구세트 지원해주세요.

3천원만 돌려주시면 되요"

 

그러자 둘째 윤정이랑 막내 이룸이도 제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기 시작했다.

"엄마, 나도 2만원 낼래요"

"엄마, 나도요... "

 

순식간에 식탁위엔 6만원이 쌓였다.

모두 문병같던 병원에서 친지 어른들께 받은 용돈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받은 용돈을 조금씩 기부하자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선뜻 제 용돈들을 몽땅 다 내놓을 줄 몰랐다.

조금 놀라고 많이 고마왔다.

 

"그럼 엄마, 아빠도 2만원씩 내서 우리 가족 이름으로 10만원을 기부하자.

너희들이 이렇게 선뜻 용돈을 내주어서 정말 고마워.

네팔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제일 많이 고통받는 사람들이 바로 아이들이래.

이번 지진으로 5천개가 넘는 학교가 파괴되었다는데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서 몇 년이 걸릴지 모른대.

우린 안전한 곳에서 살고 있고,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고, 이렇게 많은 것을

누리는데 힘들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너희들이 기꺼이 도와줘서 정말 감동했어. 고마워"

 

그리고 한겨레 신문에 실린 네팔 지진관련 기사를 읽어 주었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 열심히 들었다.

우리는 잠시동안 아이티 대지진과 일본의 후쿠시마 지진피해, 그리고 이번

네팔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아는 내용들을 보태거나 혹은 물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명랑하게 식탁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과 나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이 내 놓은 돈을 바라 보았다.

"필규가 철 들었네. 예전같으면  제 용돈을 제가 쓰지 말라는 얘기죠? 하며 버럭

화를 냈을텐데.. 이렇게 선뜻 용돈을 내 놓아서 깜짝 놀랐어. "

남편은 고개를 끄떡였다.

 

전에는 나도 어린이날엔 아이한테 선물을 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어렸을땐 제법 고가의 선물을 마련했다가 주기도 했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날엔 당연히 아이들이 선물을 받는 날이고, 어른들은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날이라고 여겼다. 이런 생각이 바뀐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4월에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맞은 어린이날, 세상은 여전히 세월호의 충격과 아픔이

생생하게 차 있었다. 내 아이가 무사하고, 내 아이가 곁에 있다고 해서 우리끼리

선물을 주고 받고 즐거울 수는 없었다.

아이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었고 아이들도 이해했다. 어린이날은 집에서 조용하게 보냈고

아이들 선물은 내가 바느질을 해서 만든 손수건으로 대신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어린이 날은 내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주는 날이어서는 안된다.

내 아이들만큼 다른 어린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는 날이어야 맞는 것이 아닐까.

내 아이들이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의 일부라도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나누어야 하는

날이어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네팔의 아이들을 도왔다.

네팔의 아이들을 위한 도움은 앞으로도 오래 오래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야 할 것이지만 적어도 어린이날 만이라도 슬픔과 고통속에 있는 더 많은 어린이들을

함께 생각한다면 참 좋겠다.

 

어린이날이 되면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선 비싼 장난감들이 날개돋친듯 팔려나가고

놀이동산이나 체험관등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곳들은 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날만큼은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사주고, 먹고 싶어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렇게 해주려고 많은 부모들이 노력한다. 그 또한 귀한 일이다.

 

그러나 내 가족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만큼 다른 아이들의 삶도 같이 돌아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당연하게 선물을 요구하고 받는 것도 좋지만 네팔이나 아이티나

후쿠시마에서 여전히 고통속에 놓여 있는 아이들을 떠올려보고 내가 받은 선물의 일부라도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내게 많은 것을 나누고 주위의

아픔에 관심을 갖는 어른으로 커갈테니 말이다.

 

어릴때 경험한 일들은 커서도 자연스럽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나누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다. 조금 번거롭고

조금 귀찮아서 외면하는 어른들은 더 많다.

부모들이 이끌어주자. 조금 귀찮고, 조금 아깝고, 조금 번거로와도 우리가 조금씩 기울이는

관심과 도움들이 세상의 고통을 덜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아이들한테 새롭게 감동하고 또 새롭게 배운 어린이 날,

나도 한뼘 더 큰 어른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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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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